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자 간 관계에서 양자 간 관계로 변화하는 세계 질서가 트럼프 시대의 핵심"
"문 닫으려는 미국과 문 열려는 중국 간 불안정한 경제질서로 재편될 것"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 이후 열흘 동안 공약대로 여러 강경 조치들을 쏟아내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전략과 의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환태평양 경제 동반자 협정(TPP) 폐기, 아랍 7개국 입국 금지 행정명령 등에 대해 미국 국민들의 찬성 여론이 높지만 각계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대통령 트럼프’가 꿈꾸는 새로운 경제질서는 어떤 것일까.

2001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마이클 스펜스(Michael Spence) 뉴욕대 스턴경영대학원 교수는 지난 11월 29일(현지시각) 프로젝트 신디케이트(Project Syndicate)에 기고한 ‘트럼프와 새로운 경제질서(Donald Trump and the New Economic Order)’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새로운 세계 경제 질서는 양자 간 관계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음은 칼럼 전문.

마이클 스펜스 뉴욕대 교수

도널드 트럼프와 신 경제질서

2차 대전이 끝난 이후 경제적 질서는 상대적으로 명확해졌다. 질서의 핵심은 모든 국가가 번영을 누릴 수 있는 개방되고 역동적인 시장 주도형 글로벌 경제의 창출이었다. 국가 성장은 글로벌 경제 성장 이후 지속 가능하며 포괄적인 성장 패턴을 만들어 내는 것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지금, 그 질서는 뒤틀리고 있다. 줄어드는 중산층을 회복하고, 침체된 가계소득을 부양시키며, 청년 실업을 감소시키기 위한 국가 차원의 성장이 우선시되고 있다. 상품과 자본, 기술 및 인력의 흐름을 다루는 국제 협약은 상호 이익을 강화하는 방향에만 적절하게 작동하고 있다.

반전이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은 지난 6월 영국 브렉시트 국민투표다. 기존 자유시장경제와 금융 시스템의 혜택을 보고 있던 영국인들은 주권 원칙을 주장하며 유럽연합(EU)을 떠나기로 결정했다. 브렉시트에 찬성하는 영국인들에게 유럽연합은 영국의 경제 부양을 방해하고 이민 규제를 막는 방해물일 뿐이었다.

이같은 흐름은 유럽 전역의 민족주의와 포퓰리즘의 힘을 키웠다. 포퓰리스트들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초국가적 조약보다 국내 경제 성장이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이들에게 유럽연합의 힘은 더이상 ‘강제적’이지 않았다. 유럽연합 역시 구성원에서 탈퇴하려고 하는 국가를 제재하는 데 무기력했다.

하지만 유럽연합과 같은 다자간 제도가 더이상 국가의 이익을 증진시킬 수 없다는 주장도 존재한다. 도널드 트럼프는 이러한 주장을 바탕으로 지난 11월 9일 미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했다. 트럼프는 관세장벽과 이민제한 등 보호무역주의를 바탕으로 한 공약을 제시했다.

트럼프는 자신의 캠페인 슬로건을 “다시 다시 아메리카(America again again)”로 정했다. 연설에서는 언제나 “미국 먼저(america first)”를 강조했다. 트럼프는 상호간의 호혜적인 합의를 추구할 수도 있지만, 국내 우선순위에 집중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우선순위와 일치하는 경우에만 지지를 받고 있는 것 역시 사실이다.

구시대적인 신자유주의 경제구조에 대한 선진국 유권자들의 좌절감은 근거 없는 게 아니다. 그동안의 경제질서는 선출된 관료들과 정책 입안자들이 국가 경제를 통제할 수 있도록 권한을 부여했다. 그러나 일부 엘리트들이 이익을 가로채는 도덕적 해이를 낳았다.

미국이 애써 만든 경제 질서 역시 꾸준하지 않았다. 국가 간 불평등은 감소했지만, 국가 내 불평등은 오히려 확대됐다. 우선순위는 국내 문제의 해결로 바뀌었다. 정치인들은 이제 국내 문제를 더 신경쓰기 시작했다. 앞서 나온 브렉시트, 포퓰리즘, 트럼프의 등장 역시 궤를 같이한다.

새로운 경제 질서에서 각국은 어떻게 행동할까. 우선, 미국은 세계 공공재를 제공하는 데 드는 비용의 불균형을 흡수하는 것을 더 꺼릴 것이다. 공공재의 공급이 감소하면서, 다른 나라들의 경제적 안정성은 더욱 떨어지게 된다. 미국은 이를 무기삼아 협상에 나설 수 있다. 현재 가장 가능성이 높은 세계적 공공재는 안보다. 미국은 NATO의 교전조건 재협상을 통해 유럽에서의 자국 이익을 확대하려 하고 있다.

오랫동안 국가 소득과 부에 따라 불균형한 기여에도 유지되어왔던 다자주의는 양자간, 지역 간 무역 및 투자 협정의 경향이 가속화되면서 타격을 입고 있다. 트럼프는 이러한 새 흐름의 주창자다. 사실, 환태평양 경제 동반자 협정(TPP) 반대는 그의 의견을 뒷받침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트럼프의 등장은 중국이 아시아 내 무역 협정을 만들어낼 수 있는 기회다. 일대일로 전략과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창설로 중국의 아시아에 대한 영향력은 크게 확장되고 있다.

한편, 중국의 경제력이 미치지 못하는 개발도상국들의 경우 이러한 추세가 약화될 수 있다. 개발도상국들은 세계 평화와 안보를 위해 개방이 자국의 집단적 이익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있는 게 일반적이다.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못한 나라들은 오래된 경제질서 하에서 성장하고 번영할 수 있는 기회를 찾을 수 있다. 반면, 양자간 질서로 개편되는 순간, 효과적인 협상을 위해 비용을 들여야 한다.

기술은 새로운 질서에서 더 강한 힘을 지닌다. 따라서 더 많은 국가 차원의 규제는 필연적이다. 국가가 기술을 통제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사이버 위협은 규정과 정책 개입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서방 국가에서 확산된 가짜 뉴스와 같은 위협들은 실용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일자리를 대체할 수 있는 디지털 기술들은 경제의 구조조정 과정과 함께 발전해야 한다.

국가 이익에 대한 새로운 강조는 분명 비용과 위험을 안긴다. 그러나 새롭고 중요한 이익을 가져올 수도 있다. 무너지고 있는 질서 안에 있는 세계 경제는 안정적이지 않다. 사람들의 정체성이 이미 조직되어 있기 때문에 국가 우선 접근 방식이 가장 효과적일 수 있다. 좋든 싫든, 우리는 결과를 곧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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