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월 27일 우리나라가 일본을 제치고 터키 현수교 사업권을 따냈다. 앞서 같은달 25일에는 한국 기업이 이집트 카이로 지하철 사업의 우선 협상 대상자로 선정됐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1965년 태국에서 처음 시작한 우리나라의 해외 수주 사업은 7·80년대 중동 붐을 거쳐 현재 아시아, 남미, 아프리카 세계 곳곳으로 시장을 넓히고 있는 중이다.
해외 수주 사업, 이렇게 시작했다
우리나라의 첫 해외 수주 건설은 현대건설이 맡은 태국의 고속도로이다. 1965년 9월 현대건설은 태국정부가 국제경쟁입찰에 부친 파타니-나라티왓 고속도로 공사 사업을 5백 22만달러의 공사비로 따냈다. 한국 기업의 첫 해외 건설 사업이었던 이 고속도로 공사는 66년 1월에 착공돼 68년 3월에 준공됐다. 태국에서도 여전히 파타니와 나라티왓을 연결해주고 있는 고속도로이다.
1970년 중동 해외 건설 사업으로 본격 활기를 띠기 시작한 해외 수주 사업은 점점 성장해 93년엔 7대 수주 대국으로서 입지를 굳혔고, 현재는 건설, 토목, 플랜트, 원전 시설 등 여러 분야에서 중동을 넘어 세계 곳곳에서 인정받고 있다. 5백 22만달러로 출발한 수주금액도 누적 7천억달러(2015년 기준)를 넘어섰다. 해외 수주 사업에 진출한 지 반세기 만에 이룬 성과다.
최근 우리나라는 수주 텃밭이었던 중동 지역이 저유가 사태로 수주 건수가 감소하자 유라시아와 남미, 아프리카 등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최고의 기술력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중동 중심의 수주 사업에서 벗어나 새로운 곳을 개척하겠다는 계획이다.
한국이 세운 세계의 공공시설
① 카타르 국립 박물관. 공상과학 영화에나 나올 법한 디자인의 이 건물들은 카타르 국립 박물관(National Museum of Qatar, NMoQ)이다. 세계적인 건축가 프랑스 건축가 장 누벨이 디자인했고 우리나라 현대건설이 시공했다. 카타르 국왕의 여동생 셰이카 알마야사 공주의 주도 아래 2011년 첫 삽을 떴으며 2016년에 완공됐다. 2022 월드컵을 기점으로 문화·관광 대국을 꿈꾸는 카타르의 야심이 반영된 건축물이다. ▶기사 더보기
② 사우디아라비아 내무성 본청 건물. 1984년 12월 1억 9천 335만 달러에 수주해 1990년 11월에 완공했다. 피라미드를 거꾸로 한 본체 위에 이슬람 사원의 '돔' 형태 지붕을 얹었다. 2200대의 모니터와 18대의 엘리베이터, 8000회선의 통신시설 등 당시 최첨단 설비로 내부를 채웠다. 준공 25년이 지난 공공건물이지만, 여전히 사우디아라비아를 대표하는 랜드마크이다.
③ 니가타 종합 경기장. 소설 '설국'의 배경으로 유명한 일본 니가타 현(新潟県)의 종합 경기장이다. 롯데건설이 4년 여에 걸쳐 43,000명 규모의 종합경기장을 완공했다. 우리기업이 일본 공공 건설시장에 진출한 최초 사례이다.
④ 이라크 비스마야(Bismayah)에 건설 중인 신도시. 전쟁으로 폐허가 된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약 10Km 떨어진 비스마야 지역에 신도시를 건설하는 공사다. 규모는 우리나라의 분당 신도시 정도이며 단순히 주택만 짓는 것이 아니라 주민들 생활에 필요한 모든 기반 시설까지 짓는다. 한화건설이 공사를 맡았다. 수주액만 약 12조원으로 국내기업이 수주한 단일 프로젝트 상 역대 최대 규모이다.
