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바람 불면 찾는 트렌치코트, 기자가 직접 쇼핑에 나서보니
3백만 원 대, 불멸의 트렌치 버버리는 평생 입을 결심해야
더블 버튼, 견장, 손목 스트랩 등 정통 트렌치 요소 갖춘 10만 원대로 즐겨도 무방
옷은 길들이기 나름, 내 개성에 맞는 트렌치를 찾는 게 관건
트렌치코트의 계절이 돌아왔다. 겨울과 봄 사이, 간절기를 위한 단 하나의 아우터를 꼽는다면 단연 트렌치코트다. 트렌치코트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군 장교들의 방한 코트에서 유래됐다. 트렌치(trench)라는 단어는 도랑, 참호를 뜻하는 것으로, 트렌치코트(trench coat)는 곧 야전용 전투로 해석할 수 있다.
현대에 내려오면서 트렌치코트는 멋과 기능을 지닌 패션 아우터로 대중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특히 영화 ‘애수’의 러버트 테일러와 비비안 리의 트렌치코트, ‘만추’에서 탕웨이가 입은 트렌치코트 등은 우아함과 낭만으로 추억된다.
봄을 맞아 트렌치코트 쇼핑을 계획 중인 독자들을 위해 대표 제품을 기자가 직접 입고 비교해봤다. 선택 기준은 30대 직장여성의 출퇴근을 위한 트렌치코트다. 쇼핑 체험담을 소개하기에 앞서 지극히 주관적인 경험임을 밝혀둔다.
◆ 오리지널 ‘바바리'... 한 벌에 3백만원, 중고차 한 대 값이지만 유행 안 타고 물려입을 수 있어
트렌치코트는 ‘바바리’ 또는 ‘버버리’라 불린다. 이유는 트렌치코트의 역사에서 찾을 수 있다. 제1차 세계대전 기간인 1914년 버버리의 창립자인 토머스 버버리가 영국 육군 성의 승인을 받고 군용 레인코트, 즉 트렌치코트를 제작하면서 버버리가 트렌치코트의 대명사가 된 것이다. 현재까지도 버버리는 54장의 원단 조각과 36개의 단추, 4개의 버클과 4개의 금속 고리 등 초창기 트렌치코트의 구조를 적용해 정통성을 이어가고 있다.
안타깝게도 오리지널 ‘바바리’의 가격은 가성비를 논하기 무서울(?) 정도로 비싸다. 기자가 선택한 첼시 엑스트라 롱 헤리티지 트렌치코트의 가격은 270만 원, 이것도 영국 브렉시트의 영향으로 하향 조정된 가격이다. 불과 6일 전만 해도 310만 원. 중고차 한 대 값이었다. 여기에 코트 안쪽에 이니셜을 새겨주는 모노그래밍 서비스를 이용하면 22만 원이 추가된다.
버버리의 여성용 트렌치코트는 슬림한 정도에 따라 첼시, 샌드링엄, 켄징턴으로 구분되는데 첼시는 허리선이 조여진 가장 슬림한 핏이다. 겨우내 낙낙한 오버사이즈 코트에 길들어 있다가 어깨선과 소매 품이 딱 맞고 허리선이 들어간 코트를 입으니 흐트러졌던 자세가 저절로 곧추세워졌다. 마치 영화 속 요조숙녀가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계속 드는 의문, 과연 과연 트렌치코트 한 장에 300만 원을 치를 가치가 있을까? 브랜드의 기원(Origin)과 시대를 초월한 클래식이 모든 것을 설명한다. 기자의 쇼핑을 도운 버버리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 연정희 점장은 12년째 버버리 트렌치코트를 입고 있다고 했다. 여생 내내 잘 입고 후대에게 물려줄 수 있다면 그만한 가치가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 100만원대 타임, 한정판 솔깃! 양면으로 입을 수 있으나 선명한 색상은 부담
아무래도 300만 원은 무리다. 눈을 낮춰(?) 국내 브랜드로 향했다. 클래식에 푹 빠졌으니, 이번에는 과감하고 트렌디한 디자인을 찾았다. 타임의 리버시블(reversible∙양면 겸용의) 트렌치코트는 상황에 따라 양면을 선택해 입을 수 있다. 100만 원에 육박한 가격이지만 버버리를 보고 온 지 얼마 안 됐고, 양면 사용이 가능하다는 실용성으로 인해 상대적으로 압박감이 덜했다.
고시감(풀을 먹인 것처럼 딱딱한 느낌을 가진)이 있는 100% 면 소재로 제작됐으며, 높은 스탠드 카라와 풍성한 실루엣이 파워풀한 워킹 우먼이 된 듯한 기분을 선사했다. 겉면은 카키 베이지 색상, 안쪽은 선명한 그린 색이고 벨트도 양면 색이 다르다. 스냅 버튼으로 처리된 여밈이 깔끔한 느낌을 더했다.
