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은 왜 음악같을 수 없는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한 추상화가 칸딘스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 프로이트의 무의식 등으로 날개 단 추상 미술
무념무상 상태의 손이 그린 작품… 자동기술법의 등장
햄릿 : 저기 낙타 모양의 구름이 보이는가?
폴로니우스 : 정말 틀림없이 낙타 모양인데요.
햄릿 : 내 생각엔 족제비 같은데,
폴로니우스 : 족제비 등 같군요.
햄릿 : 고래 등 같기도 하고.
폴로니우스 : 정말 고래 같이 보입니다.
'햄릿', 윌리엄 셰익스피어 중에서
추상(抽象)미술은 낙타인지, 족제비인지, 고래인지, 아니면 다른 무엇인지 인간이 인지할 수 없는 어떤 미지의 세계를 형상화한 작품을 말한다. 왜 예술가들은 스스로 설명하기도 어렵고 관객이 이해하기는 더욱 난해한 추상미술을 시작했을까?
작년 11월 16일 크리스티 경매에서 모네(Claude Monet, 1840-1926)의 ‘건초더미(1891)’가 8140만 달러(약 920억 원)에 팔렸다. 모네의 작품으로는 최고 기록이다. 모네는 이 작품에서 건초더미라는 소재가 잘 드러나지 않을 정도로 빛(색채)을 강조했다.
◆ 서른의 칸딘스키를 매혹시킨 추상미술…‘재구성’의 미학
추상미술의 아버지,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 1866-1944)는 이 작품 앞에서 화가가 될 결심을 했고, 추상에 눈을 떴다. “나는 건초더미를 그린 그림 앞에 서 있었는데 그것을 알아보지 못했다. 나는 당황스럽고 괴로웠다. 나는 ‘이 작품에는 주제가 없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작품은 경이롭고 기억 속에 강하게 새겨졌다. 분명한 것은 색채가 가지고 있는, 믿을 수 없는 미지의 힘이었다. ‘대상’은 나에게서 중요성을 잃고 있었다. (, 1913)
칸딘스키는 당시 30살, 모스크바 대학 법대 교수였다. 그는 이듬해인 1896년 교수직을 버리고 독일, 뮌헨으로 가서 화가가 되었다. 그는 에서 완전한 추상으로 전환하게 된, 1908년 어느 날의 일화를 소개했다.
"화실 문을 열었을 때, 갑자기 표현 불가능한 아름다움을 지닌 한 폭의 그림을 마주쳤다. 나는 너무 놀란 나머지 그 자리에 멈춰 섰다. 화면은 다만 색채의 찬란한 얼룩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다가가 보니 그것은 이젤 옆에 비스듬히 세워놓은 나의 그림이었다."
칸딘스키는 1910년 최초의 추상화라는 '추상적 수채화'를 그렸다.(이 작품은 1914년에 그린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예술은 인간의 유희(遊戲)로부터 나왔다. ‘원더랜드’의 저자 스티븐 존슨(Steven Johnson, 1968)은 ”사람들이 가장 큰 즐거움을 느끼는 모든 곳에 미래가 있다.“고 했다.
인간은 귀를 즐겁게 하기 위해 음악을 하고, 눈을 즐겁게 하기 위해 미술을 한다. 태초 이래 매우 오랫동안, 인간은 자연을 모방하고 재현하는 그림을 그리며 놀았다. 음악으로 치면 새 소리, 계곡의 물 흐르는 소리, 파도 소리, 바람 소리, 천둥소리 등 인간이 인지할 수 있는 자연의 소리만을 흉내 내는 음악을 만들면서 놀았다는 얘기가 된다. 얼마나 단조로운 일인가. 자연의 모방과 재현만으로 음악을 했다면 바흐, 모차르트, 베토벤은 존재하지 않았다.