한국이 만든 랜드마크
① 말레이시아 페트로나스 타워(Petronas Twin Tower).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 세워진 타워로 말레이시아를 대표하는 랜드마크이다. 쌍둥이 빌딩으로 세워진 이 건물은 한쪽은 한국의 삼성건설과 극동건설이 함께 건설했고, 나머지 한쪽은 일본 회사가 맡았다. 착공은 일본 회사에 비해 35일 늦었지만 완공은 6일 빨랐다.
② 아랍에미리트 부르즈 할리파(Burj Khalifa).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 삼성건설이 건설한 건물이다. 부르즈는 아랍어로 '탑'이란 뜻이고, 할리파는 아랍에미리트 대통령의 이름 할리파 빈 자이드 알나하얀(Khalifa bin Zaid al-Nahayan)에서 가져왔다. 전체 높이 829.84m로 현재 두바이에서 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이다. 630m까지만 사용공간이며 나머지는 첨탑이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자, 두바이의 랜드마크로 군림하고 있지만 2019년에는 자리를 내줘야 한다. 1007m의 '제다 킹덤 타워'가 완공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이 건물은 완공될 경우 세계 최초로 높이가 1Km가 달하는 건물이 된다.
③ 주메이라 에미레이트 타워 호텔(Jumeirah Emirates Towers Hotel). 쌍용건설이 벨기에의 베식스(BEXIS)와 함께 아랍 에미리트 두바이에 지은 쌍둥이 초고층 빌딩이다. 두바이에서 두번째 높은 빌딩으로 삼각형 모양인 타워 꼭대기가 건물의 외형을 더욱 매력적으로 만들어준다. 사무공간, 쇼핑시설, 호텔 등이 들어선 이 건물은 두바이의 3대 호텔로 꼽힌다.
④ 마리나베이샌즈 호텔(Marina bay sands Hotel). 복합 리조트 겸 쇼핑몰로 싱가포르의 대표 랜드마크이다. 우리나라의 쌍용건설이 2010년 완공했다. 호텔 객실로 사용되는 3개의 건물 위에 범선 형태의 스카이 파크를 얹었다. 스카이 파크를 받치고 있는 건물 3개는 측면에서 보면 각각 두장의 카드가 사람 인(人)자 형태로 서로 기대고 있는 모양이다. 각 건물을 기울여 짓고, 그 위에 거대한 배 모양의 스카이 파크를 올리는 방식은 불가능에 가까웠기 때문에 완공 당시 '건축의 기적'이라 불렸다. 지금까지도 최고 난이도의 건축물로 꼽히고 있다. 앞·뒤·옆 어느 쪽에서 봐도 아름다움을 넘어 경이로운 자태를 가지고 있어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높다. ▶기사 더보기
한국의 기술, 세계를 잇다
① 터키 유라시아 해저 터널(Eurasia Tunnel).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세계 최초의 대륙 간 해저 터널이다. 해저 106m 깊이에 복층 구조로 된 2차선 도로를 놓았다. 이스탄불의 보스포러스 해협 동쪽인 아시아 대륙과 서쪽 유럽 대륙을 잇는 것으로 총 길이가 5.4Km에 이른다. SK 건설이 착공에 들어가 2016년 12월에 개통했다. 사진은 해저 터널로 들어가는 입구이다. ▶기사 더보기
② 보스포러스 제3대교(Yavuz Sultan Selim Bridge). 터키의 최대도시 이스탄불의 보스포러스 해협을 연결하는 세번째 다리로 2016년 8월 개통했다. 현대건설과 SK건설이 공사를 맡았다. 주탑의 높이가 에펠탑보다 높은 322m로 현존하는 다리 중에 최고 높이다. 좌우 흔들림을 방지하기 위해 주탑의 양 옆은 사장교 방식으로, 중앙은 현수교 방식으로 지었다.
