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여개 중고차 중개소가 밀집해 있는 서울 양천구 신월동 자동차매매단지. 남자만 우글거릴 것 같은 곳에 여자뿐인 사무실이 있다. 상호는 '차 파는 누나'. 중고차 중개소라기보단 카페 같다. 흰색과 핑크색 벽지에 에스프레소 기계와 인형·잡지들로 아기자기하게 꾸몄다. "저 누나들 매출이 전국 상위 1%는 될걸요?" 다른 사무실에서 일하는 딜러가 입을 삐쭉 내민다.
오영아(31·사진) 대표는 "문의 전화를 하루에 평균 100건, 많을 땐 150건 받는다"고 말했다. 업계에선 흔치 않은 여성 딜러로 10년간 활동한 베테랑이다. 직원 5명 모두 여성이다. "여자라고 차를 모르란 법 있나요? 차 파는 데 남녀 구분이 어디 있겠어요. 남자보다 세심하고 친절하게 안내하니 고객들이 좋아하세요."
그는 디자인 관련 대학 진학을 준비하던 때 우연히 중고차 매매 사무실에서 아르바이트했다. 출근 첫날에 차를 팔았다. 다음 날 또 팔았다. 며칠 뒤 오전 10시에 온 손님은 소개받은 차를 맘에 들어 하지 않았다. 하루종일 같이 차를 보러 다니다 오후 8시에 계약을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왔다. "손님만 오면 차를 파네." "신동 아니냐?"…. 다른 직원들이 수군댔다.
오 대표는 '여자라서 차를 잘 모른다' '불안하다' '얼굴로 판다'란 말이 제일 듣기 싫었다고 했다. 자동차 진단 평가사 자격증을 딴 데 이어 요즘은 자동차 정비 자격증 공부를 하고 있다. 4년 전부터 '차 파는 누나'란 이름으로 블로그를 시작했다. "들으면 잊을 수 없는 쉬운 이름이면서도 제가 여자라는 걸 담고 싶었어요. 내가 차를 더 많이 아니까."
허위 매물이나 정보 부족으로 인해 '중고차는 믿을 수 없다'는 인식을 깨고 싶어 온라인을 이용했다. 문의한 순간부터 차를 섭외하고 인도하는 마지막까지 투명하게 공개했다. 구매 사연과 문자·통화 내용까지 올리자 반응이 왔다. 현재 8만여명이 페이스북 등 '차 파는 누나' 소셜미디어 계정에 가입해 소식을 접한다. "신뢰를 쌓는 게 최고예요. 손님이 원하는 차를 찾을 때까지 전국을 뒤집니다. 자잘한 차량 흠집까지 동영상과 사진으로 찍어 드리면서 세심하게 소통하는 게 비결이에요."
케이블 TV 자동차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등 이름이 알려지면서 딜러를 지망하는 여성 상담자도 늘었다.
오씨는 “중고차 여성 딜러 1세대로 다른 곳과 차별화하고 싶어 여자 딜러로 이뤄진 사무실을 만들었다”고 했다. 3년 전부터 ‘차 파는 누나’ 직원으로 일한 김민진(27)씨는 “프로페셔널하고 정직하게 일하는 모습에 반해 지원했다”고 했다. 김씨 휴대폰에 오 대표의 전화번호는 ‘나의 롤모델님’으로 저장돼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