미술은 왜 음악 같을 수 없는가, 라는 질문에서 추상미술의 한 가닥인 칸딘스키의 미술은 출발한다. 미술이 대상의 재현을 벗어나면 훨씬 더 재미있지 않을까. 미술의 기본 요소인 색채와 형태를 음악의 악보처럼 쓸 수 없을까. 미술을 대상으로부터 해방시킬 수 없을까. 미술도 음악처럼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즐거움과 감동을 줄 수는 없을까.
1911년 1월 뮌헨에서 쇤베르크(Arnold Schoenberg, 1874-1951)의 음악에 감동한 칸딘스키는 라는 그림을 그렸다. 칸딘스키와 쇤베르크의 우정은 평생 지속된다. 칸딘스키는 자신의 작품이 순전히 추상적이면서, 듣기 좋은 울림이 있는 악보처럼 보이길 바랐다. 그는 라는 저서에서 ”색은 영혼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힘이다. 색은 건반, 눈은 현을 때리는 해머, 영혼은 여러 개의 현이 달린 피아노다. 예술가는 피아노를 연주하는 손이다. 그들은 건반을 눌러 영혼을 전율케 한다,“고 했다. 칸딘스키는 이러한 철학에 동조하는 작가들을 규합하여 ‘청기사파’를 만들었다. 쇤베르크도 여기 합류했다.
◆ '대상의 재현'을 뛰어넘은 '본능'에 기반한 미술…오르피즘(Orphism)의 등장
시인 아폴리네르는 칸딘스키, 쿠프카, 들로네, 클레 등 음악에서 영감을 얻어 추상미술을 개척한 화가들의 운동을 ‘오르피즘(Orphism)’이라고 불렀다. 그리스 신화 속의 음유시인이자 음악가인 오르페우스(Orpheus)에서 따왔다.
20세기 초 많은 화가들이 추상미술로 눈을 돌리게 만든 것은 과학 문명의 발전과 인간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이기도 했다. 1905년 아인슈타인이 발표한 상대성 이론은 인간이 인지하는 시공간은 허상일 뿐이라는 깨달음을 주고 우주는 우리의 상상이 미칠 수 없는 불가사의하고 거대한 존재라는 좌절을 불러왔다.
여러 물리학자들에 의해 발전돼온 양자역학은 세상에는 아무것도 확실한 게 없다는 불확정성의 원리를 내놓아 고전물리학은 더 이상 진리가 아님을 증명했다. 아니, 세상에는 무엇도 진리라고 주장할 수 없음을 보여주었다. (아인슈타인은 ‘신은 주사위놀이를 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파인만은 세상에 양자역학을 이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생각하는 편이 안전할 거라고 말했다. 최근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이며 양자역학 최고의 권위 와인버그(Steven Weinberg, 1933)는 ‘나는 이제 양자역학을 확신할 수 없다’고 고백했다.) 양자역학은 100년이 지난 지금도 미지의 세계로 남아있다.
뢴트겐(Rontgen Konrad, 1845-1923)은 1895년 ‘뢴트겐선(X선)이라 불리는 파장이 짧은 전자기파를 발견하여 사물의 내부를 들여다 볼 수 있게 했다. 인간은 큰 것은 커서 작은 것은 작아서 못 본다. 투시력이 없어서 사물의 내부를 들여다 보지 못한다. 이러한 깨달음을 얻은 것은 겨우 20세기 들어서다.
1899년 ’꿈의 해석‘을 출간하고 정신분석학을 창시한 프로이트(Sigmund Freud)는 인간을 움직이는 것은 우리가 인지할 수 없는 ‘무의식(Unconsciousness)’ 이라고 주장했다.
이와 같은 발견들과 사고의 전환은 인간의 ‘이성’에 대한 믿음에 기반을 둔 ‘합리주의’, ‘계몽주의’의 근간을 송두리째 흔들면서 이후의 철학, 예술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우리는 베이컨(Francis Bacon, 1561-1626)의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말을 믿었는데, 우리가 ‘아는 것’은 ‘잘못 알고 있는 것’이었으며, 잘못 아는 것은 힘이 아니라 족쇄임을 깨달은 것이다. 현대철학은 여기서 출발한다.
