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일상에서 수많은 표식을 마주한다. 교통 표지판이나 안전 표시처럼 객관적 정보와 사실을 전달하는 것도 있지만, 심정적 동의를 표해 사람들의 인식과 행동 개선을 추구하는 수단으로 쓰일 때도 많다. 지금 한국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세월호 노란 리본이 대표적이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사회적 의미를 담고 있는 여러 표식의 이야기를 정리했다.
인식 리본
우리가 지금 세월호 사건을 추모하는 의미로 쓰는 '노란 리본'의 디자인은 '인식 리본'에서 왔다. 에이즈예술가집회(Visual AIDS Artists Caucus)의 회원들이 '불치병', '죽음의 병'으로 여겨졌던 에이즈에 대한 편견을 바꾸고 에이즈 환자들에 대한 차별을 방지하기 위해 빨간색 리본을 쓴 것이 시작이다. 리본의 빨간색은 피, 열정, 분노, 사랑의 개념을 뜻하며 리본의 모양은 개선운동에 대한 연대감과 환자를 향한 공감을 뜻한다.
1991년 4월 처음 공개됐고 누구나 리본 디자인을 활용할 수 있도록 특허 등록은 하지 않았다. 이 리본은 에이즈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가진 곳에서도 받아들여질 만큼 시각적인 매력이 있어 세계적으로 퍼져나갔으며 '에이즈의 날'인 12월 1일에는 곳곳에서 빨간 리본을 다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디자인의 단순함과 에이즈 인식 개선 운동에 영향을 받은 다른 단체들이 색깔만 달리하여 인식 개선 운동에 활용하고 있다. 주로 질병 인식 개선 캠페인에서 볼 수 있다.
인식 리본은 색이 달라지면 의미하는 바도 조금씩 달라진다. 가장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이 유방암 인식 개선 캠페인에 쓰이는 '핑크 리본'과 자궁경부암 인식 개선 캠페인에서 쓰는 '퍼플 리본'이다. 이밖에도 전립선암에 쓰이는 '블루 리본', 우울증에 쓰이는 '초록 리본' 등이 있다. 주로 사회적 편견이 심해 투병 사실을 공개하기 힘든 질병의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 쓰인다. 노란색 리본 역시 본래 다른 나라에서는 방광암, 골수암에 대한 인식 개선에 쓰였으나 우리나라에서는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사건 이후 '세월호 희생자'의 무사귀환 바라고 이들을 추모하는 의미로 굳어졌다.
노란 리본의 기원에 대해선 몇 가지 설(說)이 있다. 1965~1973년 베트남전쟁 당시 포로가 되거나 행방불명된 미군을 찾기 위해 가족들이 노란 리본 달기 운동을 벌인 게 처음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또 1972년 발표된 팝송 '떡갈나무에 노란 리본을 달아주세요(Tie a yellow ribbon round the ole oak tree)'에서 유래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이 노래는 감옥에 있던 남편이 출소를 앞두고 아내에게 '나를 기다렸다면 집 앞 나무에 노란 리본을 달아달라'고 편지를 썼는데, 출소 후 가보니 나무에 한가득 노란 리본이 달려 있더라는 내용이다. 어느 쪽이든 노란 리본의 의미는 '기다림'이다. 미국 사회에서 노란 리본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시기는 1979~1981년이다. 주이란 미국 대사관 인질 사태 때 자국민 50여명이 인질로 억류되자 미국인들은 이들의 무사 생환을 기원하며 미국 전역에 노란 리본을 달았다. ▶기사 더보기
2016년 4월 컴퓨터 유니코드 문자표에 '리멤버 0416(Remember 0416)' 등재되면서 노란 리본은 전 세계인들에게 세월호를 기억하고 공유하는 인식 리본이 됐다.
세월호 리본의 유니코드 문자 등재는 전 세계의 컴퓨터, 스마트폰 기기에서 세월호 리본을 문자처럼 쓸 수 있음을 뜻한다. 유니코드 번호 '1F397'인 이 문자는 이전에는 '기억의 리본(REMINDER RIBBON)'이라고 돼 있었다. 하지만 한 후원자가 유니코드협회에 기부금을 내면서 '리멤버 0416'이라는 채택 문자로 등록됐다. 유니코드에서 한번 채택 문자로 등록되면 그 이름과 효과는 영구적이다.
