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도킨스, 유전자의 대물림, 별빛의 지구 도착... 과학은 로맨틱한 경이로 가득 찬 학문
"나는 도발적이지 않고 정확한 사람일 뿐"
'만들어진 신'은 회의주의를 숭배하는 무신론자들의 성서...
“전투적 무신론자, 그 탄생의 서막-나, 그리고 다른 두 친구는 열일곱 살이었던 마지막 학년에 전투적 반종교주의자가 되었다. 우리는 예배당에서 무릎꿇기를 거부했다. 팔짱을 끼고 입을 다문 채, 고개를 숙이고 웅얼거리는 정수리의 바다에서 자랑스럽게 솟아난 화산섬처럼, 반항적으로 우뚝 서 있었다.”-’리처드 도킨스 자서전' 중에서
리처드 도킨스는 늘 찰스 다윈과 함께 거론되었다. 다윈이 인간은 원숭이의 후예라고 선언한 이후, 도킨스만큼 그 이론을 충실하게 이어받아 논쟁적으로 진화시킨 학자는 없었다. 그는 미국의 저널리스트 크리스토퍼 히친스, 신경생리학자 샘 해리스와 함께 신의 존재를 부정하고 종교의 부도덕을 고발하는 신랄한 ‘빅마우스’로 활약했다.
자연 선택이 개체 수준이 아니라 유전자 수준에서 일어난다는 주장을 풀어낸 그의 책 ‘이기적 유전자(1976년)'는 발간 40주년에 이르는 동안 진화생물학자들의 교과서가 되었고, 10년 전 출간되어 전 세계 3백만부 이상 판매된 ‘만들어진 신'은 회의주의를 숭배하는 무신론자들의 성서가 되었다. 저술가 펜 질렛은 ‘현대의 회의주의·무신론 운동은 그 시작이 도킨스였으며, 그는 악마적으로 훌륭했다’고 평했다.
영국옥스퍼드대 뉴칼리지 명예 교수인 리처드 도킨스를 고려대학교에서 만났다. 최근 그의 자서전을 펴낸 출판사 김영사가 주최한 행사에서였다. 대담은 국내 진화 생물학자인 장대익 서울대 교수의 사회로 진행됐다.
도킨스는 살짝 상기된 붉은 얼굴로 시종일관 과학에 대한 아름다움과 경이를 표현했지만, 신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창조론을 믿는 것은 무지하고 멍청하다'거나 ‘종교는 사악하다'라는 거침없는 표현을 사용했다. 진화론계의 최전방에서 싸우는 ‘선교사’다웠다.
그는 다윈을 만난다면 선물하고 싶은 책으로 ‘이기적인 유전자'를 꼽았다. 이유는 “그분의 진화 이론이 후대에도 그대로 이어졌다"는 것을 설명하고 싶기 때문이라고. ‘유전자에 내재한 생존의 지혜야말로 더할나위 없이 로맨틱하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스무 살 시절 옥스퍼드에서 자신을 지도해준 ‘1대 1 튜터 시스템’의 지도 교수 니코 틴버겐을 이야기할 때는 꿈꾸는 듯한 표정이 되기도 했다. 틴버겐 교수의 지도로 도서관을 뒤져가며 논문을 찾아 읽던 경험은 과학에 이르는 황홀한 통로였다고.
동물학자답게 방한 내내 공식석상에서 블루 셔츠에 사슴이 그려진 넥타이, 새가 그려진 넥타이 등을 번갈아 매는 센스를 발휘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리차드 파인만이 “과학자는 꽃이 필 때 꽃잎에서 피보나치 수열을 보며 사실에 기반한 더 큰 아름다움을 본다"라고 했다. 과학자에게 아름다움은 무엇인가?
“그 인용을 매우 사랑한다. 꽃의 색깔이 화려한 건 기실 곤충이 아니라 새를 유인하기 위한 것이다. 나는 우주와 별과 무지개를 보며 무한한 아름다움을 느낀다. 비주얼보다 원리를 이해할 때 경외감이 더 커진다. 별빛은 기나긴 시간을 지나 우리에게 오며 화석도 영겁의 시간을 거쳐 우리에게 도착한다. 이 얼마나 심오한 만남인가!”
-무척 로맨틱하다.
