최길수(34) 소방사의 방화복(왼쪽)과 김성수(43) 소방장의 장갑(오른쪽). 지난 11일 밤 서울 용산구의 한 다세대주택 3층에서 난 불 속에서 주민을 구한 두 소방관이 착용했던 것이다. 초내열성, 난연성을 갖춘 특수섬유로 만든 재질이지만 불에 타들어가 군데군데 구멍이 나고 찢겼다.


두 벌의 방화복이 있다. 500도 불 속에서 최대 10분간 견딜 수 있도록 '파라-아라미드'라는 특수 섬유로 만든 것이다. 이 섬유의 강도는 강철의 5배다. 5㎜ 굵기의 실로 2t 무게의 자동차를 들어 올릴 수 있을 정도다. 찢어지는 일이 거의 없다. 열에 견디는 초(超)내열성(耐熱性)과 불에 타지 않는 난연성(難燃性)을 갖춘 섬유로 만들었지만, 두 벌의 특수방화복은 군데군데 시커멓게 타고 녹아 구멍이 났다. 800도가 넘는 화염에 장시간 노출된 결과다. 이 방화복이 감싸고 있었던 안쪽 맨살은 온전했을까.

지난 11일 밤 11시 서울 용산소방서로 신고 전화가 걸려왔다. 신고자는 다급한 목소리로 "다세대주택 301호에 불이 났으니 빨리 와서 꺼달라"고 소리쳤다. 115명의 소방관들이 장비 32대를 갖추고 10분 만에 현장에 도착했다. 이미 불길은 301호 창밖으로 활활 치솟고 있었고, 건물엔 시커먼 연기가 가득찼다. 일부 주민들은 일찍 1층으로 대피해내려왔고, 일부는 옥상으로 대피했다.

4명의 구조대원은 2개 조로 나누어 2명씩 불길 속으로 뛰어들었다. 김호영(47) 소방장과 김백석(29) 소방사 등 1조는 불이 시작된 301호를 먼저 수색했으나 사람이 없었다. 이들은 곧 302호로 옮겼다. 40대 부부와 9살과 7살인 초등학생 아들 2명 등 네 가족이 제일 안쪽에 있는 안방에 모여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거실로는 이미 불길이 번지기 시작했고 연기가 가득했다. 두 소방관은 아이들 2명부터 먼저 마스크를 씌워 1층으로 구조해 내려왔다.

4층에는 할아버지(74) 1명만 남아 있었다. 나머지는 이미 대피한 뒤였다. 4층 수색을 맡았던 2조 김성수(43) 소방장과 최길수(34) 소방사는 이 할아버지에게 보조마스크를 씌워 옥상으로 대피시켰다. 그때 무전이 울렸다.

"302호에 아직 구조하지 못한 2명이 더 있다."

두 소방관은 즉시 302호로 뛰어들었다. 불길은 이미 302호 거실까지 덮친 상황이었다. 불길 속을 뚫고 두 사람은 안방으로 들어갔다. 안방으로도 불길이 치고 들어왔다. 김성수 소방장은 침대 매트리스를 들어 맹렬하게 번지는 불길을 막았다. 이미 거실은 화염에 완전히 휩싸인 상태였다. 두 사람을 데리고 거실을 통과해 현관으로 빠져나가기란 불가능했다.

김 소방장이 매트리스로 막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불길은 이미 안방 안쪽까지 휘감고 돌았다. 창문을 통해 두 사람을 빼내는 것 외엔 다른 방법이 없었다. 최 소방사는 창을 바라보고 두 팔을 벌려 큰 대(大)자로 섰다. 등 뒤쪽에서 달려드는 불길을 온몸으로 막았다. 불길이 방화복을 입지 않은 주민을 덮치지 못하게 최대한 보호했다.

최길수(34) 소방사의 산소통. 화염 속에 오래 노출돼 강철 재질이지만 표면이 검게 타고 갈라졌다.


"(나는) 특수복을 입고 장비를 착용했기 때문에 그 불길을 잠시 동안은 막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두 사람한테 불이 옮겨 붙지 않게 하려고 최대한 몸을 펼쳤습니다."

그 틈을 이용해 김모(44)씨와 오모(여·42)씨 부부는 차례로 창틀을 넘었다. 창틀에서 지면까지의 높이는 16m. 최 소방사는 창 밖으로 상체를 최대한 숙여 한 사람씩 그의 손을 잡고 매달리게 한 뒤 밑으로 뛰어내리게 했다. 밑에서는 김형우 소방위가 무릎을 꿇고 앉아 떨어지는 그들을 받았다.

