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현지 시각)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세계 최대 모바일 전시회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 2017'에서 한 일본인이 기조연설자로 연단에 등장했다. 그동안 에릭 슈밋 구글 회장이나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창업자 같은 미국 실리콘밸리의 인사들이 주로 섰던 자리다. 모바일 메신저 라인(Line)을 이끄는 이데자와 다케시(出澤剛·44) 대표다.

"인간은 의사소통할 때 음성만으로 하지 않습니다. 시각·청각·후각·미각·촉각 등 오감(五感)을 모두 활용합니다. 인공지능(AI)도 인간과 같은 방향으로 진화할 것입니다. 라인은 그동안 오디오에 초점이 맞춰진 것에서 벗어나 폭넓은 감각을 인지하는 인공지능을 만들 것입니다."

이데자와 다케시 라인 대표는 지난달 14일 Tech&Biz와 가진 인터뷰에서 “메신저는 앞으로 단순히 문자를 주고받는 기능에서 탈피해 스마트폰의 모든 서비스를 집약한 온라인 포털(관문)로 진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은 지난 1일(현지 시각)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한 전시회에서 기조연설하는 모습이다.

그는 이날 "네이버와 함께 오감 인공지능 '클로바(Clova)'를 내놓는다"며 이렇게 말했다. 이 프로젝트에는 일본 최대 장난감 업체 다카라 토미와 전자업체 소니도 합류했다. 미국식(式) 음성 인공지능이 아닌 한·일 합작의 새로운 기술에 도전하는 것이다.

지난달 14일 일본 도쿄 신주쿠에 있는 라인 본사에서 이데자와 대표를 만났다. 이데자와 대표는 "본사 이전 중이라 경황이 없다"며 말을 건넸다. 직원 수가 급증해 예전 시부야 건물에서 옮겨왔다는 것이다. 급성장하는 라인의 한 단면이다.

네이버의 자(子)회사 라인은 일본 테크 업계의 자존심이다. 라인은 2013년부터 작년까지 4년 연속으로 '세계 모바일 앱 매출 1위'(게임 제외)를 차지했다. 앱 시장에서만큼은 미국 넷플릭스(4위)·타임워너(6위), 중국 텐센트(5위)·바이두(8위)를 모두 눌렀다. 일본에서는 스마트폰을 가진 모든 일본인이 라인을 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국민 메신저다. 작년 미국·일본 증시에 동시 상장했고 시가총액은 75억달러(약 8조6700억원)다.

라인 성공 비결은 철저한 컬처라이즈

이데자와 대표에게 대뜸 "라인은 아시아에서는 성공했지만 글로벌 시장 장악에는 실패한 것 아닌가"라고 물었다. 한때 라인은 미국 페이스북 메신저와 와츠앱, 중국 위챗 등과 경쟁했다. 하지만 라인의 전 세계 이용자는 2억명대인 데 반해 경쟁자들은 8억~10억명에 달한다.

그는 "2년 전 일본·태국·대만·인도네시아 등 4개국을 집중 공략하기로 전략적 선택을 했다"고 말했다. 전선을 좁히기 위한 의도적인 후퇴였다는 것이다. 이데자와 대표는 "집중 공략은 주효했고 아시아 4개국에서 단순 이용자가 아닌 매출에 지속적으로 기여하는 이용자 1억6700만명을 확보해 탄탄한 체력을 갖췄다"고 말했다. 이들 지역에서 단순 시장 1위가 아니라 압도적인 지위를 쌓았다는 것이다.

성공의 비결은 '컬처라이즈(Culturize·컬처+로컬라이즈)'다. 이데자와 대표는 "현지 문화에 녹아드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예컨대 올 초 일본에서는 라인으로 지인에게 세뱃돈 주머니와 메시지를 보내는 행사를 했다. 올 1월 1~3일 동안 무려 2449만명이 참가했다. 일본인들이 신년에 세뱃돈 주머니를 지인에게 선물하는 풍습을 고스란히 라인에 담은 것이다. 중·고등학교 친구를 중시하는 인도네시아에서는 라인에 동급생 찾기 기능을 넣었다. 그는 "일본에서는 라인으로 택시를 부르지만 인도네시아에서는 오토바이를 부른다"며 "모든 서비스를 하나로 통일해 모든 지역에 제공하는 미국 기업과는 다른 경쟁력"이라고 했다.

