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주자들 카톡·텔레그램 활발하게 운영
언론과 직접적으로 접촉하지만 사건·사고도
지난 11일 유력한 대선 주자인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귀국에 모든 언론사가 집중하고 있는 가운데 출입 기자들 사이에서는 ‘반기문 단체 카톡방’이 생겼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반 전 총장의 일정을 공지하는 카카오톡 채팅방이 생겼다는 것이다.
소식을 들은 기자들은 저마다 “카톡방에 나를 좀 초대해 달라”며 발 빠르게 움직였다. 반 전 총장의 1월 12일 귀국을 기점으로 ‘반기문 카톡방’에는 1초 마다 기자들이 초대돼 금방 300여 명이 채팅장에 들어오게 됐다. 새벽에도 누군가를 초대하는 기자들의 메시지로 “까톡, 까톡” 핸드폰은 수없이 울렸다. 그러자 기자들 사이에서는 채팅창에 초대될 때 ‘인사 메시지’를 남기지 말라는 하소연도 이어졌다.
탄핵 일정이 빨라지며 유력 주자들의 ‘대선 레이스’가 시작되자 SNS(Social Networking Service)를 활용한 홍보 방법도 뜨거워지고 있다. 유력 대선 주자들이 메시지를 전달하는 창구로 카카오톡과 텔레그램 등 SNS를 활발하게 사용하고 있어서다. 대선 주자들은 SNS 활용으로 언론사에게 일정과 발언들을 예전보다 빠르고 직접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그러나 여의도에서는 뜨거워지는 ‘대선 레이스’ 만큼 대선 주자들의 넘치는 SNS 메시지에 ‘카톡 지옥’에 갇혔다는 푸념도 흘러나온다.
◆ 대선 주자들 SNS 공지방 개설, 이재명은 직접 운영
27일 정치권에 따르면 현재 언론에 거론되는 대선 주자들 대부분은 언론사를 위한 단체 채팅방을 운영하고 있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과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 이재명 성남시장과 안희정 충남지사,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정운찬 전 국무총리 등이 모두 카카오톡과 텔레그램 채팅방을 개설했다.
각 대선 캠프들이 카톡과 텔레그램 채팅방을 개설한 것은 편리함 때문이다. 대선이 되면 언론사 기자들은 각 후보들을 담당하며 취재를 하는데, 기자들에게 일일이 메일과 문자로 공지 사항을 알리는 것보다 단체 채팅방으로 한 번에 알리는 것이 빠르고 정확하기 때문이다. 또 대선 주자들의 일정은 실시간으로 변경되고, 활동 범위가 넓어 곧바로 시정 사항을 알릴 수 있는 카톡과 텔레그램은 유용할 수 밖에 없다.
대선 주자들의 단체 채팅방은 주로 보좌진들이 운영하지만, 대선 주자들이 직접 운영하기도 한다. 대선 주자들이 언론과 허심탄회하게 실시간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텔레그램에 자리 잡은 이재명 측 단체 채팅방에는 이 시장이 직접 글을 올리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 시장이 기자들에게 본인의 생각을 전달하기도 하고, 해명하는 글도 올리기도 한다. 이 시장은 최근 문 전 대표의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THADD) 관련 입장에 대해 공개 질의 하는 글을 단체 채팅방에 남기기도 했다. 안희정 충남지사도 실무자의 아이디를 빌려 기자들과 깜짝 채팅 대화를 하기도 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기자들도 대선 주자들의 단체 채팅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특히 지지율 상위권에 있는 대선 주자들의 단체 채팅방은 수백 명의 기자들이 금세 모여들곤 한다. 반 전 총장의 단체 채팅방에는 현재 300명이 넘는 기자들이 몰려 있으며, 문 전 대표의 채팅방은 여러 개로 나눠져 각 방마다 100명 내외의 기자들이 포진해 있다. 유 의원과 안 전 대표도 카톡을 이용해 100명 내외의 기자들에게 공지 사항을 전달하고 있다.
기자들은 채팅방이 복수로 생기면서 정보가 분산될 것을 대비해 ‘단체 채팅방’ 개설 소식에 귀를 쫑긋 세우기도 한다. 그만큼 유력 대선 주자들에 대해서는 취재 경쟁이 치열하다는 의미다. 일례로 반 전 총장의 단체 채팅방은 현장에 나가 있는 기자들을 상대로 따로 채팅방이 하나 더 개설 됐는데, 이를 확인하려는 기자들의 문의로 보좌진이 공지 글을 띄우기도 했다.
◆ 수백 명 초대로 ‘카톡 지옥’ “인사, 문의글 금지”
하지만 유력 대선 주자들의 메신저 활용은 기자들의 푸념 섞인 불만에 맞닥뜨리기도 한다. 편리하지만 ‘카톡 지옥’에 갇혔다는 불만이다.
각 대선 주자들의 캠프들은 일정과 발언 및 보도 자료 등을 수시로 단체 채팅방에 올리고 있다. 이를 활용하려는 기자들은 채팅방에 실시간으로 들어오고 있다. 이미 채팅방에 들어와 있는 기자가 다른 기자를 초대해 메시지를 남기게 되면 ‘까톡’ 알림이 계속 뜰 수 밖에 없다. 여기에 들어오는 기자들이 소개와 인사 메시지라도 남기게 되면 밤낮으로 수백 번 카톡 메신저가 울리게 된다.
이에 따라 각 캠프는 채팅방 공지 사항에 ‘인사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글을 띄워 놓는 방책을 내놓기도 했다. 또 개인적인 문의 내용은 단체 채팅방을 이용하지 말아 달라고 당부에 나섰다.
일부 대선 주자 캠프 측은 ‘1사 1인’ 규칙을 도입하기도 했다. 단체 채팅방에 기자들이 끝없이 들어와 문제가 생기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각 언론사 마다 한 명의 인원만 들어오게 규정을 두는 것이다. 주로 야권 대선 주자들의 단체 채팅방에서 활용되고 있다.
하지만 각 캠프의 이런 노력에도 단체 채팅방에는 매일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기자들이 채팅창을 착각해 개인적인 메시지를 단체 채팅방에 노출시키기도 하고, 공지 사항을 보지 못한 신규 참여자가 인사 메시지를 남겨 다른 기자들의 주의를 받는 일도 허다하다. 최근 한 대선 주자의 단체 채팅방에는 후보에 대한 별명을 거론하는 메시지가 실수로 입력돼 보좌진이 우려의 글을 띄우기도 했다.
또 각 캠프들이 단체 채팅방으로 대선 주자의 일정과 발언을 전달하다 보니, 캠프의 미숙한 운영이나 실수들도 기자들에게 실시간으로 노출되고 있다. 대선 주자들에게도 단체 채팅방은 편리하지만, 그만큼 위험 부담이 있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단체 채팅방을 열지 않는 후보도 있다. 대선 출마를 공식화한 남경필 경기지사는 아직까지 단체 채팅방을 개설하지 않고 있다. 남 지사 측 실무자가 기자 개개인에게 일일이 일정과 공지사항을 보내고 있는 상황이다.
남 지사 측 관계자는 “공지 사항을 전달해야 하는 기자들이 150명은 된다”라며 “일일이 카톡을 보내는 것이 힘들지만, 단체 채팅방의 안 좋은 측면도 있어 아직 개설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