최 소방사가 부인 오씨를 마지막으로 내릴 때 그의 등 뒤에서 불길이 갑자기 커지며 창문 밖으로까지 크게 뿜어져 나왔다. 일촉즉발의 순간이었다. 4~5초만 늦었더라도 김씨 부부의 운명이 달라졌을 것이다.

최 소방사가 몸을 창 밖으로 빼내 창틀에 매달리자 불길이 그를 덮쳤다. 그가 뛰어내릴 땐 이미 방화복과 장비는 불이 옮겨붙어 타들어가고 있었다. 구조작업이 끝난 뒤 보니 그의 특수방화복 등쪽은 군데군데 불에 녹아서 구멍이 났고 시커멓게 그을렀다.

최길수(34) 소방사의 특수방화복 상의(위쪽)와 내피(아래쪽). 방화복은 500도 불길 속에서도 10분을 견딜 수 있는 특수섬유로 만들어진 것이다. 최 소방사는 김씨 부부가 창문 밖으로 나가는 동안 큰대(大)자로 몸을 펼쳐 등으로 불길을 막았다. 뒤쪽에서 불길이 계속 덮치는 바람에 초내열성·난연성을 갖춘 방화복임에도 어깨 부위와 등쪽이 타들어가 구멍이 났다. 방화복 안쪽 내피까지 시커멓게 타 찢겨져 있다.

구조를 지휘했던 최규태(56) 현장대응단장은 “16m 높이에서 떨어졌는데 사람이 죽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라며 “최 소방사가 손으로 이들을 밑으로 잡아내린 뒤 떨어뜨렸고 밑에서 받아낸 덕분에 살 수 있었다”고 말했다.

최 소방사가 창문을 통해 1층으로 뛰어내릴 때, 김 소방장은 안방을 완전히 집어삼킨 불길을 매트리스로 막으며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그는 창문 대신 현관을 탈출구로 선택했다. 화염과 연기 때문에 창문이 어딘지 아예 보이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한강성심병원에 입원한 김성수 소방장(왼쪽)과 최길수 소방사(오른쪽). 김 소방장은 구조작업을 마친 뒤 불길을 뚫고 현관문을 통해 탈출했으나 턱부위와 손에 2도 화상을 입었다. 최 소방사는 3층에서 떨어져 허리뼈가 골절됐다.


김 소방장이 탈출한 것을 보지 못한 최 소방사는 밑으로 떨어져 허리를 다친 상황에서도 "김 소방장님은 어딨나"고 고함치며 그의 생사부터 물었다. 김 소방장은 건물 밖으로 빠져나와 자신을 애타게 찾는 최 소방사를 봤다.

"지상으로 나와 보니 최길수 대원이 나를 막 찾고 있더라. 내가 현장에서 못 나온줄 알고. 본인도 통증이 있었는데…"

용산소방서 관계자는 "소방관들에게 가장 두려운 건 함께 화염으로 들어간 동료를 잃는 것"이라고 말했다.

건물 전체가 불길에 휩싸인 큰 화재였지만 사망자는 1명도 없었다. 1층으로 뛰어내리며 탈출한 김씨 부부만 다쳤을 뿐이다. 남편 김씨는 허리뼈가 골절됐고, 부인 오씨는 다리가 부러졌다.

부부를 구하기 위해 온 몸으로 불길에 맞선 두 소방관도 크게 다쳤다. 두 사람을 창 밖으로 빼낸 최 소방사는 허리뼈가 골절되는 부상을 입었다. 매트리스로 불길에 맞서다 거실의 불길을 뚫고 나온 김 소방장은 턱 아래 얼굴과, 양손 손가락 끝에서부터 손목까지 화상을 입었다. 김 소방장의 손은 혈관과 신경이 뻗어있는 진피층까지 손상됐다. 불길 속에서 김 소방장의 헬멧 실드(얼굴 보호대)는 불에 타 녹아내린 상태였다.

김성수 소방장의 방화작업용 헬멧. 표면 전체가 시커멓게 그을렀고, 실드(얼굴을 가리는 투명 보호대)는 시커멓게 녹아내려 뒤틀린 채로 분리돼 있다(왼쪽). 새 헬멧(오른쪽)의 실드는 투명하다.

김성수 소방장은 1999년 입사해 17년간 현장을 뛴 ‘구조 베테랑’이다. 최길수 소방사는 소방관이 된 두 달밖에 되지 않은 신입 대원이다. 그는 2012년 특전사 대위로 전역한 장교 출신이다. 지난 1월 용산소방서로 배치되자마자 그는 소방서 대표로 ‘몸짱 소방관 선발대회’에 나가기 위해 준비하고 있었다. 화재 현장에 출동할 당시 그는 결혼을 3주 앞두고 있었다. 허리 부상 때문에 결혼을 미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