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0억 책가방 시장, 가성비 안 따지는 알짜 시장으로 주목
책가방은 자녀를 향한 사랑의 크기?… 60만 원대 1kg 무게 명품 가방 메고 등교하는 아이들
'책가방은 과학이다' 국내 브랜드, 기능성으로 승부수… 6만 원대 직구도 인기

60만 원대 프리미엄 책가방으로 인기를 모으고 있는 버버리 키즈 매장 전경.

신학기를 한 달 앞둔 1월 말,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가상의 조카를 위해 책가방 쇼핑에 나섰다.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리틀신세계에 위치한 버버리 키즈 매장에는 단 2종의 책가방이 진열됐지만, 연신 고객들의 문의가 이어졌다. 버버리 체크 패턴이 크게 들어간 캔버스 소재의 가방으로, 약간의 생활방수가 가능하다. 가격은 67만 원.

“작년에도 인기가 높았던 제품인데 올해도 잘나가요.” “신상품이 아닌가요?” “네, 명품이라 유행을 타지 않죠. 올해는 도트 무늬가 추가된 상품이 새로 나왔는데 기존의 상품을 써본 고객들이 세컨드 백(second bag)으로 사 가곤 해요.” 도트 무늬가 들어간 신제품의 가격 역시 67만 원이다.

◆ 무거운 란도셀 두고 가벼운 세컨드 백 사는 부모들… 책가방은 자녀를 향한 사랑의 크기

바로 옆 아르마니 주니어 매장에도 책가방 2개가 걸려있다. 아르마니 로고를 패턴화한 천 가방으로 가격은 25만8천원이다. 수입 가방치고 저렴(?)했지만, 아이를 위한 책가방이라기에는 기능성이 현저히 떨어졌다. 점원은 매장에 10개가 들어왔고, 핑크색은 하나가 남았다고 말했다.

아동 편집숍 분주니어에는 일본 키즈아미의 란도셀 가방이 진열돼 있었다. 지난해 책가방계의 '등골브레이커'로 유명세를 탔던 란도셀은 최근 드라마 '사임당, 빛의 일기'에서 이영애의 아들 역을 맡은 아역배우가 착용하면서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통가죽으로 제작돼 투박한 외형이 특징이다.

곽경택 감독의 영화 '극비수사'에 등장한 란도셀 책가방.

국내산 아동용 책가방이 500~600g의 초경량을 내세우는 데 반해 란도셀의 무게는 1kg에 달했다. 덮개를 가방 밑바닥까지 덮어 잠그는 시스템도 아이들이 사용하기에 불편해 보였다. “책을 2~3권 넣는 정도면 괜찮아요. 아는 분들은 이것만 찾죠. 가죽 제품은 58만 원이고, 클라리노(합성피혁) 소재는 38만 원이예요.”

백화점 관계자는 핑크와 브라운 색상이 가장 잘 팔린다고 했다. 일부 색상은 진열품 외엔 재고가 없어 구매하려면 주문을 해야 했다. “아이들보다는 부모의 만족을 위한 거죠. 매일 들기 부담스럽기 때문에 보통 세컨드 백을 함께 사요. 책을 많이 넣지 않고 갖춰 입는 날에는 란도셀을, 평소에는 가벼운 천 가방을 착용하죠.” 점원은 바로 옆에 진열된 7만 원대 허쉘 책가방을 가리키며 함께 구매할 것을 권했다.

◆ ‘책가방은 과학이다’ 국내 브랜드, 초경량 기능성 갖춘 프리미엄 책가방으로 승부수

보다 현실적인 쇼핑을 위해 아동용 책가방 시장 1∙2위를 다투는 빈폴∙닥스 키즈 매장을 방문했다. “책가방과 보조 가방을 합쳐 20만 원이예요. 여자아이들에겐 이 제품이 가장 인기죠.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없어서 못 팔았는데 리오더가 진행돼 추가 입고 됐어요.” 점원이 에나멜 소재에 리본이 달린 핑크색 책가방을 소개했다.

국내 아동복 브랜드 책가방은 남아용은 블루와 네이비, 여아용은 핑크, 리본 장식, 꽃무늬 패턴이 주를 이뤘다. 아동용 책가방 하면 만화 캐릭터가 들어간 화려한 외형이 아닐까 생각했지만, 실제 디자인은 심플했고 대신 인형이나 동전지갑을 달아 유년의 감성을 대변했다. 학년이 올라가도 오래 들 수 있는 실용성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백화점 관계자는 “캐릭터가 들어간 상품은 브랜드력이 떨어지는 마트와 온라인 저가 상품이 대부분”이라고 귀띔했다.