“과학을 이해한다는 건 로맨틱한 일이다. 모든 생물이..., 벌레부터 인간까지 유전자의 생존을 위해 분투한다는 것, 유전자에 모든 것이 기록돼 있고, 유전자가 나에게 시키고 있다는 것, 유전자의 생존의 지혜로 우리의 후손이 이어진다는 것! 그게 바로 경이다.”
-일흔번 째 생일날 시를 읊었다고 들었다. “아직도 내게는 어두운 밤을 순순이 길들일 시간이 있다.” 당신은 지금 어두운 밤에서 어디를 향해 가고 있나?
“얼마 전 내 어머니의 100세 생일 파티를 했다. 아직 나에겐 시간이 많다(웃음). 나는 요즘 우주에서의 인간의 삶은 어떤 것일까,를 생각한다. DNA가 디지털 형식으로 존재한다면, 다른 행성에서도 계속될까? 지구를 떠나서도 섹스로 개체 번식이 될까? 언어의 문제, 빛의 문제는 어떤 방식으로 존재하게 될까, 호기심이 끊이지 않는다.”
-학자로서 존경하는 사람은 누군가?
“천문학자 칼 세이건이다.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도 좋지만, 특별히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을 좋아한다. 칼 세이건은 ‘과학은 어둠 속의 촛불과 같다'고 얘기했다. 과학을 통해 중세의 미신, 마녀 사냥, 점성술 등을 타파하는 이야기인데, 내게 큰 영감을 주었다.”
-과학 인생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사람은?
“16세에 과학을 선택했고 아버지 권유로 옥스퍼드 생물학과에 진학했지만, 나는 별다른 영감을 받지 못했다. 대학교 2학년 때 논문 지도 교수인 니코 틴버겐을 만나고 달라졌다. 그의 지도로 도서관을 샅샅이 훑으며 매주 박사 논문을 읽고, 논문에 나온 참고 도서를 찾아 읽었다. 학문에 세부적으로 집중해서 파고들어가는 즐거움을 그때 처음 알았다.”
-‘이기적 유전자'를 비롯해서 사랑, 행복, 도덕성 문제에 대한 과학적 연구가 계속 되고 있다. 그러나 그 인과관계를 아는 것이 우리 삶을 더 행복하게 하지는 않는다.
“나도 일상에서 사랑과 슬픔과 행복과 좌절의 감정을 다 느끼며 산다. 그리고 감정을 연구하는 것이 적어도 감정을 훼손하지는 않는다. 관계에 대한 문제는 심리학이 더 많은 답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과학 기술은 인류의 삶을 발전시켰지만 역으로 지구온난화, 생태계 파괴, 핵 문제 등을 유발시켰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과학자로서 어떻게 생각하나?
“과학으로 인해 문제가 드러났을 뿐, 과학이 제기했다고 하는 것은 부당하다. 과학을 잘못 응용해서 끔찍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은 맞지만, 그것을 풀 방법도 역시 과학이 갖고 있다. 당장의 윤리적 문제 때문에 진리를 탐구하는 노력을 멈추면 안된다.”
-과학이 물질, 생명, 인간이라는 주제에 팩트만 제공할 뿐 삶의 가치나 궁극적인 의미에는 침묵하고 있다는 비판에 대해서는?
“왜 우주와 인간이 존재하는가?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그런 질문에 대한 답은 쉽지 않다. 다른 학문도 그렇지 않나? 과학이 못하면 종교도 못한다. 다만 과학은 우주가 어떻게 생겼고, 어디에서 왔는 지에 대해 최고의 답변을 제시한다. 선과악에 대해서는 침묵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윤리적인 딜레마에 빠진다면, 과학적 논리 체계에 따라 가치 판단을 하도록 도울 수 있다.”
-당신은 과학자이면서 또한 과학을 대중과 연결하는 커뮤니케이터다. 대중 언어로 과학을 설명하는 사람은 과학계에서 깊이가 없다고 폄하하는 풍조가 여전한데...
“칼 세이건도 그런 피해를 봤다. 그가 미국의 국립과학자협회 회원이 되지 못했다. 나는 다행히도 영국왕립과학자협회 회원이 됐다. 과학자의 책임은 과학을 연구하는 것만이 아니다. 내가 하는 일을 대중에게 알려야 한다. 실제 요즘에 많은 재단이 과학을 매력적으로 설명하는 일에 지원금을 배정하고, 학자들에게 대중 속으로 들어가라,고 요구한다.”