③ 브루나이 순가이 대교(Sungai Kebun Bridge). 브루나이의 첫 특수대교로 대림산업이 지었다. 이 다리로 인해 브루나이 강을 40Km 돌아가야 했던 거리가 622m로 단축됐다. 이슬람 사원 전통 양식에 쓰이는 '돔'으로 주탑을 디자인 해 수주 당시 높은 점수를 받았다. 이 다리는 브루나이의 수도인 반다르스리브가완시를 관통하는 브루나이강의 양쪽 지역을 잇는 프로젝트로 브루나이 정부의 숙원사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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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아라비아 주베일(Al-Jubayl) 산업항. 수심 10m의 바다를 길이 8㎞, 폭 2㎞로 매립해 항구와 기반시설을 만드는 공사로 1976년 현대건설이 9억 3000만 달러에 따냈다. 이 금액은 당시 대한민국 예산의 30%에 맞먹을 정도로 큰 액수였다. 이 수주로 우리나라는 1970년대 중반 제1차 오일쇼크를 극복할 수 있었다.
한국, 세계 최대의 공장을 짓다
① 인도 문드라 화력 발전소(Mundra Thermal Power Station). 인도에 위치한 세계 최대의 화력 발전소이다. 총 발전용량이 4000MW급으로 400만명이 사용할 수 있는 전력을 생산한다. 발전용량 역시 세계 최대 규모인 것이다. 두산중공업이 건설해 2013년에 완공되었다.
② 알제리 스키다 정유 공장(Skikda Refinery Project). 북아프리카 알제리 수도 알제시에서 350Km 떨어진 스키다 지역에 건설한 정유시설로, 삼성엔지니어링이 현대화하는 공사를 진행했다. 단기간에 가동 중단없이 기존 정유시설을 개·보수하면서 새 플랜트를 기존 시설에 연결해야 했던 이 공사는 유럽 유수의 건설업체들조차 포기한 프로젝트였다. 하지만 삼성엔지니어링은 모듈 방식의 첨단공법으로 프로젝트를 성공시켰다.
③ 카타르 QAFCO(Qater Fetilizer Company) 비료공장. 현대건설이 세운 세계 최대의 비료공장이다. 공사대금만 28억 달러에 달한다. 이곳의 비료 생산 규모 역시 세계 최대이다.
④ 미국 다우 케미칼 팔콘 공장(Dow Chemical Falcon Project). 미국의 다국적 화학 기업 다우 케미칼의 공장으로 삼성 엔지니어링이 건설했다.
⑤ 아랍에미리트 후자이라(Fujairah) 담수 발전 플랜트. 2001년 두산중공업이 아랍에미리트 상업도시 후자이라에 건설한 해수 담수 발전 설비이다. 이곳에서 하루 150만 명이 사용할 수 있는 45만t의 물이 생산된다. 아랍에미리트 전체 담수 생산의 26.5%에 해당하는 규모다. 물이 부족한 중동 국가에서는 바닷물을 담수화해 공업용수, 생활용수로 쓰는데 이 지역 물의 대부분은 한국 기업이 지은 설비에서 만들어진다.
2017년 날아온 수주낭보
터키 다르다넬스(Dardanelles) 해협을 가로지르는 세계 최장 현수교가 한국 기술로 건설된다. SK건설과 대림산업이 일본 컨소시엄을 누르고 4조원짜리 '수주 전쟁'에서 승리했다.
터키 언론은 1월 26일 한국 건설사와 터키 리마크·야프메르케지 등 4개사로 구성된 컨소시엄이 '1915차나칼레(가칭)' 프로젝트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고 보도했다. 유럽과 아시아 대륙을 잇는 3.7㎞ 길이의 현수교와 진입도로를 건설하는 사업이다. 프로젝트는 민간투자방식(BOT) 인프라 사업으로 한국 건설사 주축 컨소시엄이 완공 후 16년 2개월간 최소운영수익을 보장받으며 교량 운영까지 맡는다.
