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핵 폭격기 6대, 해상 초계기 1대, 전자정보 수집기 1대 등 10여 대가 그제 제주 남방 우리 방공식별구역(KADIZ)을 침범했다. 역대 최대로, 한·일 식별구역 침범 시간도 약 5시간으로 가장 길다. 방공식별구역은 국제법상 영공(領空)은 아니다. 하지만 다른 나라 항공기가 방공식별구역에 넘어올 경우 사전 허가를 받는 것이 관례다. 중국은 우리 측에 이를 사전 통보하지 않았다. 중국 폭격기 등은 대한해협을 통과해 동해로 넘어가 일본의 방공식별구역도 넘어갔다가 되돌아갔다.

중국은 이에 앞서 지난달엔 서해에서 항공모함을 동원해서 실탄 훈련을 벌였다. 중국의 첫 항공모함인 랴오닝호와 구축함 여러 척에서 발진한 함재기(艦載機), 헬기가 참가한 실전 훈련이었다. 중국은 이 훈련이 '정상적 일정'이라고 밝혀 앞으로도 비슷한 훈련이 서해에서 계속될 것임을 시사했다. 지난해 남중국해에선 중국 인공섬 문제로 미·중이 일촉즉발로 대립했다. 이제 중국이 군사행동을 북상시키고 있으며 바로 한반도 동·서해가 그 무대가 될 것이란 사실이 분명해지고 있다. 중국의 의도는 한·미·일 3각 체제를 겨냥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 시진핑은 '해야 할 일을 주도적으로 한다'는 '주동작위(主動作爲)'를 내세우고 있다. 올해 하반기 19차 중국 공산당 전국대표대회를 앞두고 더욱 공격적으로 나올 수 있다는 분석이 많다.

중국의 공세는 특히 한·미·일 3국 협력 체제의 가장 약한 고리라고 할 수 있는 우리를 겨누고 있다. 중국은 한·미 동맹을 이완시키고 '3각'에서 우리를 이탈시키는 것이 목표다. 사드를 반대하면서 한국을 압박하는 목표 중 하나도 우리를 길들이는 것이다. 중국이 해상과 공중에서 벌이는 시위는 사드 배치가 가까워질수록 더 위협적으로 변할 것이다. 중국 항모가 서해가 아니라 동해에 출현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정치권에서는 이런 중국의 움직임에 아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우리끼리 물고 뜯느라 주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도 모른다. 국방부는 중국 폭격기의 대규모 침범을 10시간 넘게 감추고 있다가 일본서 보도가 나오자 공개했다. 나라가 크게 잘못되고 있다. 빨리 정상화하지 않으면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른다. 어제 한반도 주변에는 한·중·일 3국의 군용기 50여 대가 동시에 공중에 떠 있는 상황이 한동안 계속됐다. 한반도 주변의 불안정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 안보 위기를 어떻게 헤쳐나갈지 앞이 보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