톰 포드 수트는 남자의 코르셋... 콜린 퍼쓰, 공유 등이 톰 포드 룩의 수혜자
1990년, 파산 직전의 구찌를 구해내며, '쾌락주의 패션' 시대 열다
슬림한 재킷 허리, 발목 길이 팬츠로 남자만의 섹슈얼 찾아

마지막 구찌 패션쇼에서 고별 워킹 중인 톰 포드. 광택나는 칼라의 검정 더블 브레스티드 수트, 새하얀 셔츠, 포켓 스퀘어, 코사지 장식까지 완벽한 수트룩으로 구찌에서의 마지막을 빛냈다.

◆ 굿바이 구찌, 톰 포드 수트 판타지의 시작

2004년 2월 25일 밀란, 구찌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톰 포드가 펼치는 마지막 패션쇼. 톰 포드가 가장 아끼는 96년 가을 컬렉션의 화이트 드레스를 입은 슈퍼모델 조지나 그렌빌이 멋진 워킹과 함께 백스테이지로 사라졌다. 잠시 후 패션쇼장에는 장미 꽃잎이 폭죽처럼 흩어져 내렸고, 암흑 속에서 톰 포드가 모습을 드러냈다.

한치의 오차도 없는 더블 브레스티드(double breasted : 겹여밈) 수트를 입고 옅은 미소를 띤 채 걸어 나오는 톰 포드는 완벽했다. 가슴 골이 보이는 셔츠는 말끔하게 다려져있고, 재킷 포켓 위에는 새하얀 코사지가 달려 있었다. 셔츠의 단추를 푼 매무새까지 정교했던 그날의 피날레 룩은 가장 기억에 남는 톰 포드 수트룩의 하나로 기록됐다. 동시에 세상 남자와 여자들의 마음을 훔칠 ‘톰 포드 수트’ 판타지의 첫 장이 열리는 순간이었다.

노타이에 셔츠를 풀어헤쳐 은밀하게 섹시함을 드러내는 스타일링은 톰 포드의 대표룩이 됐다.

◆ 1990년 파산 직전의 구찌에 심폐소생술, 쾌락주의 패션 열다

1990년, 처음 톰 포드가 구찌의 여성복 수석 디자이너로 영입됐을 때 구찌는 파산 직전이었다.
회생 불능해 보였던 구찌를 심폐소생시킨 건, 톰 포드가 추구하는 '쾌락주의 패션' 이었다. 은밀하면서도 대담한 '섹슈얼 코드'를 담아 구찌를 리브랜딩하여, 늘 뭔가 신선한 충격을 갈망하는 패션 피플들을 단숨에 매혹시켰다.

무엇보다 톰 포드 그자신이 누구보다 멋진 ‘쾌락주의 패션’의 모델이었다. 패션 디자이너로서 드문 할리우드 스타급의 뛰어난 비주얼에, 풀어헤친 셔츠와 광택나는 수트로 상징되는 ‘구찌룩’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독차지했다. 그당시 톰 포드는 한 패션지와의 인터뷰에서 “만약 내가 톰 포드 개인 컬렉션을 디자인한다 해도 똑같은 옷을 만들었을 거예요”라고 당당하게 밝혔었다. 돌이켜보면, 그 시절의 ‘구찌룩’은 사실 ‘톰 포드룩’이었던 셈이다.

특히 그가 수트를 입는 방식은 현기증을 일으킬만큼 완벽하다. 0.1mm의 오차도 허락치 않는 영국 수트의 완벽한 테일러링과 이탈리아 수트의 슬림하면서도 정교한 감성, 프렌치 수트의 꾸뛰르 적인 섬세함이 조화롭게 교차된다. 거기에 톰 포드만의 관능이 더해져, ‘톰 포드처럼 수트를 입고 싶다’는 욕망을 들끓게 한다.

톰 포드 스타일을 규정짓는 넓은 와이드 라펠의 검정 수트와 타이, 새하얀 셔츠, 보잉 선글라스.

◆ 발목 길이 팬츠로 남자의 다리 라인을 재창조

톰 포드 수트 기술을 터득한다는 건, 곧 유혹의 기술을 레슨 받는 것과 같다. 그는 수트로 상대를 유혹하고 자신을 마케팅하는데 본능적으로 타고난 기술자다.

첫번째 수트 기술은 코르셋과 같은 '수트핏'이다. 톰 포드 수트는 남자의 코르셋이라고 불려지기도 한다. 마치 여자들이 코르셋이나 하이힐을 신었을 때와 같은 드라마틱한 실루엣을 연출하기 때문이다.
와이드 라펠(wide lapel: 넓은 폭의 칼라), 로프트 숄더(roped shoulder: 어깨 끝 라인을 올린 정통 스타일), 슬림한 허리 라인, 큰 티켓 포켓(동전, 전차 티켓 등을 넣기 위해 디자인된 포켓. 보통 오른쪽 포켓 위에 덧대어져 있다) 등으로 대표되며, 남성의 섹슈얼한 매력을 우아하게 극대화시켜준다.