터키 정부는 건국 100주년을 맞는 2023년 다리를 개통하고, 주탑 간 거리도 2023m로 만들기로 했다. 이 다리가 완공되면 일본 고베의 아카시대교(1991m)를 제치고 세계에서 가장 긴 현수교가 된다. ▶기사 더보기
우리나라가 이집트 카이로의 메트로 3호선에 투입될 전동열차 입찰에서 열차 32편성(256량·약 4800억원 규모)을 공급하는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지난해 11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건설하는 LRT(경전철) 1단계 사업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데 이어 국내 철도 기업이 해외 굵직한 철도 사업에 잇따라 진출하게 된 것이다.
한 철도업계 관계자는 "한국 열차 제작 기업인 현대로템이 카이로 메트로 3호선에 투입되는 총 64편성의 전동열차 중 50%인 32편성에 대한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는 통보를 받았다"고 밝혔다. 현대로템은 2014년 9월 입찰 공고가 나온 이후 프랑스 알스톰, 중국 주저우 등 해외 유력 업체와 경쟁을 벌인 끝에 이번 입찰에 성공했다고 국토부는 전했다. ▶기사 더보기
지금 아시아는 수주 전쟁 시대
아시아에서는 현재 여러나라들을 상대로 인프라 사업 수주 전쟁이 뜨겁다. 아시아 인프라 투자를 위해 설립된 중국 주도의 아시아투자은행(AIIB)과 일본 중심의 아시아개발은행(ADB) 자금에 양국의 공적개발원조(ODA)까지 더해지면서 중국과 일본 사이의 수주 전쟁이 한창이다. 이 두 나라는 현재 고속철과 원전 수주에 열을 올리고 있는데, 막강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아시아 인프라 시장을 선점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각 기업 기술력과 글로벌 경쟁력은 높은 편이지만, 자금력과 민관 협력 부분에서 두 나라에 밀리고 있다
2015년 10월, 일본 기술을 배우던 중국이 일본 첨단 기술의 상징인 고속철 수주 경쟁에서 일본에 승리했다. 또한 중국은 2016년 9월 영국 원전 건설에 참여를 확정했다. 한국과 일본으로부터 기술을 배워가던 중국의 약진이 무섭다.
일본의 대규모 수주 사업은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이뤄진다. 핵심 대규모 사업이라고 판단이 되면 아베 총리가 직접 정부 대 정부로서 협상과 세일즈에 나서는 것은 물론, 기업끼리도 힘과 기술을 합쳐 다른 나라와 경쟁한다.
한국은 2009년 UAE 원전 수출 이후 7년째 수주 실적이 없다. 자본력을 내세워 전방위 공세를 펼치는 중국·일본에 밀려 국제무대에서 설 자리가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원전 수주전은 일종의 '국가 대항전'으로 세일즈 외교가 뒷받침돼야 하는데, 지금처럼 국정 혼란이 장기화되면 원전 수출 경쟁에서 고전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세계 철도 분야 역시 마찬가지다. 중국은 세계 각국 고속철 프로젝트에 공격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일본도 정부 지원을 등에 업고 중국과의 경쟁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 애쓰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2010년 국내 기술로 고속철을 상용화했음에도 불구하고 해외 수주를 한 건도 따내지 못하고 있다.
글로벌 건설 전문지 'ENR'은 한국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 평가했다. 실제로 앞서 설명한 여러 사례에서도 보듯 우리의 기술력은 세계적 수준을 자랑한다. 현대건설은 전력 분야 2위, 삼성엔지니어링은 하수처리 분야 3위, GS건설은 제조업 건설 분야에서 10위로 평가됐다. 하지만 지난해 국내 건설사들의 5대 다자(多者)개발은행 인프라 수주 규모는 3억4220만달러로 전체 금액의 0.5%에 그쳤다.
전문가들은 이런 한계를 돌파하기 위해 일본이 총리실 산하에 '인프라 해외수출관계 장관회의'를 설치하고 외무성 등 각 정부 부처마다 '인프라 수출지원팀'을 적극 가동하는 것을 벤치마킹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