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자신의 인생 밑그림에 하나씩 꿈을 채색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빨간고래’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일러스트레이터 박정아의 《드로잉 앤 더 푸드&시티》(조선앤북)가 출판계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음식과 여행을 소재로, 펜 스케치를 누구나 쉽게 따라 그릴 수 있도록 한 ‘힐링 드로잉 북’이다. 박정아 작가는 광고회사를 거쳐 북 일러스트, 인테리어, 광고, 상품 패키지 협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자신의 색을 채워가고 있다.

“미래에 대한 걱정은 똑같아요. 불안하고 잘됐으면 하고 바라는 심정. 20대 때는 경제적으로 힘들었고 30대 때는 일에 대한 고민이 있었죠. 어느덧 40대를 바라보며 간신히 정착한 것 같다는 느낌이에요.”

마냥 그림을 그리고 싶었던 박정아 작가는 20대에 직장을 나와 프리랜서로 독립하기까지 적잖은 역경을 디뎠다. 홍익대 미대를 졸업하고 IT분야 붐에 휩쓸려 웹디자이너가 됐지만, 적성과 조직생활 사이에서 적응하기 쉽지 않았다. 그러던 중 웹에 들어가는 그림을 외부 작가에게 의뢰하는 것을 보고 일러스트레이터라는 직업이 눈에 들어왔다. 당시 일러스트는 시각디자인 분야에서 낙후된 데다 디자이너들이 선호하는 분야가 아니었다. 회사를 관두고 일러스트레이터가 된다고 했을 때 주변 모두가 말렸다.

“이화여대 대학원에서 시각디자인으로 석사를 하며 일러스트를 배웠어요. 4년 동안 백수로 지내며 혼자서 여행도 다니고 그림도 그렸어요.”

프리랜서로의 시작은 어려웠다. 모아 놓은 돈은 학비로 다 썼고, 월세 내기도 버거웠다. 대학원을 졸업할 즈음 패션잡지의 에디터로 있던 친구에게 부탁해 일러스트레이터로서 일을 시작했다.

“‘다이어트 방법 5가지’를 그려 처음으로 20만원을 받았어요. 정말 열심히 했죠. 담당자가 다른 잡지를 소개해 줘서 잡지 《얼루어》 《코스모폴리탄》 등에서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할 수 있었어요. 20대 후반에서야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돈을 벌었죠.”

그는 ‘의뢰가 들어오면 반드시 마감 기간 내에 결과물을 보내는 성실함’이 프리랜서의 노하우라고 말한다. 민감한 트렌드를 파악하고 반영해 포인트를 잘 잡아내고, 여성이 좋아하는 따뜻한 컬러를 쓴 점도 주효했다.

“처음에는 수채 느낌으로 사람을 그렸어요. 당시에는 컴퓨터 포토샵으로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별로 없었는데, 저는 웹디자이너로 활동했었기 때문에 컴퓨터가 능숙했죠.”

일이 한창일 때 포토샵 입문서를 쓰자는 제의가 들어와 처음으로 책을 내기도 했다. 일이 한번 터지기 시작하자 물밀듯 일감이 몰려왔다. 패션지에서 인정을 받다 보니 작업 의뢰도 뷰티브랜드, 화장품 회사나 커피, 음식 쪽에서 많이 들어왔다. 국내 화장품 브랜드인 ‘미샤’ ‘어퓨’ ‘더페이스샵’ ‘스킨푸드’ 등 다양한 브랜드와 함께 일했다. 프로젝트를 맡으면 기본 1000만원에서 2000만원 선을 받았다. 심벌부터 시작해 패키지, 카탈로그, 매장 인테리어 전반에 걸쳐 작업하는 큰 건이었다. 자신이 그린 이미지로 브랜드의 초석을 다지고 전체를 이끌어 간다는 자부심이 남달랐다.

작가의 정체성 ‘빨간고래’의 탄생

서른을 넘기며 일러스트레이터 박정아에게 삶의 전환점이 찾아왔다. 일러스트레이터라는 직업에서 어느덧 ‘작가’로 자리 잡아가는 자신을 마주했다.

“업체에서는 트렌드에 민감하므로 한 번 썼던 작가를 두 번 쓰지 않더군요. 그림체를 바꿔도 한계가 있어 언제나 일회성입니다. 프로젝트 하나 끝낼 때마다 사업체 하나 매각하는 기분이었어요.”

작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점점 간절해졌다. “고래가 우울증 때문에 자살한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관심이 생겨 찾아보게 됐고 암울했던 20대의 나와 비슷하다고 생각했죠. 고래는 똑똑해서 목소리 높낮이도 다르고 음파로 정보 전달도 한대요. 우리와 다른 센스와 감각이 있을 것 같았죠. 사람과 다른 세계가 있다는 데서 고래를 동경했어요. 제가 빨간색을 좋아하니까 빨간고래라고 이름 지었어요.”