두번째는 꺽임없이 곧은 팬츠의 길이다. 긴 슬림 라인의 팬츠를 입는 다고 다리가 길어보이는 건 아니다. 더 중요한 건 밑단의 길이다. 움직일때마다 살짝 양말이 드러나는 길이로, 절대 구두에 꺾이지 않게 하여 길고 곧은 다리를 연출한다.

회색과 흰색의 심플한 컬럽 배합과 완벽한 수트핏의 조화.

세번째는 검정, 회색, 백색의 ‘모노크롬 시크(monochrome chic: 흑백의 미니멀한 컬러로 연출하는 스타일)’다. 검정 수트와 새하얀 셔츠, 짙은 회색 수트와 좀더 연한 회색의 셔츠를 매치시키는 등 톰 포드는 ‘흑백 스타일링’에 탁월하다. 이 전통 깊은 컬러들이 수십 또는 수백가지의 톤과 질감을 지녀, 어떤 프린트나 화려한 컬러들보다 더 강력한 한방의 임팩트가 된다.

네번째는 노타이와 타이 룩의 ‘극과극’ 스타일링이다. 그는 ‘타이룩’에서 딤플(dimple: 넥타이 매듭 중앙의 주름)을 깊게 넣는 윈저 노트(Windsor knot: 매듭이 좌우로 대칭되고 비교적 넥타이 매듭법)와 포켓스퀘어까지 장식한 정통 클래식 스타일을 보여준다. 그러나 ‘노타이룩’에선 ‘톰포드룩’의 상징이 된 가슴 중앙까지 풀어헤친 셔츠로 은밀하게 섹시함을 드러내거나, 머플러를 여러번 둘러 스타일리시한 룩을 연출하기도 한다.

또한 그는 자신의 디자인 스튜디오에서 또는 영화 촬영장에서 격렬하게 일에 몰두하는 순간조차 흐트러짐이 없다. 풀어헤친 화이트 셔츠 위로 클래식한 조끼를 덧입어, 일하는 순간조차 톰 포드 같이 입고 싶다는 남자들의 욕망을 자극한다.

◆ 콜린 퍼스, 다니엘 크레이그, 공유 그리고 톰 포드

영화 감독으로서 첫 데뷔작인 ‘싱글맨’을 촬영 중인 톰 포드와 영국 배우 콜린 퍼스. 영화 촬영 장에서도 새하얀 셔츠와 수트 베스트의 빈틈없는 워킹 룩을 연출한다.

톰포드 수트가 얼마나 유혹적인가는 그가 감독한 첫번째 영화 ‘싱글맨’에서 다시 증명된다. 영국 배우 콜린 퍼스가 연기한 조지는 톰 포드 그 자체였다. 콜린 퍼스는 영화 ‘싱글맨’을 통해 남성 수트사에 영원히 기록될 스타일로 재탄생됐다. 시상식 룩을 결정해야 할 때마다 톰 포드에게 조언을 구한다는 콜린 퍼스는 자신이 톰 포드를 알기 전과 후로, 그의 스타일이 나뉜다고 말했을 정도다.

영화보다 수트로 더 이슈를 일으켰던 ‘007 스펙터’의 다니엘 크레이그의 스타일도 톰 포드의 작품이다. 기관단총을 난사하고 건물에서 뛰어내리는 다니엘 크레이그의 액션신이 더할나위 없이 섹시하고 우아했던 건, 톰 포드의 수트핏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 드라마 ‘도깨비’에서 수많은 여자들에게 심정지 현상을 일으켰던 공유의 수트도 톰 포드다. 베스트까지 완벽했던 공유의 쓰리피스 수트(three-piece suit: 베스트, 재킷, 팬츠로 구성된 정통 수트)는 톰 포드가 공식 석상에서 즐겨입는 대표 룩이다.

드라마 ‘도깨비’에서 톰 포드의 쓰리피스 수트를 입은 공유

톰 포드는 뛰어난 감각의 디자이너일 뿐 아니라 본능적인 마케팅의 귀재다. 파산 직전의 구찌를 4억 달러 이상의 가치로 끌어올리고 외형상 277% 성장시킨 레전드급의 성공 스토리도, 그 스스로 슈퍼스타가 된 것도, 사람들의 내재된 욕망을 패션으로 분출시키는데 뛰어났기 때문이다. 자신을 브랜딩하기 위해선 수트로든, 그 다른 무엇으로든, 톰 포드처럼 상대를 유혹할 줄 알아야 한다.

◆ 김의향은 보그 코리아에서 뷰티&리빙, 패션 에디터를 걸쳐 패션 디렉터로 활동했다. 보그 코리아 패션 디렉터로 일할 당시 하이패션만을 고수하기보다 다양한 라이프 스타일 장르와 상호 융합적이고 동시에 실용적인 스타일 아젠다를 만들어냈다. 현재는 컨셉&컨텐츠 크리에이팅 컴퍼니 ‘케이노트(K_note)’를 통해 크리에이터이자 스토리텔러로 일하고 있다. 패션, 뷰티, 라이프스타일을 넘나들며, 그 안에서 브랜드와 소비자의 감성 브릿지를 연결하는 스토리를 개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