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진 국가안보실장이 8일 미 트럼프 새 정부 인사들을 만나기 위해 출국했다. 그는 누구를 만나느냐는 질문에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고 했다. 이 대답이 지금 우리 처지를 보여주는 것 같다. 리퍼트 주한 미 대사가 이임 회견 직전에 갑자기 취소한 것도 석연치 않다. 미국이 한국 조기 대선 결과를 기다리는 것이라면 한·미 관계의 불안정이 최소 4~5개월 이어질 수 있다.

일본 아베 총리는 어제 "(위안부 합의가) 정권이 바뀌어도 실행되어야 한다"고 했다. 미국 부통령은 "한·일 정부가 책임을 갖고 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사실상 일본 편을 든 것이다. 오늘 귀국하는 주한 일본 대사는 '일시 귀국'이라고는 하지만 언제 돌아올지 알 수 없다. 사드 배치를 반대하는 중국이 며칠 안으로 또 무슨 압박 카드를 꺼낼지 알 수 없다. 미·중·일 3국과의 관계가 정상 궤도에서 다 벗어났다.

가장 걱정되는 것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한국 정부가 배제된 가운데 북한 문제에 대한 틀이 바뀌는 상황이다. 미국에선 통상 새 정부가 들어선 후 대외 정책이 결정되기까지 6개월 정도가 걸린다고 하지만 그 전에 미·중 간에 타협이든 충돌이든 큰 방향이 결정될 수 있다. 1월 말 만나는 트럼프와 아베가 한반도 문제와 관련해 어떤 얘기를 나눌지도 알 수 없다.

김정은은 트럼프의 정책을 지켜보다 시기를 골라 전략적 도발에 나설 것이다. 미국 본토까지 핵을 실은 미사일을 날릴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기까지 도발을 멈추지 않을 것이란 게 태영호 전 북한 공사의 말이다. 한반도를 둘러싼 스트롱맨들이 우리 머리 위에서 어떻게 공을 돌릴지 아무도 모른다. 그런데도 우리 대선 주자들 중 어느 한 사람 이 상황의 심각성을 말하지 않는다. 여야정 안보협의체라도 만들자는 상투적 제안도 없다. 외교안보 문제조차 책임 없는 대중(大衆)의 뒤를 쫓아다니며 단세포적인 소리나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