저학년용은 물건을 쉽게 넣고 뺄 수 있는 사각형 프레임이 대부분이었고, 등판에 두툼한 쿠션을 대고 U자형 어깨끈을 사용해 착용감을 높였다. 가격대는 책가방이 14~16만 원대, 보조 가방이 5~6만 원대로 두 개를 함께 구매할 시 20만 원 안팎이었다.

노스페이스 키즈 ‘스퀘어 스쿨 팩’은 미국 척추 의학협회의 인증을 받은 플렉스벤트 어깨끈을 사용했다. 책가방과 보조가방을 포함한 가격은 13만8천 원.

스포츠∙아웃도어 키즈 브랜드의 책가방은 성장 발육을 고려한 기능성에 방점을 뒀다. 또 인체공학적 기술을 적용해 500~600g 수준의 초경량을 핵심으로 내세웠다. 가격은 책가방과 보조 가방을 포함해 10만 원대부터 구매할 수 있다. 어깨끈에 고급 등산화에 사용하는 시스템을 적용해 착용감을 높였고, 흘러내리지 않도록 가슴 벨트를 장착했다. 노스페이스 키즈와 네파 키즈 등은 호루라기를 탑재하고 교통사고 방지를 위한 재귀반사 소재를 사용해 안정성을 강조했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두 아이를 둔 박 모씨(36세)는 “책가방으로 아이의 환경을 가늠한다고 하더라. 마음 같아서는 명품 가방을 사주고 싶지만 부담스럽고, 너무 싼 제품은 아이가 생활하기 불편할 것 같아서 남들이 많이 사는 20만 원대의 아동복 브랜드의 가방을 사줬다”고 말했다.

◆ 책가방 시장은 가성비 안 따지는 알짜시장… 20만 원대 부담, 직구에 눈돌리는 엄마들

아동용 책가방 시장은 가성비를 따지지 않는 알짜 시장으로 꼽힌다. 경기불황과 저출산에도 꾸준히 매출이 증가하고 있는 특수한 시장이다. 1가구 1자녀로 아이가 귀해지고, 에잇 포켓(eight pocket∙아이를 위해 조부모, 삼촌, 이모 등 8명의 지갑이 열린다는 신조어) 현상이 반영되면서 시장이 더 활성화된 것으로 보인다.

국내 책가방 시장 규모는 연 4000억 원대로 추정된다. 특히 2010년부터 2012년까지 백호(白虎), 백묘(白卯), 흑룡(黑龍) 띠의 출산이 집중되면서, 이들이 입학하는 올해부터 향후 3년간 취학 아동이 증가세를 보임에 따라 관련 시장은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닥스키즈와 헤지스키즈를 운영하는 파스텔세상은 지난해 10월부터 책가방 예약판매를 실시하고 조기 선점 경쟁에 뛰어들었다.

업계는 올 신학기를 앞두고 예년보다 1~2주 앞선 작년 10월 초부터 신상품을 출시하고 선점 경쟁을 시작했다. 아동복 브랜드가 독점했던 시장에서 스포츠∙아웃도어 등 성인복의 키즈 브랜드로 분산되면서 경쟁이 더 치열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책가방은 1~2월에 전체 물량의 80%가 소진되는 것으로 알려진다. 이에 관련 업체들은 10~20% 할인을 하거나 할인쿠폰을 증정하는 방식으로 막판 판매 스퍼트를 올리고 있다.

직구를 즐기는 엄마들 사이에서는 가볍고 저렴한 수입 제품도 인기다. 온라인 쇼핑 커뮤니티에서 책가방을 검색하면 포트리반(pottery barn)을 추천하는 글이 종종 보인다. 포트리반은 미국 브랜드로 화려한 무늬가 특징이다. 책가방, 필통, 신주머니 3개를 사도 배송비 포함, 6만 원대면 구매할 수 있다. 한 학부모는 “책가방은 보통 입학 후 2~3번은 교체 해야 한다. 처음에는 엄마가 마음에 드는 걸 사지만 아이가 자라고 취향이 생기면 바꿔줘야 한다”며 “국내 브랜드의 책가방은 디자인이 비슷하고 가격도 비싸다. 남들과 차별화되면서 가격부담은 3분의 1 수준인 책가방을 택했다”고 말했다.

한 아웃도어 브랜드 관계자는 “부모에게 책가방은 아이를 향한 사랑과 관심을 상징한다. 최근 저출산으로 아이가 귀해지면서 아이가 입고 드는 모든 것이 프리미엄화되는 경향이 있다. 과시 성향이 짙어진다는 우려도 있지만, 패션업계는 호기로 여기고 있다. 책가방을 비롯한 키즈 시장을 잡기 위해 전략을 짜는 중”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