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딴 파마할 거야?" "응!" 뒤늦게 사랑에 빠진 한 중년 여성이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며 미용사에게 담담히 답한다. 평범했던 '뽀글이' 파마의 여성은 잠시 뒤 여배우처럼 굵은 웨이브의 숏컷 머리로 변신한다. 일본 바닷가 작은 마을의 유일한 뷰티 살롱 '퍼머넌트 노바라'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얘기를 다룬 일본 영화 '퍼머넌트 노바라'의 한 장면이다. 영화에서 미용실은 동네 사람들의 단골 놀이터이자 휴식 공간이다.

여자라면 대개 '퍼머넌트 노바라' 같은 단골 미용실이 있다. 선택 기준은 좀 다르겠지만 말이다. 요즘은 가까워서, 친구가 좋다 해서 무작정 가진 않는다. '취향 시대', 헤어 스타일뿐 아니라 조명·음악까지 꼼꼼하게 따져 고른다. 파마약 냄새, 잘린 머리카락 너저분한 미용실 이미지를 걷어낸 개성 있는 미용실을 찾았다.

갤러리·가드닝… 일석이조 힐링

"올 때마다 전시작이 바뀌어서 작품을 보며 저만의 힐링 타임을 가질 수 있어 좋아요." 40대 여성 조각가 손님이 말했다. 갤러리 얘기가 아니다. 사진작가 출신인 이혜진 원장이 운영하는 서울 연희동 '비컷갤러리'(02-6431-9334)는 갤러리 겸 미용실이다. 쇼윈도에 사진이 걸린 외관만 보면 갤러리 같아서 미용실인지 모르고 지나치는 행인이 많다. 문학·예술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알음알음 소문이 났다. 한 달에 한 번 머리 자르듯 매달 신진 작가의 작품을 바꿔 전시한다. 전시가 바뀔 때면 미용실에서 '작가와의 대화'도 열고, 단골손님에겐 모바일로 초청장을 보낸다.

파마하려면 기본 3시간이다. 커트도 1시간가량 걸린다. 바쁜 현대인에겐 이 시간마저 아깝다. 갤러리·카페 등 일석이조 힐링 미용실이 뜨는 이유다. 강남에선 꽃·식물 등으로 꾸민 '가드닝 미용실'이 인기다. 강남구 신사동 '엘가든'(02-518-3873)에선 미용실 특유의 파마약 냄새가 거의 안 난다. 화학 성분에 민감해 립스틱도 안 바른다는 수진 박 원장이 향기로운 꽃과 식물로 미용실을 채웠다. 공간의 향기까지도 까다롭게 고르는 이들의 맘에 꼭 들었다. 단골손님 중 디자인·패션업계 사람이 많다. 빈티지한 디자인 의자와 중견 작가의 예술 작품이 걸려 있다. 예쁜 카페 같은 분위기에서 감각적으로 헤어 스타일 변신을 할 수 있다.

그날의 헤어 뜻하는 '#hotd' 유행

북카페 못지않은 대형 테이블과 책장을 갖춘 미용실 ‘에이바이봄’. 인스타그래머를 위한 포토존도 만들어뒀다.

인스타그램에선 일상 패션을 의미하는 'ootd(Outfit Of The Day)'에 이어 그날의 헤어 스타일을 뜻하는 'hotd(Hair Of The Day)'란 해시태그가 유행이다. 헤어스타일 변신 후 '인증샷'이 필수가 되면서 미용실의 독특한 인테리어가 중요한 경쟁 요소가 됐다. 청담동 '에이바이봄'(02-516-8765)은 북카페인지 미용실인지 헷갈린다. 헤어숍 한가운데 1000여 권의 책이 꽂힌 책장과 대형 테이블을 뒀다. 올 초 핑크·그린 등 파스텔톤으로 벽을 칠해 포토존도 새롭게 마련했다.

같은 단발머리라도 헤어 디자이너의 손기술에 따라 단정한 소녀가 되기도, 로커처럼 센 언니가 되기도 한다. '펑크 마니아' 이선목 원장이 운영하는 홍대 '펑크샬롬'(02-363-6452)은 펑키한 스타일 연출로 유명한 곳. 점잖은 대학교수도, '꼰대' 이미지의 기업 임원도, 이곳에 가면 자유로운 크리에이터의 이미지로 변신한다. "60대 할머니가 죽기 전 하고 싶은 헤어 스타일 리스트를 들고 찾아오신 적도 있어요." 이 원장이 웃으며 말했다. 사주나 타로점을 본 뒤 운세를 상승시키는 색으로 염색해주는 '사주 염색'과 '타로 염색'도 한다. 커트 2만원, 파마 8만원, 사주·타로 염색 20만원.

머리 색을 자주 바꾸기 좋아하는 염색 마니아들은 검정으로 염색할 때 가장 고민이다. 한 번 검정으로 염색하면 색이 쉽게 빠지지 않아 다른 컬러로 염색할 때 얼룩지기 때문이다. 건대 '다온헤어'(02-469-9429)는 '손상 없는 블랙 빼기'(10만원부터) 시술로 소문을 탔다. 검은 염색 머리를 머리카락 손상을 줄이면서 얼룩지지 않게 다른 컬러로 염색해주는 서비스다. 새벽 2시까지 문을 여는 심야 미용실로 올빼미족들에게도 인기다.

'핑크 마니아'라면 이곳을 추천한다. 연남동 '엘브라운'(02-324-7622)은 평범한 직장인이 하기 부담스러운 핑크색을 브리지나 투톤 컬러 염색으로 연출해준다. 매월 일반인 대상으로 헤어 모델을 뽑아 색다른 헤어 스타일을 연출해주고 잡지 모델처럼 화보 촬영을 해줘 인스타그램에서 인기가 높다.

유튜브·SNS 보고 헤어 디자이너 골라

디지털 시대, 미용실 고르는 풍경도 바뀌었다. SNS, 유튜브, 스마트폰 앱을 통해 미용실을 선택하는 이들이 늘었다. 스마트폰 앱 '컷앤컬'은 문턱 높은 청담동 고급 헤어 살롱들 가격과 원하는 스타일을 검색할 수 있는 앱이다. 출시 2년 만에 가입자 수가 15만명을 넘어섰다. 카카오도 지난해 7월 전국 2000여 개 미용실 정보와 후기를 보고 24시간 예약 가능한 앱 서비스 '카카오헤어샵'을 선보였다. 주차, 발레파킹 여부, 와이파이, 심야영업, 연중무휴 등까지 세세하게 카테고리를 나눠 검색할 수 있다.

그루밍족 김지만(26)씨는 유튜브 영상을 활용한다. 페이스북, 유튜브, 네이버 TV 캐스트 등에서 남자 헤어 스타일링 법을 알려주는 '송PD의 남자는 머리빨'이라는 개인 방송을 알게 됐다. 그러다 이 방송을 진행하는 송인한 원장이 하는 홍대 남성 전용 미용실 '에반스타일'(02-312-7273)의 단골이 됐다. 남성들 취향에 맞춰 미용실 한쪽에 당구대, DJ박스, 바 등이 있어 언뜻 보면 클럽 같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15년 기준 미용실이 전국에 12만234개, 서울에만 2만2433개다. 손님 잡기 위한 아이디어 경쟁 덕에 미용실 가는 이들의 즐거움은 두 배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