레인보우 깃발
레인보우 깃발, 무지개 색은 '동성애자' '성 소수자'들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표식이자 상징이다. 1978년 샌프란시스코의 화가 길버트 베이커(Gilbert Baker)는 게이 사회를 나타낼 수 있는 상징을 만들어 달라는 동성애 인권 운동가들의 요청을 받고 성 소수자들의 상징하는 레인보우 깃발을 만들었다. 그는 영화 '오즈의 마법사' 주제곡인 'Over the rainbow(무지개 저편)'를 듣고 '다채로운 무지개 색깔이 성적 다양성을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해 6월 25일 열린 샌프란시스코 '게이 퍼레이드'에서 베이커와 자원봉사자들은 무지개 깃발을 들고 행진했다. ▶기사 더보기
베이커가 레인보우 깃발에 처음 사용한 색은 총 8가지(분홍, 빨강, 주황, 노랑, 녹색, 파랑, 남색,보라)이다. 각각은 섹슈얼리티, 삶, 치유, 태양, 자연, 예술, 조화, 그리고 영혼을 상징한다. 하지만 당시 인쇄기술의 한계로 분홍색을 표현하기 어렵자 일곱개 색으로 줄어들었다. 이후 1979년 게이퍼레이드 때 길 양쪽편으로 세가지 색깔씩 나눠 사용하는 과정에서 남색을 제거했고 이 때부터 레인보우 깃발은 여섯개 색으로 굳어졌다.
레인보우 깃발이 대중적으로 크게 알려지게 된 것은 1989년 웨스트 헐리우드에 사는 존 스토우트라는 사람에 의해서다. 자신의 아파트에 레인보우 깃발을 걸었던 그는 집주인이 이를 금지하자 소송을 제기해서 승리했다. 소송 사건을 계기로 레인보우 깃발은 대중적에게 동성애, 성 소수자의 상징으로 크게 알려지게 된다. 각각의 색을 흐리지 않으면서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는 무지개처럼 서로 다름을 인정받으면서 아름다운 공동체를 만들자는 의미도 담고 있다.
[무지개색이었던 애플의 로고, 동성애와 관련 있다는데… ]
[구글·가디언 로고에 무지개色… 러 反동성애법 세계적 逆風]
평화의 상징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알려진 '평화의 상징(Peace symbol)'이다. 1960년대와 1970년대 미국에서 베트남 반전 운동, 환경 시위, 여권 운동 및 동성애자 권리 신장 운동 등의 시위에 단골로 등장했다. 이후 1980년대 환경운동에도 쓰였으며 2000년대 초반 미국이 이라크 전쟁을 일으키자 반전 메시지를 전하는 상징으로서 널리 알려졌다.
1958년 4월 4일 영국 런던의 트래펄가 광장에서 수천 명이 벌인 반핵 시위 때 처음 등장한 이 상징은 영국인 디자이너이자 반전주의자였던 제럴드 홀톰(Holtom)이 반핵 캠페인을 위해 만들었다고 알려졌으나 확실하지는 않다.
핵(Nuclear)의 머리글자인 N과 군축(Disarmament)의 D의 국제 수기기호를 표식화했다. 원을 없앤 모양은 힘없이 팔을 늘어뜨린 인간으로 절망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평화의 상징은 본래 검은 바탕에 흰색 선을 사용했다. 검은 바탕은 영원을, 흰색의 선은 평화를 의미한다. 그러나 일부 기독교인들은 까마귀의 발모양을 형상화한 악마의 상징이라고 비난하기도 한다.
세미콜론
세미콜론, 우리나라 문장에서는 잘 쓰지 않으나 영어 문장에서는 세미콜론의 유무에 따라 문장의 의미가 달라진다. 문장 뒤에 이 부호가 붙으면 문장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뜻으로 완성되지 않은 불완전한 문장으로 본다.
이런 세미콜론 모양의 문신이 최근 인터넷과 SNS 상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세미콜론 타투는 비영리 정신건강 단체인 '더 세미콜론 프로젝트' 활동의 하나로, 우울증이나 자살 충동, 약물 중독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에게 희망과 사랑을 주자는 취지로 시작했다. 문장을 끝낼 수 있지만, 마침표를 찍지 않기로 했을 때 세미콜론 부호를 쓰듯이 당신의 삶은 끝나지 않았다는 뜻이다. 간단한 문장 부호를 통해 문장은 당신의 삶이고 글쓴이는 당신이므로 당신의 삶은 계속 쓰여져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카드뉴스 더보기
뉴욕시 장애인 마크
2014년 7월 뉴욕시는 46년만에 장애인 마크를 교체했다. 기존 뉴욕시 장애인 마크는 정적인 자세로 휠체어에 앉아있는 사람을 표현한 것으로 1968년 국제 공모에 당선된 덴마크인 수잔느 코에프의 작품이다. 세계 공용으로 쓰이고 있다.
