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시 가습기 사건'이 터진 지 얼마나 지났다고 이젠 독성 기저귀냐. 불안해서 못 살겠다."(서울 강동구 주부 송모씨)

글로벌 생활용품 업체인 피앤지(P&G)의 '독성 기저귀 논란'이 국내에서 확산되고 있다.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소비자들 반발이 쇄도하고, 대형 마트와 티몬·옥션 등 인터넷 사이트에서는 환불 요청이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피앤지 측은 "유해 성분이 안전 기준 미만이라 문제가 없다"고 하고, 유통업체 측은 "정부에서 리콜·회수 제품으로 판정하지 않아 환불·교환이 어렵다"는 입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이번 논란의 발단은 프랑스에서 시작됐다.

지난 24일 프랑스 소비 전문지(誌) '6000만 소비자들' 최신호는 프랑스 내에서 유통되는 기저귀 브랜드 12종 가운데 피앤지의 '팸퍼스 베이비 드라이' 제품에서 다이옥신·살충제 두 가지 유독 성분이 검출됐다고 발표했다. 문제의 제품은 국내에도 수입돼 있으며, 한국피앤지는 국내 기저귀 시장점유율 13~14%를 차지하는 2위 업체다. 검출된 다이옥신은 고엽제 파동을 일으킨 맹독성 물질이며, 살충제도 세계보건기구(WHO)가 발암물질로 분류해놓고 있다.

확산되는 독성 기저귀 논란

엄마 회원들이 모인 커뮤니티 '맘스홀릭'(회원 수 255만명) 등에서는 지난 29일부터 "가습기 살균제 논란, 치약 파동에 이어서 또 이런 일이 터진 거냐"는 불만 글이 수십 개씩 올라왔다. 피앤지의 '기준치 이하'라는 해명에 대해서도 "독성 물질이 있다는 것을 인정한 꼴 아니냐"며 반응이 싸늘하다. 한 엄마 회원은 "옥시 가습기 살균제 피해 때도 인체에 위해성이 있을 수준은 아니라고 해명했지만, 결국 문제가 발생한 것 아니냐"고 분노했다.

2일 서울 중구에 있는 마트에서 한 시민이 기저귀를 고르고 있다. 한국피앤지(P&G)가 수입해 판매하는 기저귀‘팸퍼스 베이비 드라이’에서 유독 물질이 검출됐다고 프랑스 매체가 보도해 논란이 되고 있다.

유통업체 등에 환불을 요구한 소비자들은 "왜 환불이 안 되는 거냐. 다이옥신과 살충제가 들어 있다는데 더 이상 찝찝해서 못 쓰겠다"며 분통을 터트리고 있다. 13개월 여자아이를 키우고 있는 주모(여·33·송파구)씨는 "신생아 때부터 지금까지 이것만 썼는데 뒤통수 맞은 느낌"이라고 말했다. 임은경 소비자단체협의회 사무총장은 "아무리 기준치 미달이라고는 하지만 아기들을 대상으로 한 제품에서 살충제·다이옥신 등이 검출됐다고 하니 불안하다"며 "해당 제품에 대해 자체 조사한 후 정부 측에도 대응을 요청할 것"이라고 말했다.

피앤지의 불투명한 해명

[[키워드 정보] 독성 화학물질 다이옥신이란?]

최초 보도를 한 프랑스 전문지는 "기저귀에서 발견된 독성 물질의 경우 하루 종일 착용하고 있는 아기들에게 어떤 심각한 위험을 초래하는지에 대해 분석한 자료 자체가 없어 더욱 세밀한 평가 기준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프랑스 환경 단체 '그룹 에콜로 드 파리'는 "먼저 파리시 어린이집에 공급되는 해당 기저귀들의 공급을 바로 중단하고, 시중에 유통되는 제품들도 즉각 수거할 것을 파리시에 요청한다"고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사실상 불매 운동이다. 또 세골렌 루아얄 환경에너지부 장관은 최근 "(피앤지 독성 기저귀는) 매우 화가 나며 관용을 베풀 수 없는 부분"이라며 "경제부 산하 경쟁소비부정방지국(DGCCRF)에서 프랑스에서 판매되는 기저귀에 대해 재조사를 한 다음 유럽위원회(European Commission)에 세밀한 기준 마련에 대해 공식 제안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한국피앤지 측은 "기준치 이하라 문제없다"는 말만 되풀이하면서 구체적인 근거는 발표하지 않아 오히려 논란을 키우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한국피앤지 측은 "해당 기저귀에서 나온 다이옥신 등 유독 물질은 유럽·프랑스 안전 기준치를 훨씬 밑도는 수치"라며 "팸퍼스는 해당 화학물질을 성분으로서 첨가한 적이 없다"는 공식 입장을 내놓고 있다.

그런데 본지 기자가 지난 1일 "해당 기저귀에서 검출된 살충제·다이옥신량이 미량이며, 인체에 위험하지 않다는 관련 실험 보고서를 달라"는 요구에 2일 오후 10시까지도 구체적인 수치를 담은 보고서는 내놓지 않고 있다. 대신 알랭 타이에브 보르도대 의대 교수의 "기저귀에 포함된 독성 물질이 유럽연합 기준 미만이라 문제가 없다"는 원론적인 발언 수준의 공문만 보내왔다. 특히 취재진이 "유독 물질 기준이 연약한 아기들을 대상으로 한 것은 아니지 않으냐"는 질문을 하자 한국피앤지 관계자는 "유해물질 포함 안전 기준은 어린이에 대해 따로 있지는 않고 전 국민의 평균을 내 도출한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더욱이 구체적이고 정확한 해명 대신 "프랑스에서는 이미 끝난 이슈인데 왜 관심을 갖느냐"며 사건을 무마하려는 움직임까지 보였다. 소관 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 국가기술표준원 측은 이날 "국내에서 유통되고 있는 팸퍼스 베이비 드라이 제품에 대해 샘플 조사에 착수한 상황"이라며 "다이옥신 등 유독 물질 포함 여부에 대해 사실 관계 여부를 조사한 후 추가 조치를 할 계획"이라고 밝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