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김정은의 이복형 김정남이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공항에서 피살됐다. 북 공작원으로 추정되는 여성 2명에게 독침을 맞은 것으로 알려졌다. 말레이시아 경찰은 이 여성 2명을 추적 중이라고 한다. 김정남은 2010년 김정은이 후계자로 확정된 후 암살 위협을 피해 해외를 전전하며 살아왔고, 2011년 김정일 사망 때는 평양에 들어가지도 못했다.

김정남은 그동안 중국과 마카오·싱가포르 등 동남아시아 일대를 떠돌며 낭인 생활을 해왔다. 암살설, 망명설 등이 워낙 여러 번 돌았기 때문에 그의 신변은 국제적 관심사였다. 북이 그를 죽이려 해도 큰 부담이 따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김정남은 결국 살해당했다. 김정은 정권의 광기가 어느 정도에 이르렀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다.

김정은은 2013년엔 경제 개방론자인 고모부 장성택을 고사총으로 쏘아 죽였다. 죽이기 전 국가보위부원들이 끌고나가는 장면까지 공개했다. 북 인권운동 단체인 북한전략센터는 이때 처형·고문·숙청당한 사람이 1000명에 이른다고 집계하고 있다. 김정은은 이후에도 현영철 인민무력부장, 김용진 내각부총리 등 최고위직들에 대한 처형과 숙청을 반복해왔다.

김정은이 이렇게 하는 것은 권력 내부가 불안정하다는 뜻이다. 태영호 전 북한 공사 등 최근 탈북한 사람들에 따르면 김정은의 폭압적 통치에 사람들이 눌려 있기는 하지만 불만 세력이 점차 늘고 있다고 한다. 만약 이번 김정남 암살이 북 내부 권력 암투와 연결돼 있다면 이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숙청 피바람이 불면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다. 이미 무슨 일인가 벌어지고 있을 수도 있다.

이는 우리에게도 비상사태다. 북은 사흘 전 신형 중거리탄도미사일을 쏘아 올렸다. 다음날 김정남이 죽었다. 3월 한·미 합동 군사훈련을 전후한 시기까지 무슨 대형 도발을 하고 나설지 모른다. 우리가 마주하는 상대가 이렇게 광포하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대책을 마련해가야 한다. 설마 동족에게 핵을 쏘기야 하겠느냐는 안이한 발상으로는 나라를 지킬 수 없다.

최근 국내에서는 대통령 탄핵 사태 바람을 타고 야권 대선 주자라는 사람들이 사드 배치에 반대하고 개성공단이나 금강산 관광도 즉각 재개해야 한다는 식의 주장을 펴고 있다. 대선 주자 지지율 1위 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는 미국보다 북에 먼저 가겠다는 취지의 말을 하기까지 했다. 야권은 자신들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부터 되돌아보기 바란다.

지금 미국에서는 북 정권붕괴론, 선제타격론 등이 과거와는 차원이 다르게 진행되고 있다. 이번 사건이 여기에 불을 붙일 가능성이 높다. 우리도 어떤 가능성도 배제하지 말아야 한다. 동시에 이번 사건이 북 소행으로 확정되면 김정은을 국제 형사 법정에 세울 수 있도록 모든 수단을 강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