뉴욕주가 채택한 새 마크는 장애인이 휠체어 바퀴를 굴려 전진하는 역동적 모습으로, 미국 디자이너 사라 헨드렌(Sara hendren)이 디자인했다.
기존 장애인 마크가 수동적이고 나약한 장애인 이미지를 만든다고 생각한 그녀는 자신이 만든 마크를 뉴욕시 장애인 표지판이 있는 곳에 몰래 붙이는 이벤트를 벌였다. 뉴욕시는 처음에 그녀의 행동을 공공시설물 파손 행위라 봤지만 많은 뉴욕 시민들이 그녀의 활동에 지지를 표하며 동참하자, 공식 장애인 마크로 그녀의 디자인으로 바꿨다.
미국 50개 주 가운데 장애인 표지판을 바꾼 것은 뉴욕주가 처음이다. 뉴욕주는 또 새 표지판에 장애인을 뜻하는 'handicapped'란 단어를 쓰지 못하도록 했다. 장애인 단체들이 "이 단어가 과거 장애인들이 손(hand)에 모자(cap)를 들고 구걸하는 모습에서 유래했다"며 사용 중지를 요구해온 데 따른 것이다. 새 표지판엔 글씨 없이 새로운 로고만 쓰거나, 글씨가 필요한 경우 '(장애인만) 이용할 수 있다'는 뜻으로 '접근 가능(accessible)'이란 단어를 넣기로 했다. ▶기사 더보기
파리에 평화를
2015년 11월 파리 테러가 발생했을 때 전 세계인들이 똑같이 공유한 이미지가 있다. 이 이미지는 IS의 파리 테러로 전 세계가 공포와 슬픔에 잠겨 있을 때 SNS를 통해 확산됐다.
프랑스 출신 그래픽 디자이너 장 줄리앙(Jean Jullien)이 제작한 이 일러스트레이션은 원과 에펠탑을 결합시킨 형상으로, 반전과 평화를 뜻하는 '평화의 상징' 심벌에 에펠탑 이미지를 덧대 표현한 것이다. 줄리앙은 그동안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여러 일러스트레이션을 꾸준히 제작해왔다. 반전과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면서 파리 테러 희생자들을 애도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 이미지는 파리 테러 직후 #PrayforParis #jesuisparis 등 해시태그와 함께 전 세계로 퍼지며 세계인들의 파리 테러에 대한 공감와 연대를 보여줬다.
I ♥ NY
'I ♥ NY'만큼 뉴욕을 잘 나타내는 상징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이 로고가 인쇄된 흰색 셔츠를 뉴욕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즐겨 찾지만, 정작 뉴욕주나 뉴욕시의 공식 로고는 아니다. 미국 뉴욕주 상무국의 의뢰로 그래픽 디자이너 밀턴 글레이저(Milton Glaser)가 1977년에 디자인한 이 로고는 단지 몇 달 동안 진행되는 관광 진흥 캠페인에 사용될 예정이었다. 글레이저는 디자인료를 받지 않았으며, 모든 지적재산권을 뉴욕주에 기탁하여 일찌감치 '재능 기부'를 실천했다.
2001년 9월 11일, 뉴욕시가 무슬림 극단주의자들의 무자비한 테러로 큰 상처를 입고 시민들이 비탄에 빠졌을 때 글레이저는 자발적으로 새로운 로고를 디자인했다. 기존 로고에 '어느 때보다 더(MORE THAN EVER)'를 추가하고, 맨해튼 섬을 상징하는 하트의 서남쪽, 즉 세계무역센터 부지에 해당되는 곳에 검은색으로 멍을 표시하여 참혹한 테러의 상처를 부각시켰다.
데일리뉴스 신문에 게재된 이 포스터는 비록 큰 멍이 들었을지라도 더 뉴욕을 사랑한다는 메시지로 뉴욕 시민들의 아픈 마음을 달래고 단결심을 고취시켰다. 훌륭한 로고 디자인은 백 마디 말보다 더 사람의 심금을 울릴 수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기사 더보기
앞서 소개한 상징들은 간단한 디자인으로 우리가 사는 세상이 더 행복하고 나은 세상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표현하고 있다. 이런 상징들은 사람들 사이를 연결시켜, 더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도록 도와준다.
참고 자료
현대카드 디자인 라이브러리 기획전시 : 모두를 위한 디자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