강렬한 배색이 금방 질리진 않을까? 점장은 “빳빳한 오버사이즈(Over-size)와 포인트 컬러는 앞으로 몇 년간 계속될 트렌드”라며 “이 제품은 추가 재생산도 들어가지 않을 한정판”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귀가 얇아진다. 하지만 과연 저 선명한 그린 색상을 외피로 입고 다닐 수 있을지는 의문이 든다.
◆ 카라 없는 트렌치? 70만원대 구호… 신선한 디자인으로 눈길
구호는 간결하면서도 조형적인 실루엣을 내세운다. 트렌치코트 역시 ‘구호답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기자가 선택한 제품은 카라가 없는 라운드 네크라인으로 클래식 트렌치코트의 카라 디테일을 과감히 도려낸 디자인이다. 트렌치코트는 날카로운 깃으로 목에 힘을 주는 게 생명인데! 왠지 동정 안 단 두루마기를 입는 듯 못미더웠지만, 막상 착용해보니 라운드 넥 카라가 온화하고 부드러운 느낌이 든다. 고탄성의 도톰한 면 혼방 소재로 제작돼 허리띠를 묶었을 때 볼륨감이 살아나 제법 폼이 났다.
라운드 네크라인은 목이 짧거나 얼굴이 큰 경우 단점을 보완하고 부드러운 인상을 준다. 정통 트렌치코트의 나폴레옹 카라가 주는 경직된 분위기에서 벗어나 여성스러운 스타일을 연출하고 싶다면 입어볼 것을 권한다. 베이지와 레드 두 컬러가 출시됐다.
◆ 39만원 대 보브, 20년간 가장 잘 팔린 트렌치 분석… 부담없는 일자형이 매력
올해 론칭 20주년을 맞은 보브는 그동안의 브랜드 아카이브를 활용해 올 한 해 동안 20가지의 시그니처 아이템 #VOV20을 내놓는다. 이 트렌치코트도 그중 하나다. 스탠드 카라에 싱글 버튼으로, 무릎 아래까지 일자로 뚝 떨어지는 실루엣이 특징이다. 바스락 거리는 얇은 소재에 군더더기 없는 심플한 디자인으로 다른 제품과 비교해 캐주얼한 느낌이 강하다.
스타일에 따라 허리띠를 묶어 허리선을 강조할 수 있다. 뒷면은 깊은 트임이 적용됐다. 브랜드 관계자는 “매년 베스트셀러를 기록한 트렌치코트의 디자인을 재해석했다”며 “티셔츠와 팬츠를 함께 매치해 심플한 데일리 룩을 연출해볼 것”을 권했다. 클래식함보다 모던함을, 갖춰 입은 느낌보다 캐주얼한 분위기를 선호하는 이들에게 추천한다.
◆ ‘갖출 건 다 갖춘’ 10만 원대 가성비 ‘갑’ 에잇세컨즈 트렌치코트
백화점을 나와 SPA(제조·직매형 브랜드) 매장으로 오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에잇세컨즈에는 클래식부터 트렌디한 디자인까지 다양한 트렌치코트가 있었다. 그중 가장 클래식한 디자인을 골랐다. 더블 브레스티드 버튼, 견장, 목 마개, 손목 스트랩 등 정통 트렌치코트가 갖추어야 할 기본 디테일을 모두 갖췄다. 그런데도 가격은 13만9천 원이다(카카오톡 플러스 친구를 등록하면 여기에 5000원을 할인받을 수 있다). 속된 말로 ‘X이득’이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단추를 모두 여미고 벨트를 매고 목 마개까지 채우니 꽤 분위기가 있어 보였다. 그러나 등을 덮은 레인 가드(Rain Guard)가 붕 뜬다거나 땀이 엉성한 부분은 아쉽다. 특히 단추와 벨트를 풀고 오픈했을 때 라펠(Lapel)과 목 마개가 제자리를 못 찾고 안착이 안 되는 점이 거슬린다. 하지만 10만 원대가 아닌가! 길을 들이고 잘 관리해 입으면 그 이상의 값어치를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 체험기를 마치며 가성비란 '가격 대비 성능'을 의미한다. 하지만 가격이 싼 것만이 가성비의 전부는 아니다. 300만 원에 달하는 버버리 코트 한 벌을 대대손손 입을 것인지, 10만 원대 SPA 브랜드의 트렌치코트를 유행에 따라 갈아입을지는 각자가 생각하는 가치 판단의 문제다. 부디 당신의 소비에 후회가 없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