그는 자신의 작품에 항상 낙인이나 사인처럼 고래를 그려 넣는다. 일러스트레이터 박정아의 정체성이다.

프리랜서는 사람과의 약속이 제일 중요하고 그다음은 자기 몫이다. 작업을 혼자 하다 보니 외로움도 많이 느꼈다고 한다. 가만히 앉아 있다가도 미래가 걱정됐다. 일러스트레이터로 입문해 1~2년 하다 그만두는 사람이 태반인 현실에서 그에게도 슬럼프가 찾아왔다. 여름마다 출시되는 수분크림의 물방울 튀는 그림처럼, 매년 시즌 정해진 그림을 그리는 일이 무료했다. 회사에 다니면 대리에서 과장으로 승진하거나 월급이 인상되는 재미라도 있지만 일러스트레이터에게는 ‘업그레이드’가 없었다. 서른 중반을 지나며 외주 작업을 접고 개인 작업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그의 말을 빌려 ‘딱 먹고살 만큼, 최소한의 일만’ 하고 대신 작업실에 틀어박혀 자신의 목소리, 그만의 세상을 그리기 시작했다.

일러스트레이터는 상업 작가이긴 하지만 작가성도 있어야 하고 트렌드도 읽을 줄 알아야 한다. 사람들의 마음을 읽고 트렌드를 잡는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그는 이탈리아 일러스트레이터인 리즈베스 츠베르거의 이야기를 했다.

“할머니가 다 된 분인데, 어느 인터뷰에서 은퇴한다고 하더라고요. ‘일러스트레이터에게 은퇴가 뭐야, 집에서 그리면 되는 거 아닌가’ 했는데, 50대 후반쯤 되면 잘 보이지 않아 그림이 잘 안 그려진다고 해요. 저도 이제 마흔인데, 일할 수 있는 시간이 10년 정도밖에 안 남은 거잖아요. 체력이 될까, 마감에 맞출 수 있을까 그런 생각도 들고. 손도 안 움직이고 생각도 느릴 테고. 불안함이 있었죠. 노후 준비를 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계속 들었어요.”

컬러링북 성공으로 인기 작가 대열에

그림에 소질이 없는 사람들도 부담 없이 시도할 수 있는 드로잉 북. ‘음식’과 ‘여행 아이템’을 그리는 방법을 소개한다.

작업실에 들어가 밤이 늦도록 그림에만 몰두할 때 그에게 출판 제의가 들어 왔다. 그동안 포토샵이나 일러스트레이터 입문서를 내고 에세이집도 몇 번 냈지만, 출판과 연이 짧았는지 절판 등으로 번번이 실패만 해왔다. 기대 반 걱정 반으로 2015년 겨울 《컬러링 앤 더 푸드&시티》(조선앤북)를 냈다. 결과는 예상외의 선전이었다. 책은 40만 부 이상 팔리며 대 히트를 쳤다. 중국과 베트남, 대만에서도 호응을 얻었다.

“책이 잘됐어요. 시국이 어려우니까 단순하고 힐링이 되는 컬러링북에 관심을 가졌던 것 같아요. 그때부터 출판 운이 트였는지, 포토샵 책을 또 냈죠(웃음).”

컬러링북에 힘입어 지난해 12월에는 《드로잉 앤 더 푸드&시티》(조선앤북)를 냈다. 컬러링과 드로잉 북은 삼십 대 후반의 돌파구가 됐다. 작업은 즐거웠다. 취미가 요리라 웬만한 레시피는 줄줄 욀 정도였다. 음식 이름만 들어도 모든 이미지가 머리에 그려졌다. 책 작업도 두 달 만에 끝냈다. 이번 책은 컴퓨터가 아닌 색연필로 그림을 그렸다.

“색연필이라는 소재는 소박한 느낌이 들어요. 책을 준비하면서 종이 작업을 했는데 좋더라고요. 사각사각 하는 촉감을 살려서 그리고 싶었어요.”

SNS와 네이버 ‘그라폴리오’ 등을 통해 꾸준히 작품을 알리는 것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는 “예전에는 그림 그리는 사람은 무조건 전시하는 게 일반적이었는데 요즘은 SNS를 통하는 게 파급력이 더 크다”고 말한다.

“세상은 바뀌는데 지하 공방에서 붓만 붙들고 있을 수는 없어요. 한 명이라도 더 알게 되면 득이 됩니다. 열심히 하는 게 좋은 것 같아요. 여러 분야에서 수익이 나는 일을 하나씩 찾아가야 할 것 같아요. 세상이 달라졌죠. 정해진 것이 없이 계속 변화해요. 그림을 그리면서도 원천 기술은 그대로 두고 응용할 분야를 찾아야 하죠. 이곳 시장은 변화가 빨라 분야도 생겼다가 금방 없어지죠. 변화에 끊임없이 도전하는 일이 아직은 즐거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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