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은 좀 없습니다만, 품위까지 잃은 건 아니랍니다ㅣ가노코 히로후미 지음ㅣ이정환 옮김ㅣ푸른숲ㅣ312쪽ㅣ1만5000원
처음 늙어보는 사람들에게ㅣ마이클 킨슬리 지음ㅣ이영기 옮김ㅣ책읽는수요일ㅣ200쪽ㅣ1만2000원
'젊은 사람'(100세 시대에는 '뉴 식스티', 60대도 젊다)들에게는 '뚜껑을 열지 않고 싶은 편의점 컵라면 잔반통' 같은 단어가 있다. 치매. 언젠가 찾아오겠지만 그때까지는 걱정하고 싶지 않다는 게 솔직한 심정 아닐까. 치매는 눈물과 절규가 함께하는 심각한 문제다. 유쾌라니. 가당치도 않다.
하지만 여기 반론을 제기하는 책 두 권이 있다. 깔깔깔과 피식 그리고 쓴웃음 사이를 오가게 한다. 먼저 일본 프리랜서 편집자 가노코 히로후미(52)의 이야기. 치매 노인을 위한 노인 요양 시설 건립 과정에 얽혀들며 써낸 관찰기다.
일본 후쿠오카시 조난(城南)구에 자리 잡은 2층짜리 목조건물 '다쿠로쇼 요리아이'가 주인공이다. '정신은 좀 없습니다만, 품위까지 잃은 건 아니랍니다'라는 책 제목이 이곳을 설명한다. 얼핏 떠오르는 '군대 식판'과 '약 냄새'는 없다. 밥은 밥그릇에, 된장국은 국그릇에. 이가 없다고 음식을 믹서로 갈아주는 일도 없다. 반찬을 잘게 썰어주는 것으로 대신. 약 냄새 대신 목조건물의 나무 향이 사람을 감싸 안는다.
곧 세상 떠날 사람들이 갇혀 있는 공간이라는 편견도 허문다. 치매 노인도 자유롭게 시설 밖에서 산책한다. 걷고 싶은 만큼 걷는다. 건물이 이웃한 카페와 연결된 것도 특징이다. 골방이 아니라 열린 공간에서 평범한 사람과 마주치게 하겠다는 배려. 주말이면 일반 고객 수십 명(보호자가 아니다)이 찾는다. 치매 노인과 언젠가는 치매에 걸릴지 모를 젊은 사람들이 함께 먹고 마신다. 글 쓰는 의사로 이름난 하버드대 교수 아툴 가완디가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쓸 당시 알았다면 모범 사례로 집어넣었을 만한 곳이다. 이름에도 뜻이 담겼다. 탁로소(託老所)의 일본어 발음과 비슷하지만 맡긴다는 탁(託)을 집 택(宅)으로 바꾼 '다쿠로쇼'이다. 노인은 여전히 품위 있는 존재라는 뜻이다.
가노코는 2011년 이 집을 다룬 책을 내려고 처음 '요리아이'를 찾았다가 정작 책은 뒷전이 됐다. 데이케어 서비스인 '요리아이'가 2013년 숙박형 노인홈을 만들어내기까지 함께한다. 1억엔(약 10억원)이 넘는 건물 건립 비용은 도저히 무리. 그래도 '즐기자! 발버둥을 치더라도!'라고 외치며 어떻게든 해냈다. 가노코는 요리아이 이야기를 담은 잡지 '요레요레(비틀비틀)'를 비정기적으로 펴낸다. 이 잡지의 편집 방침은 하나. '웃겨야 한다'. "간병, 치매를 다루기 때문에 더욱 유쾌하고 통쾌하게." 잡지는 기대 이상으로 흥행하고 있다. 책은 수다스럽고 유쾌하다.
'처음 늙어보는 사람들에게'는 1993년 42세의 나이에 파킨슨병을 진단받은 미국 저널리스트 마이클 킨슬리(66)가 펴냈다. 파킨슨병 하면 육체적 노화부터 떠올리지만 사실 인지능력에도 장애가 생긴다. 발병 후 몇 년 지나 해본 인지능력 테스트에서 하위 2%라는 충격적인 결과가 나왔다. 하버드대 출신 엘리트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결과였다. 병 때문에 20년은 일찍 노화에 직면한 셈. 그는 자기 연민에 빠지지도 절망하지도 않는다. 대신 글쟁이 특유의 시니컬함이 있다. 파킨슨병 증상 완화를 위해 뇌 수술을 받은 그가 수술 직후 꺼낸 말. "개인이 세금을 덜 내면 세입이 늘어나지. 왜 이걸 몰랐지."(세금을 더 내야 세입이 늘어난다) 마치 수술에서 문제가 생겼던 것처럼 장난을 한 것. 그런 위트로 늙어감을 이야기한다.
킨슬리는 질병과 노화 앞에서 삶의 우선순위를 매긴다. 그는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게 능사가 아니라고 결론짓는다. "중요한 것은 평판, 개인적 평판이 아니라 (베이비붐) 세대가 어떻게 역사에 남느냐다." 그는 1951년에 태어난 미국 베이비붐 세대. "혼자만의 섬에서 살지 마라" "젊은 척하는 노인이 아니라 노인인 척하는 젊은이가 되라"는 충고가 책을 덮고도 기억난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16년 한국 치매 환자는 65만명이다. 7년 뒤에는 100만명으로 늘어날 전망. 심각해질 수밖에 없는 수치다. 동시에 '누가 해결해 주겠지'라며 눈을 돌리고 싶을 정도로 외면하고 싶은 문제이기도 하다.
결국 '젊은 사람'이 가장 큰 책임을 질 수밖에 없다. 가노코는 말했다. "치매 노인을 훼방꾼 취급하는 사회는 언젠가 치매에 걸리지 않은 사람도 훼방꾼 취급을 할 것." 유쾌함 속에 담긴 묵직한 펀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