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여행자들에게 '원 나잇 칵테일 트립' 인기
교토 일본식 정원에서 즐기는 칵테일 한 잔의 여유
홍콩이나 상하이 바에서 바텐더와 친구 되기도
요즘엔 오로지 좋아하는 칵테일 한잔을 마시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올 5월 황금 연휴에 해외를 나간다면, 여름 휴가를 화려한 동남아의 어느 도시로 떠날 꿈에 부풀어 있다면, 그 도시의 바(Bar) 정보도 꼼꼼히 챙겨두자. 머나먼 타지에서의 밤을 그저 숙면으로 보내버릴 순 없으니 말이다.
해외 여행 책자를 보면 돌아볼 곳, 묵을 곳, 먹을 곳과 함께 꼭 빠지지 않는 것이 ‘밤에 즐길 거리(Night Life)’ 섹션이다. 야시장에서 현지 맥주를 마셔보라고 제안하거나 특색있는 클럽에서 밤늦게까지 춤추는 걸 권하기도 한다. 그 도시의 밤을 흠뻑 느껴보기 위해선 역시 술만한 것이 없다. 최근 몇년 사이, 여행하는 도시의 유명한 바를 몇군데 둘러보면서 나이트 라이프를 즐기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 도시 여행을 제대로 즐기려면, 그 도시의 핫한 바를 찾아라
자연스레 해외 바 정보도 블로그를 통해 활발하게 공유되고 있다. 그리고 이 ‘원나잇 칵테일 트립’에 가장 적극적인 사람은 바로 바텐더다. 해외 트렌드를 공부하고, 아이디어를 얻고, 해외 바텐더와의 교류를 위해 짬날 때마다 해외 바로 향한다. 아시아는 물론이고, 유럽과 미국, 남미 대륙으로도 날아간다. 그러니 바텐더들에게 해외 도시에 있는 바를 추천 받는 것이 가장 좋은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지름길다. 하지만 친한 바텐더도 없고 해외 바 정보를 어디서부터 어떻게 얻어야 할지 몰라 막막하다면, 몇가지 팁을 아래에 소개한다.
해외여행 중 괜찮을 바를 찾는 가장 손 쉬운 방법은 공신력 있는 매체를 찾아보는 것이다. 전세계 바를 대상으로 매년 1위부터 50위까지 순위를 매기는 자료로 ‘The World’s 50 Best Bar’ 가 있다. 전세계에 퍼져 있는 심사위원(아카데미 멤버)들이 투표를 하기 때문에 방방곡곡 나라들에서 가볼만한 좋은 바들이 50위안에 오른다. 물론 런던과 뉴욕에 있는 바들이 상대적으로 순위에 많이 올라있지만, 그건 이 두 도시가 ‘칵테일 캐피털’이라 할만큼 바 시장에선 독보적인 도시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작년 암스테르담 여행 계획을 짜면서 이 리스트를 참고했다. 그저 ‘구글링’을 했다면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인테리어만 그럴싸한 바에 그쳤을 텐데, 이 리스트 덕분에 끝내주는 칵테일을 만드는 바를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재작년부터는 아시아 지역의 바들만 묶어 1위부터 5위까지 순위는 내는 ‘Asia’s 50 Best Bar’ 리스트도 발표되고 있다. 이 리스트가 한국의 ‘원나잇 칵테일 트립’ 족에게는 훨씬 유용하다.
처음 방문해 볼거리가 밤낮으로 너무 많은 유럽보다는 두세 번 방문해본 아시아 국가에서 여유를 가지고 칵테일 바를 찾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이다. 베이징, 상하이, 방콕 처럼 떠오르는 칵테일 도시들의 리스트도 충실하고 대만, 홍콩, 싱가폴의 수많은 바 중에서 괜찮을 곳을 선별해낼 수 있는 훌륭한 가이드로서의 역할도 톡톡히 한다.
◆ 긴자와 교토에서 일본식 칵테일 정수 맛보기
일본은 바 문화에 있어 아시아 그 어떤 나라보다도 오래된 전통을 가지고 있는 곳이다. 정갈한 바텐딩, 하드셰이킹 등의 일본의 독자 기술, 세심한 접객 서비스 등 일본은 확실한 자기만의 스타일이 있다. 도쿄는 긴자를 중심으로 몰려있는 고급스러운 바와 골목골목 허름한 바들이 풍성한 대비를 이루는 도시다. 하루에 두세군데를 너끈히 돌 수 있다. 도쿄만큼이나 요즘 재미있는 칵테일 도시는 교토다. 전통가옥과 일본식 정원이 눈길을 사로잡는 ‘Common one’ 바나 ‘Kangaan’ 바는 일본식 칵테일의 정수를 즐길 수 있는 곳이다.
