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39·서울 송파)씨는 지난달 자녀의 초등학교 예비소집에 다녀온 직후 퇴사를 결심했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간다는 것을 체감한 순간, 책임감과 부담감이 밀려왔기 때문이다. 졸업식과 입학식 등 2~3월에 몰린 행사 때마다 월차를 내는 것도 눈치가 보였다. 가장 마음에 걸린 것은 3월 한 달간은 학교 적응기간으로, 아이가 12시경 집에 돌아온다는 현실이었다. 이후에도 하교 시간이 크게 늦춰지지 않는다. 김씨는 그간 국공립 어린이집 종일반을 다니며 7시에 집에 오던 아이가 점심때 돌아온다는 생각을 하자 눈앞이 깜깜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아들을 둔 직장인 장서연(40·서울 은평)씨는 이달 초 회사에 육아휴직서를 냈다. 주변 선배 엄마들로부터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할 무렵에는 엄마 손길이 많이 필요하다는 조언을 수없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이가 12월생이라 뭐든 또래보다 늦되다는 점과 소극적인 성격이라는 점도 한몫했다.
자녀의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워킹맘들이 술렁이고 있다. 최근 엄마 대상 육아커뮤니티에는 초등 입학을 앞두고 있는 아이를 위해 회사를 그만뒀다는 글이 심심치 않게 올라오고 있다. 서울시직장맘지원센터에도 초등 자녀를 둔 직장맘들의 육아휴직에 대한 상담건이 평소 대비 2~3배 이상 접수되고 있다. 현실적으로 육아휴직이 불가능한 경우에는 퇴사로도 이어지고 있다. 그동안 잘 버텨오던 워킹맘들이 이 시기에 회사를 그만두는 이유는 무엇일까.
◇'초 1' 문턱에서 무너지는 워킹맘 늘어
예비 초등 3학년과 1학년인 두 아들을 둔 박정미(41·경기 성남)씨는 지난주부터 육아휴직에 들어갔다. 첫째가 초등 1학년 때 학교에 적응하지 못해 오랜 기간 힘들어했던 시행착오를 반복하고 싶지 않아서다. 2년 전 박씨는 오후 1시쯤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를 7시까지 학원에 보냈다. 중간에 공백이 있으면 안 될 것 같아 학원 시간표를 빽빽하게 짰다. 매일 평균 2~3군데 학원에 다닌 아이는 심리적으로 너무 힘들어했고, 급기야 이유 없이 아프기까지 했다. 더는 안 되겠다 싶어 학원 대신 맞벌이 가정을 위해 만들어진 교내 돌봄교실에 보내봤지만, 여기서도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지 못했다. 박씨는 "한창 에너지를 발산하며 뛰어놀아야 할 남자아이를 작은 교실에 가둬둔 탓"이라며 "둘째는 이런 실패를 겪지 않기 위해 일찌감치 육아휴직서를 냈다"고 말했다.
평소 '악바리'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열심히 일했던 직장인 김현(39·서울 마포)씨도 최근 딸의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퇴사했다. 출산휴가도 다 쓰지 않고 복귀해서 일할 만큼 열의가 높았던 그녀였다. 하지만 집에서 학교까지 20분 거리를 매일 혼자 통학할 외동딸을 생각하니 그대로 있을 수가 없었다. 육아휴직을 쓰고 싶었지만, 회사 분위기가 그렇지 못해 울며 겨자 먹기로 사직서를 썼다. 김씨는 "자녀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이면 부모가 회사에서 중요한 책임을 진 관리자 위치에 있을 가능성이 크다"며 "월차·반차를 내는 게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아쉽지만 어쩔 수 없었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올해 초등 3학년에 올라가는 딸을 둔 이유나(38·서울 강남)씨 역시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할 무렵 회사를 그만뒀다가 최근 재취업했다. 그녀가 퇴사를 결심한 데는 엄마들과의 교류 문제가 한몫했다. 워킹맘은 아무래도 다른 엄마들과 접촉할 기회가 적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저학년 시기에는 엄마들 간의 유대관계가 아이들의 친구관계에도 영향을 미쳐요. 요즘 대다수 초등학교에서는 저학년 수업이 모둠으로 이뤄지는데, 친한 엄마들의 아이들끼리 모둠을 짓는 경우가 많거든요. 이때 워킹맘의 아이들은 소외될 수밖에 없어요. 심지어 워킹맘은 같은 반에 친한 엄마가 없으면 준비물이나 학교 행사에 대한 정보조차 알기 어렵지요."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첫째와 네 살이 된 둘째를 둔 강혜진(35·서울 양천)씨는 남편 권유로 퇴사했다. 매일 저녁 8~9시에 퇴근해 두 시간 정도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고, 영어를 가르치는 일상에 허덕이는 모습을 남편이 안타까워했기 때문이다. 강씨는 "교육열이 높은 지역에 살아서 혹여나 학교에 들어갔을 때, 다른 아이에게 뒤처지지 않을까 걱정이 많았다"며 "살림은 좀 빠듯해지겠지만, 이 시기에 공부 습관을 제대로 잡지 않으면 나중에 후회할 것 같았다"고 말했다.
◇선배 맘들의 조언 "첫 학기를 잘 견뎌라"
전문가들과 선배 엄마들은 "초등학교 입학 무렵은 그 어느 때보다 부모의 관심이 많이 필요한 시기"라고 입을 모은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때까지 엄마 도움이 상당히 필요하다는 데에도 이견이 없었다. 그렇지만 무조건 퇴사하기보다는 일단 부딪쳐보면서 상황에 맞는 해결책을 찾는 게 좋다는 의견이 많았다. 퇴사할 경우, 나중에 재취업하기가 쉽지 않아서다.
초등 3학년과 6학년 두 아들을 둔 워킹맘 최하나(44·서울 서초)씨는 "아이들이 초등학교 들어갈 때 심각하게 퇴사를 고민했다"며 "전업주부와 똑같이 아이들에게 해줄 수 없음을 인정하고, 뭐든지 완벽하게 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버리자 죄책감과 책임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워킹맘 김이안(39·서울 동대문)씨는 "두 아이를 학교에 보내보니 입학 후 첫 한 학기를 어떻게 보내느냐가 아이 학교생활을 좌우하더라"며 "1학년 1학기를 잘 보내면 좋은 습관이 몸에 배 나머지 기간도 잘 적응할 확률이 높다"고 강조했다. 김씨는 "힘들더라도 퇴근 후나 주말을 활용해 평소보다 더 아이에게 관심을 쏟았고 틈틈이 학교생활 적응 여부를 물었다"고 말했다. 주변에 적극적으로 도움을 구하라는 조언도 나온다. 한 학기만이라도 조부모 등에게 아이의 등하교를 부탁하거나 학습시터를 활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두 아이를 둔 워킹맘 전효인(40·서울 강북)씨는 "학교 행사 때 만난 다른 엄마에게 솔직하게 사정을 얘기하고 궁금한 점이 있을 때마다 도움을 청했다"며 "요즘은 알림장 앱 등을 활용하면 남에게 의지하지 않고도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마저도 여의치 않다면 퇴사보다는 육아휴직이나 탄력근무제를 활용하는 게 좋다. 이수연 한국워킹맘연구소장은 "더는 부모의 육아휴직을 개인의 문제로 바라봐서는 안 된다"며 "기업에서는 심각성을 인지해 워킹맘을 배려하는 문화를 만들어야 하며 학교에서는 학부모가 참여하지 않아도 아이가 차별받지 않는다는 믿음을 줘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