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시인 프리드리히 휠덜린(1770~1843·사진)의 시전집 한국어판이 처음 나왔다. 장영태 홍익대 독문과 명예교수가 지난 27년 홀로 작업해 최근 '휠덜린 시전집'(전 2권·책세상)을 냈다. 장 교수는 1990년 이후 세 차례에 걸쳐 휠덜린 대표시 선집에 펴낸 바 있다. 그는 기존 번역시에 나머지 미번역 작품들과 시작(詩作) 메모까지 덧붙이고 상세한 해설도 달아 시전집을 완성했다. 휠덜린이 15세에 쓴 시를 비롯해 73세로 세상을 뜨기 직전에 쓴 시까지 300여편이 수록됐다.
휠덜린은 문학과 철학을 아우른 시인으로 꼽혀왔다. 당대의 철학자 헤겔이나 시인 괴테와 교류했다. 신학도 출신인 휠덜린은 고대 그리스 고전을 독일어로 번역하기도 했다. 그는 '신과 인간 사이의 신성하고 순수한 공간'을 노래한 시인으로 이름을 높였다. 그러나 30대 초반부터 죽을 때까지 35년 동안 정신 질환을 앓은 비운의 시인이기도 했다.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는 휠덜린을 가리켜 "시가 어떻게 탄생하는지, 왜 시가 시원(始原)으로 향하는 언어인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시인 중의 시인"이라고 극찬했다. 독일 현대 문학을 대표하는 시인 릴케, 헤세, 첼란 등이 한결같이 휠덜린의 영향을 받았다. 휠덜린의 대표시로는 '빵과 포도주'가 꼽힌다. '궁핍한 시대에 시인은 무엇을 위해 사는 것일까?/ 그러나 시인들은 성스러운 밤에 이 나라 저 나라로 나아가는/ 바쿠스의 성스러운 사제 같다고 그대는 말한다'라는 대목이 잘 알려져 있다. 그는 그리스 신화와 기독교 정신, 관념론과 범신론(汎神論)을 탐구했고, 프랑스혁명의 환희와 환멸을 두루 겪기도 했다. 그는 신성함을 상실해가는 당대의 현실을 '궁핍한 시대'로 파악했고, "지상의 척도(尺度)는 없다"고 단언하기도 했다.
국내 문단에서도 휠덜린은 숭고한 아름다움의 시인으로 수용됐다. 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는 지난 1980년대에 문학 평론집을 내면서 제목을 '궁핍한 시대의 시인'과 '지상의 척도'로 정해 휠덜린을 기리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