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식당에 가면 초등생들은 하나같이 스마트폰에 코를 박고 있다. 열이면 아홉은 동영상 사이트인 유튜브에 접속하고 있다. 초등 교사에게 들으니 장래 희망이 동영상 만드는 크리에이터라는 아이들이 적지 않단다. 인기 크리에이터는 ‘초통령(초등생의 대통령)’이라고까지 불린다. 이런 아이들을 모모세대(More Mobile Generation)라고 한다. 영상보다 글과 사진에 익숙한 학부모들로서는 아득해지는 일이다. 머릿속엔 질문이 떠오른다. ‘대체 크리에이터가 뭐기에?’ 걱정도 된다. ‘나쁜 콘텐츠에 빠진 건 아닐까?’ 유튜브에서 활동하는 크리에이터들은 어떤 사람이고, 어떤 콘텐츠로 우리 아이들을 사로잡았을까.
◇"어릴 적 하고 싶었던 실험 다 해볼 것"
"허팝 나오는 거 아냐?" "설마…."
인터뷰 장소에서 초인종을 누르고 기다리고 있으니 지나가던 초등생들이 걸음을 멈추고 수군댔다. 330㎡(100평)가량의 컨테이너 창고는 이미 동네 초등생 사이에선 성지(聖地)인 듯했다. 호기심 어린 눈들을 뒤로하고 안에 들어서니 수십 개의 장난감 총, 트램펄린, 인형, 고무공까지 허팝 영상에 등장했던 소품들이 보였다. 허팝(본명 허재원·29)은 이 같은 물건을 활용해 기발한 실험을 하는 콘텐츠를 매일 올린다. 티셔츠를 100장 겹쳐 입어 본다든가 드라이기로 공중에 달걀을 띄우는 식이다. 콜라로 목욕하는 실험도 있다. 지금까지 올린 영상은 1000개 이상, 구독자가 130만명을 넘었다.
그는 처음부터 아이들을 겨냥한 영상을 촬영한 건 아니라고 했다. 평소 궁금했던 것, 해보고 싶었던 걸 했을 뿐인데, 어린 친구들이 열광했다. "어릴 적 과학을 좋아하고 호기심이 많았어요. 하지만 부모님이 엄하셔서 하고 싶은 걸 억누르면서 지냈습니다. 활달했던 성격도 점점 내성적으로 변했던 것 같아요. 그래도 마음속엔 호기심이 살아 있었죠. 그때 '이렇게 해보면 어떨까' 상상만 했던 것을 지금 맘껏 해봅니다." 그는 근처 마트에 가거나 해외 토이 사이트를 보다가 재미있어 보이는 장난감을 발견하면 꼭 구입한다. 해외 배송이 안 되면 직접 사러 간다. 얼마 전에도 '알 깨고 나오는 펭귄 인형'을 사러 일본에 다녀왔다. 키즈 아이템을 다루는 유튜버들이 많아 최신 트렌드를 빠르게 적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다만 아이들이 따라 할 수 있으므로 부탄가스 등 위험성 높은 소재는 가능하면 쓰지 않는다. 환경오염 유발하는 아이템도 제외한다. 무심코 비속어를 내뱉으면 편집해 다시 찍는다.
그는 "나는 아이들에게 연예인과 비(非) 연예인의 중간쯤 되는 존재 같다"고 했다. "동네에서 학생들을 만나면 처음엔 '어어, 허팝이다' 하며 연예인 보듯 다가오지 못하지만, 두 번째엔 '우리랑 같이 놀자'고 합니다. 화려한 스튜디오가 아닌, 집이나 공터에서 평범한 옷을 입고 영상을 찍다 보니 '우리와 같이 놀 수 있는 재미난 삼촌' 정도로 보는 것 같아요." 온·오프라인을 통한 활발한 소통도 강점이다. "팬들에게서 '다음엔 이런 실험을 해달라'는 온라인 메시지가 많이 와요. 재미있는 제안이면 꼭 해보죠. '이런 게 궁금하다' 질문하면 영상이나 팬카페를 통해 답변도 하고요. 어떻게 보면 우리는 '함께 영상을 만들어나가는 사이'예요."
허팝은 향후 해외 영·유아 시청자를 겨냥해 채널을 확대할 예정이다. 그는 "유아들은 성인과 달리 한 번 본 영상을 계속 돌려보기 때문에 이들을 대상으로 한 콘텐츠는 조회수가 매우 높다. 언어에 상관없이 클릭하는 경우도 많아 한국 유튜버들도 도전할 만하다"고 했다
◇형제·자매 대신하는 동영상… 아이들 마음까지 헤아려야
이혜강(30)씨와 남편 국동원(38)씨는 잘 다니던 대기업을 지난해 그만뒀다. 유튜브 채널을 본격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였다. 주변에서 전부 "미쳤다"고 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동영상 시장이 앞으로 더 커질 것'이라고 확신했다. 국씨는 "2015년 9월부터 조카들과 노는 영상을 재미로 유튜브에 올렸는데 수만명이 우리 영상을 봤다. 해외 상황을 살펴보니 시장 확장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고 말했다. "퇴사 후 집 안 한쪽에 커튼을 쳐 배경을 만들고 작은 조명과 카메라, 마이크를 설치했습니다. 준비는 그걸로 끝이었어요. 초·중학생인 조카들이 놀러 오는 토요일에 일주일치 영상을 몰아 찍고 평일에 하나하나 편집해 매일 업로드했죠."
초등 대상 채널 '말이야와 친구들'과 영·유아 대상 채널 '말이야와 아이들'의 주력 콘텐츠는 재미난 도전 과제를 해보는 영상과 일상적으로 노는 영상 등으로 구성돼 있다. 최근엔 '만원으로 인형 뽑기 기계에서 놀기' '불닭볶음면 먹기' 영상이 인기였다. 고교생 팬도 많은 채널 '말이야와 게임들'에선 매번 다른 게임을 직접 해본다. 현재 세 채널을 합하면 한 달 평균 조회수가 5000만가량, 구독자가 70만명이다. 유튜브사(社)로부터 들어오는 한 달 수입이, 회사 다닐 적 1년 수입을 넘어섰다. 연봉이 10배로 불어난 셈이다.
이씨는 인기 비결로 아이들 마음을 이해하려 노력했던 점을 꼽았다. "요즘 어린이들은 형제·자매가 없거나 부모님이 맞벌이해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요. 그래선지 저희 부부가 조카들과 놀이하는 모습을 보며 '같이 노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즐겁다고 하더라고요. 동영상이 가족의 빈자리를 채워주는 셈이죠." 평소 조카들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놀이가 유행하는지도 유심히 본다. "제가 어릴 적엔 부모님이 권해주시는 TV채널을 봤어요. 그런데 지금은 아이들이 자기 스마트폰에서 스스로 채널을 선택하죠. 이제는 아이들 마음을 잘 읽는 것이 동영상 인기를 좌우합니다." 조회수 높은 해외 영상을 꼼꼼하게 분석하는 것도 주요 일과다. 국씨는 "비슷한 내용이라도 아이들이 더 즐거워하는 영상이 있다. 재생 속도나 화면 전환 방식 등을 분석해 우리 영상에 적용해본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