‘Rocking Chair’바처럼 유명 바텐더가 바를 지키고 있는 곳도 있고 ‘Calvador’ 바처럼 칼바도스라는 주류를 매니악하게 구비해두는 독특한 바도 있다. 교토의 바들은 고즈넉한 풍광과 잘 어우러져 있다는 점, 걸어서 닿을 수 있는 가까운 거리에 좋은 바들이 몰려있다는 점이 매력이다. 교토만 둘러보기 아쉽다면 짬을 내 ‘나라’로 넘어가 ‘Lamp’바를 마저 둘러보면 완벽한 칵테일 여행이 될 것이다. ‘Lamp’는 지난 2015년, 세계 바텐더 대회인 ‘월드 클래스’에서 1위를 한 바텐더가 조용히, 하지만 강력하게 칵테일을 만들고 있는 곳이다.
◆ 화려하고 안전한 홍콩 바에서는 얼그레이 캐비어 마티니 한잔
불빛이 번쩍이는 홍콩의 유흥가를 가면 마구 술이 먹고 싶어진다. 치안이 좋은 홍콩인만큼 밤을 더 길게 보내고 싶어지고, 그럴때면 홍콩의 독특한 바들을 찾아간다. 홍콩 바 투어를 할 땐 가장 먼저 센트럴 할리우드 로드에 있는 ‘Quinary’를 찾는다. 이곳을 지키는 안토니오 라이 오너 바텐더는 국내에도 여러번 방문한 적 있고 넓은 발만큼이나 쾌할한 성격을 지녔는데, 이 바의 칵테일 역시 독특한 식재료의 조합으로 예상치 못한 즐거움을 선사한다. 얼그레이 캐비어 마티니가 대표 칵테일이다.
안토니오 라이가 운영하는 또 다른 바, 진 중심의 바 ‘Ori-gin’도 재미있다. 입구가 어딘지 도통 알 수 없는 ‘Stockton’은 들어서면 또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활발한 바텐더들이 정신없이 칵테일을 만들지만 훌륭한 맛은 흐트러지지 않는다. 근처 ‘Honi Honi’바도 동아시아 최초의 티키바로 유명해진 곳이다. 대나무나 라탄 장식, 파인애플과 야자나무, 럼주와 크림, 하와이안 셔츠와 햇살로 대표되는 분위기의 바를 ‘티키바’ 라고 하는데 이곳이 딱 그 느낌이다. 침사추이로 넘어가면 칵테일 바와 루프탑이 결합된 화려한 바 ‘Maison Eight’도 가볼만 하다.
◆ 눈뜨면 새로운 바가 생겨나고 있는 상하이
상하이는 지금 정말 뜨겁다. 생긴지 몇 년 안된 바들이 줄줄이 ‘Asia’s 50 Best Bar’ 순위 상위에 올라가고 있고, 서구 바 문화권의 인물들이 상하이에 몰려가 바를 차리고 있다. 가장 뜨거운 도시, 가장 빠르게 변하고 있는 도시 상하이에선 가볼만한 바가 아주 많다. 카오루 타키라는 괴짜같은 바텐더가 있는 ‘El Ocho’를 가장 먼저 추천한다. 작년, 서울에서 열린 바텐더 자선행사에서 카오루 타키를 처음 만났는데, 우스꽝스러운 분장을 하고 장난스럽게 바텐딩을 하는 와중에도 칵테일 맛이 깜짝 놀랄 정도로 훌륭해서 놀란 기억이 있다.
‘Speak Low’는 ‘Asia’s 50 Best Bar’ 순위에서 2위에 오른 저력을 보여주는 바다. 뉴욕 ‘Angel’s Share’를 책임지는 고칸 신고가 상하이에 차린 바라서 유명세를 탔다. ‘Union Trading Company’도 작지만 알찬 바다. 이곳의 대표 야오 루는 공들인 칵테일 한 잔뿐만 아니라 편안한 분위기와 바의 철학과 의미까지 설파하는 지적이고 매력적인 바텐더다.
이밖에도 런던와 뉴욕, 대만과 싱가폴에도 가볼만한 바들이 수두룩하다. 어떤 도시든 방문할 일이 있다면 주저말고 그 도시의 바를 찾아가보자. 여행의 새로운 재미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해외 여행 일정이 없다면, 해외의 유명 바텐더들이 서울의 바를 찾아 하루, 혹은 이틀간 특별한 바텐딩을 하는 ‘게스트 바텐딩’을 노려본다. 청담동 르챔버, 청담동 키퍼스 등지에서는 바 애호가들의 비행기값을 줄여주는 특별한 ‘게스트 바텐딩’을 수시로 연다. 당장 오는 4월엔, 런던 사보이 호텔에 있는 전설적인 바 ‘어메리칸 바’의 헤드 바텐더 에릭 로린츠가 르챔버를 찾아온다. 이런 정보를 잘 기억해 둔다면 칵테일 한잔에 해외여행하는 기분을 만끽할 수 있다.
◆ 손기은은 남성 라이프스타일 월간지 ‘GQ KOREA’에서 음식과 술을 담당하는 피처 에디터로 9년 째 일하고 있다. 이제 막 문을 연 레스토랑의 셰프부터 재야의 술꾼과 재래시장의 할머니까지 모두 취재 대상으로 삼는다. 특히 요즘은 제대로 만든 칵테일 한 잔을 즐기기 위해 바와 바를 넘나드는 중이다. 바람이 불면 술을 마신다. 하지만 바람이 불지 않는 날이란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