집토끼를 확실히 잡은 라인은 올해부터 셀피(selfie·셀프 카메라) 카메라 앱으로 본격적인 외연 확장에 나선다. 이데자와 대표는 "우리가 하는 라인카메라는 남미에서 인기를 끌며 벌써 이용자 1억명을 돌파했다"며 "새로운 해외시장을 개척하는 첨병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3~4년 내 일본·태국·대만·인니서 모바일 결제 1위 목표"

이데자와 대표는 "라인은 스마트폰의 모든 서비스를 집약한 온라인 포털(관문)로 진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메신저 라인의 압도적인 위상을 활용해 음식 배달, 콜택시, 지도 서비스, 만화 읽기, 음악 듣기 등 온갖 모바일 영역으로 확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이를 '스마트 포털'이라고 불렀다. 이용자가 라인 안에서 모든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실제로 일본 앱 매출 순위에서 라인이 1위인 것은 물론이고, 2위는 라인망가(만화 서비스), 4위는 라인플레이(모바일 소셜미디어 앱), 8위는 라인뮤직(음악 제공)이다.

다음 목표는 모바일 결제 시장이다. 이데자와 대표는 "메신저 고객들이 자연스럽게 라인 페이(pay)로 옮겨가고 있어 앞으로 3~4년 안에 아시아 4개국의 모바일 결제 시장에서 동시에 1위를 석권할 것"이라고 말했다. 라인페이는 스마트폰으로 친구에게 송금하거나 상점에서 신용카드를 대신해 결제하는 모바일 결제 서비스다. 지난달 라인페이의 가입자는 1000만명을 넘었고, 결제액은 1년 전보다 무려 13.8배가 늘었다.

라인은 기업들도 고객으로 끌어모으고 있다. 현재 라인의 법인 가입자는 300만 곳이 넘는다. 동네 가게에서 대기업에 이르는 광범위한 법인들이 주로 단골 고객에게 문자를 보내는 마케팅 창구로 활용한다. 그는 "올 초 본격적인 인공지능 기업 서비스를 내놨다"며 "앞으로 콜센터를 라인이 대신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이용자가 기업을 친구로 등록해 그 기업의 인공지능과 채팅을 나누는 방식이다. 예컨대 고객이 증권사에 라인으로 '패스워드가 기억나지 않는다'고 메신저를 보내면 인공지능이 찾는 방법을 알려준다.

인공지능 시대에는 검색보다 메신저가 잠재력 클 것

이데자와 대표는 “지금은 전 세계 검색을 장악한 구글이 굉장히 세지만 앞으로 인공지능 시대에는 검색보다 커뮤니케이션이 더 큰 힘을 발휘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용자들은 검색어를 입력해 결과를 읽는 것보다 대화로 묻고 답하면서 알아가는 방식을 더 편안해합니다. 대화가 검색보다 훨씬 본질에 가까운 정답을 얻을 수 있고요.”

그는 “자동차 구매를 고려할 때 인터넷 검색보다 자동차를 잘 아는 누군가와 채팅을 하는 편이 더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메신저가 인공지능, 음성 인식, 증강현실 등 혁신 기술과 합쳐지면서 검색을 압도할 것이란 설명이다. 그가 ‘MWC 2017’에서 발표한 ‘클로바’도 같은 맥락이다. 클로바는 음성뿐 아니라 사진·동영상을 인식하고 대화할 수 있는 인공지능이다.

이데자와 대표는 “테크놀로지가 곧 부품인 시대”라고 말했다. “우리의 역할은 가장 좋은 부품을 사용해 정말 소비자를 편하게 하는 서비스와 상품을 내놓는 것입니다. 중요한 건 기술의 명확한 진화 방향을 보는 눈[目]입니다. 필요한 핵심 기술은 씨앗(벤처 등을 지칭)을 사서 키우면 됩니다.”

그가 보는 메신저의 진화 모습은 어떨까. 이데자와 대표는 “냉장고를 친구 등록한 뒤 라인으로 ‘맥주 있느냐’고 메시지를 보내면 ‘없는데 주문할까요’라는 응답이 오는 서비스는 이미 실현했다”고 말했다. “스마트폰에 대고 ‘라면 먹고 싶다’고 말하면 근처의 라면집들을 소개하고, 하나를 선택하면 음성으로 길을 안내하는 서비스를 개발하고 있습니다.”

그는 “라인은 계속 변화하는 회사다. 그래서 앞으로도 살아남을 회사다”고 말했다.

라인은…

■ 설립 : 2000년(라인 서비스는 2011년 6월 시작)■ 직원수 : 약 4000명■ 매출 : 1407억엔(약 1조4200억원)■ 영업이익 : 199억엔(약 2010억원)■ 대주주 : 네이버(지분 80.35% 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