화가들은 모이면 상대성 이론과 4차원의 세계, 양자와 우주를 얘기했다. 무의식을 논하고 과학문명을 얘기했다. 그들이 믿어온 진실이 얼마나 허망한가를 얘기했다.
◆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이 바꾼 화풍(畵風)…미술 속으로 들어간 신지학
칸딘스키를 비롯한,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에 영향을 받은, 일군의 화가들은 무의식을 끌어내기 위해 자유연상법, 자동기술법(automatisme)을 작품에 활용했다. 자동기술법은 무념무상의 상태에서 손이 가는대로 쓰거나 그리는 것을 말한다.
프로이트의 학설에 기반을 두고 브르통(Andre Breton)이 창시한 ‘초현실주의(Surrealisme)’는 문학과 미술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는 1924년 제1선언에서 ”초현실주의는 이성에 의한 일체의 선입관 없이, 또한 미학적, 윤리적인 일체의 선입관 없이 행해지는 사고의 진실을 기록하는 것이다.“고 주장했다. 자동기술법은 초현실주의 화가인 막스 에른스트, 앙드레 마쏭, 호앙 미로를 거쳐 미국의 추상표현주의 화가 잭슨 폴록, 앵포르멜 화가인 뒤뷔페에게 까지 이어진다.
칸딘스키, 폴록과 더불어 신지학의 신봉자였던 몬드리안(Piet Mondrian, 1872-1944)이 창안한 ‘신조형주의(Neo Plasticism)’는 우주와 인간의 합일, 개별 요소들의 평등, 내면과 외면의 통일 같은 신지학의 주장을 따랐다.
몬드리안은 미술에서 자연의 재현적 요소를 없앰으로써(탈자연화, denaturalized) 순수한 추상에 이르고자 했다. 그는 8가지의 조형요소인 수직선과 수평선, 빨강, 파랑, 노랑의 삼원색 그리고 백색, 회색, 검은색의 3 무채색으로 우주의 불변하는 보편적 법칙을 나타내고자 했다. ‘단순할수록 아름답다’는 철학의 몬드리안 작품은 이브 생로랑을 비롯한 디자인에 널리 적용되었다.
러시아의 말레비치(K. S. Malevich, 1878-1935)는 ‘절대주의(Suprematism)’라는 이름으로 추상미술을 극단의 형태로 몰고 갔다. ‘검은 사각형(Black Square), 1915’이라는 그의 작품은 흰색 바탕에 까만색의 사각형만 그려 놓았다. 그는 합리주의라는 감옥을 벗어나기 위해 모든 것을 무(無)화 시켰다. 어마어마한 중력으로 빛을 포함한 주변의 모든 물질을 빨아들이는 블랙홀 같다. 우주의 96%를 차지한다는 암흑물질, 암흑에너지처럼 보이기도 한다. 말레비치는 이 작품으로 우주와, 그 안의 모든 생명체를 나타내고자 했으며, 빛과 어둠, 삶과 죽음을 다루고자 했다.
유발 하라리( Yuval Noah Harari, 1976)는 별로 대단치 않은 동물 호모 사피엔스가 세상을 지배하게 된 것은 보이지 않는 것, 존재하지 않는 것(허구, fiction)을 상상하고 만들어내는 능력 때문이라고 한다. ‘문화’도 여기서 나왔다. 미술에서의 이러한 능력은 겨우 20세기 와서야 발현되기 시작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 김순응은 서던캘리포니아대학교(USC)에서 경영학 석사(MBA)를 받고, 23년 간 금융업에 종사하다 미술에 대한 열정과 사명감으로 50세에 미술계에 뛰어들었다. 하나은행 자금본부 본부장을 거쳐 2001년부터 3년 간 서울 옥션 대표로 활동했다. 2005년 케이옥션을 만들어서 국내 미술품경매산업의 눈부신 성장에 기여했으며, 현재는 김순응아트컴퍼니를 만들어 젊은 작가 지원에 힘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