-대중적인 센세이션을 유도하는 도발적인 과학자라는 평도 많다.
“그 평가는 나에 대한 오해에서 나왔다. 명확성과 도전성을 혼동한 것이다. 뉴욕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도 얘기했지만, 나는 창조론을 사실이라고 믿는 사람은 무지하거나 멍청하다고 생각한다. 이 세계가 창조주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믿는 사람은 말 그대로 ‘무지하다'. 그렇게 믿도록 과학자가 잘 설명하지 못했다는 데 책임을 느낀다.”
-요즘은 무엇에 관심이 있나?
“유전자 DNA를 디지털로 연구하는 걸 계속하고 있다. 유전자 지도를 추적해서 과거 6만년 전만 거슬러 올라가면 같은 선조를 만날 수 있다.”
-반면 미래 사회에서는 부모가 아이의 유전자를 선택할 수 있다. 상당한 논란이 예상되지 않나?
“꼭 비판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 가령 혈우병같은 유전자가 상속되지 않도록 사전에 제거할 수 있다. 음악이나 수학, 뛰어난 외모 등 부모가 원하는 특정 유전자를 수용할 수도 있다. 사악하게 사용하지 않으면 된다. 히틀러 시대의 강제적 우생학과 연결되지 않도록, 사전에 철학적으로 잘 고민하면 될 것이다.”
-당신이 기억하는 최악의 논쟁은 무엇인가?
“살면서 종교에 관해 이야기할 때 좋은 소리를 들은 적이 없다. 그중에 물리학자와의 논쟁이 그래도 최악 중에 덜 최악이었다. 그들은 수많은 우주가 존재하고, 개별 우주의 각각의 값이 은하수와 지구의 중력을 현재 상태로 존재할 수 있게 했으며, 그 특별한 ‘상수'를 조절한 주체가 신이다,라고 가정했다. 하지만 그들은 그 지능있는 존재가 어디에서 왔고, 물리학적으로 그 수치를 어떻게 조절했는지 증명하지 못했다.”
-종교의 미래를 어떻게 보는가?
“나는 종교가 없어지길 원한다. 하지만 빨리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스칸디나비아는 종교를 가진 사람이 20% 정도로 점점 줄어들고 있지만, 미국은 여전히 무신론자에 대한 반감이 크다. 위험한 종교는 이슬람이다.”
리차드 도킨스가 존경했던 과학자 칼 세이건은 과학으로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모든 걸 의심할 수 있다고는 생각했다. 신 마저도. 칼 세이건은 자신이 무신론자는 아니라고 했다. “무신론자가 되려면 제가 아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알아야 합니다. 무신론자는 세상에서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죠”라고.
-과거의 선택에서 아쉬웠던 것은 없는가?
“가끔 내가 옥스퍼드에 들어가지 않았다면 어땠을까,를 생각해본다. 만약 다른 선택을 했어도 지금같은 인생을 살았을까? 내가 했던 사소한 선택들이 현재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친 걸까? 하지만 개별 선택에 상관없이 일정한 방향으로 가도록 하는 힘이 있다고 생각한다.”
-후대에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길 바라나?
“과학이 주는 영감과 매혹을 대중에게 전달한 과학자. 나는 과학과 사랑에 빠진 사람이다. 과학적 원리를 이해하는 그 경이로운 체험을 회피하는 것 자체가 범죄라고 생각한다(웃음).”
◆ 리차드 도킨스는
'똑똑하고, 열정적이고, 명료하고, 무례한' 논쟁의 대명사이자, 우리 사회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영국의 진화생물학자다. 1941년 케냐 나이로비에서 태어나 옥스퍼드대학교에서 수학했다. 노벨상을 받은 동물행동학자인 니코 틴버겐의 제자로 일찍부터 사람들의 예상을 뒤엎는 아이디어를 발표해 왔다. 1976년 출간한 '이기적 유전자'에서 인간을 포함한 동물은 '유전자의 생존 기계이자 운반자'라는 시각을 풀어내면서 과학계 스타가 됐다. 이후 '확장된 표현형' '눈먼 시계공' 등을 펴내며 다윈의 진화론을 옹호했다. 현재 옥스퍼드 대학교 뉴 칼리지의 교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