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소설가 구효서씨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본인의 강력 추천으로 선정된 세계문학상 대상 당선자가 지난해 12월 '문학동네소설상'을 받으며 소설가로 데뷔한 도선우(46)씨였기 때문이다. 구씨는 "글만 봤을 땐 많아도 서른 초반일 거라 생각했다. 마흔이 넘었을 거라고 예상치 못했다"고 말했다. 서른여섯에 처음 소설을 써봤다는 이 신인은 두 달 새 순문학적 성격의 문학동네소설상과 대중적 기호를 주목하는 세계문학상을 연거푸 받으며 강렬한 존재감을 보였다.
40대에 데뷔한 늦깎이 신인 소설가들이 잇따라 신작을 쏟아내고 있다. 최근 첫 단편집 '커트'를 낸 소설가 이유(48)씨는 41세, 첫 장편 '변사 기담'으로 올해 동인문학상 본심에 오른 양진채(51)씨는 42세, 첫 초단편집 '망상, 어'를 낸 김솔(44)씨는 한국 나이 마흔에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49세에 소설가로 데뷔한 임재희(53)씨는 최근 데뷔작을 제외하면 첫 장편인 '비늘'을 지난달 25일 내놨다.
통계청에 따르면, 1970년 61.9세였던 우리나라 평균 기대 수명은 2015년 82.1세가 됐다. 1970년 마흔에 데뷔한 고(故) 박완서가 데뷔 당시부터 중년 작가로 여겨졌다면,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얘기다. 한 중견 소설가는 "이젠 60세가 돼도 환갑 잔치는커녕 노년이라 말하기도 힘든 세상"이라며 "신체 나이가 변했으니 감정이 젊어지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현재 인천 새얼문화재단에서 소설 창작 강의를 하고 있는 양씨는 "수강생 과반이 40대 이상인데 그들이 쓴 작품이 전혀 고루하지 않다"며 "몸보다 정신의 연령이 글의 나이를 결정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퇴적된 삶의 궤적이 넓기에 젊은 작가들이 주로 겪는 소재적 빈곤 등을 피해 가기도 쉬운 것 같다"고도 덧붙였다.
마흔을 넘긴 나이에 데뷔해 필봉을 휘두르고 있는 대표적 소설가는 간호사와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직원으로 일하다 2007년 등단한 정유정(51)씨. "'7년의 밤' '28' '종의 기원' 등이 연속 히트하면서 40대 등단 작가의 표상이 박완서에서 정유정으로 바뀌고 있는 것 같다"는 평도 나온다. 정씨처럼 다른 작가 역시 문학과 별 관련 없는 삶을 살다 발동이 걸린 경우다. 관광경영학을 전공한 뒤 무역업에 종사하는 도씨뿐 아니라, 이씨는 수학과를 졸업한 뒤 출판사에서 수학 교재를 만들었고, 양씨는 한국어교육과를 나와 출산 후 주부, 미국 시민권자인 임씨는 미국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한 뒤 귀국해 영미 문학 번역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김씨는 기계공학과를 졸업해 굴착기 제작 회사에 다니고 있다. 김씨는 "대학 시절 문예 창작 교육을 받진 못했지만 제도권 밖에 있다 보니 도식적 작법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았나 싶다"고 자평했다. 강유정 문학평론가는 "과거 늦깎이 작가들은 자신의 삶에서 소재를 찾는 자전적 경향이 강했던 반면, 지난해 53세에 '창비장편소설상'으로 데뷔한 금태현씨처럼 최근엔 완전한 허구에서 출발하는 사례가 늘었다"며 "소설을 철저히 이해하는 준비된 늦깎이가 많아지면서 문단이 풍성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뒤늦게 시작한 만큼 갈 길이 바쁘다. 이씨와 양씨는 올해 안에 장편과 단편집 작업을 마무리할 예정이고, 임씨는 단편집과 인도 출신 미국 소설가 새미어 판디아의 'The Blind Writer' 번역본을 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