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꽃보다 남자'에만 'F4(Flower 4)'가 있는 게 아니다. 종합 편성 채널에도 있다. 2011년 종편의 탄생이 시사토크 프로그램의 전성기를 열었다면, 시사 프로는 꽃미남 연예인 못지않은 패널 스타들을 탄생시켰다. 5년 동안 시사토크의 성격도, F4의 주요 멤버들도 조금씩 바뀌었다. 종편 초창기엔 윽박지르기 잘하고 목소리 큰 공격형 패널들이 인기를 끌었다면, 최근 들어서는 정치 상식 풍부하고 논리 정연한 데다 예능감까지 갖춘 패널들이 대세다. 패널들 스펙트럼도 다양해졌다. 교수, 언론인, 정치인, 법조인 그룹부터 경찰, 탈북 지식인, 연예 전문가들까지 합류했다. 덕분에 똑똑해지고 박식해진 건 시청자들이다. 온종일 대한민국 돌아가는 판을 생중계해주니 "종편이 아홉 살 딸애부터 칠순 시어머니까지 전 국민을 시사평론가로 만들었다"는 우스갯말도 나온다.

인지도·호감도·신뢰도에서 1·2·3위를 차지한 전원책·조갑제·김진(왼쪽부터).

전원책, 조갑제, 그리고 김진

최고의 인기 패널은 누굴까? 조선일보 '더 테이블'이 지난주 20대 이상 독자 500명에게 '종합 편성 채널 패널들'에 대한 의견을 물었더니, 공교롭게도 인지도·호감도·신뢰도에서 1~3위를 같은 패널이 차지했다. 1위를 차지한 주인공은 전원책 변호사다. 전 변호사는 지상파 방송에서 일찌감치 시사평론을 시작한 1세대 평론가이지만 존재감을 알린 건 종편에 출연하면서다. 현재 TV조선 '이것이 정치다'와 JTBC '썰전'에 출연하는 그는 정치에 대한 해박하고도 합리적인 식견에 능청스러운 예능감까지 갖춰 '할배파탈'이란 애칭으로도 불렸다. 2위는 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다. 월간조선 사장을 지낸 그는 70대인 지금도 직업을 '기자'라고 쓰는 베테랑 언론인. 북핵부터 통일 문제, 동북아 국제관계, 한국 근현대사까지 아우르는 폭넓은 지식과, 사실과 취재에 기반을 둔 치밀한 논리로 시사토론의 격을 높인 보수 논객 첫손에 꼽힌다. 3위는 신문기자 출신 김진씨로 꼽혔다. 최근 중앙일보를 퇴사하고 전업 정치평론가로 나선 김씨는 국내 정치는 물론 남북 관계, 군사 문제, 동북아 국제관계에 전문 지식을 갖춘 데다 저돌적이지만 빈틈없는 논리 전개로 많은 팬을 갖고 있다.

순위 안에는 들지 못했지만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20대 응답자 절반이 가장 좋아하고 신뢰하는 패널로 꼽았다. 패널 인지도 4·5위는 황태순 정치평론가·이준석 전 새누리당 혁신위원장, 신뢰도·호감도 4·5위는 이준석·최병묵 전 월간조선 편집장으로 나타났다.

PD들이 선호하는 F4는 누구?

시사토론 제작진은 일반 시청자와는 견해가 조금 달랐다. 연출자, 작가들이 꼽은 'F4'는 최병묵, 황태순, 민영삼, 이현종이었다. 제작진 선호도는 출연 빈도수에서 잘 드러난다. 얼마 전 민주언론시민연합이 조사한 '종편·보도 채널 시사토크 최다 출연자'에서 최병묵 전 편집장이 가장 많은 출연 횟수를 기록했고, 민영삼 정치평론가가 2위, 황태순 평론가는 5위, 이현종 문화일보 논설위원은 8위를 차지했다. TV조선 권기덕 PD는 "한마디로 믿고 쓰는 패널들"이라며 "각자 개성은 다르지만 정계와 언론계에서 20~30년간 쌓아온 풍부한 경험과 식견, 논리정연하고도 구수한 말솜씨가 시청자들에게 어필한다"고 말했다. '이것이 정치다'를 연출하는 최금란 PD는 "그분들 별명이 '구전보따리'다. 역사와 현장, 팩트와 예능감을 적절히 버무려 재미있게 들려주는 데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고 했다. F4의 출연 빈도수가 잦다 보니 '채널만 돌리면 보인다'는 겹치기 출연 논란에 휩싸일 때도 있다. 하지만 제작진들은 "대한민국 정치판이라는 게 워낙 다이내믹하게 돌아가는 데다 속보가 많이 들어와 '고수'들이 아니면 원활한 방송 진행이 어렵다"면서 "시청률까지 담보되니 F4가 스튜디오에 앉아 있으면 마음이 놓인다"고 했다. 여성 패널들이 부족한 점은 아쉽다. 정옥임 전 국회의원, 김민전 고려대 교수 등이 신뢰도와 호감도 면에서 남자 패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정도. 권 PD는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 게이트에 관한 토론에서는 여성적 시각이 절실할 때가 많은데 그 점을 충분히 이야기할 수 없어 아쉽다"고 했다.

정치판 핵폭풍 앞두고 패널 몸값 'UP'

'정치평론 과잉'이라는 비판도 받지만 종합 편성 채널 시사토크는 '보이는 라디오' '신문 읽어주는 TV'로 그 인기는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탄핵, 개헌, 조기 대선 등 대한민국 정치판에 핵폭풍을 몰고 올 이슈들이 줄줄이 대기 중이라 패널들 '몸값'은 더욱 높아질 태세다. '더 테이블'이 조사한 결과도 이를 반영한다. '종편 패널들이 지닌 가장 큰 장점'으로 '무겁고 딱딱한 정치 사회 이슈를 쉽게 설명해준다'(24.7%)가 1위를 차지했다. 2위는 '정치권력을 거침없이 비판하며 민의(民意)를 전달한다'(20.9%)였고, '제도권 방송인들처럼 경직되지 않고 자유로워 좋다'(20.4%), '티격태격 논쟁하며 드라마보다 더 재미있게 시사를 전달한다'(13.3%)가 뒤를 이었다. 반면 '종편 패널들이 지닌 가장 큰 문제점'으로는 '팩트(사실)가 부족한 신변잡기식 수다'(53.5%), '겹치기 출연'(14.7%), '전문성 부족'(10.3%), '방송에 적합하지 않은 거친 언어와 몸짓'(8.3%) 순으로 나타났다. 최금란 PD는 "방송 심의가 갈수록 엄격해지는 추세라 생방송 중 극단적인 표현이나 욕설이 튀어나올까 봐 조마조마할 때가 있다"며 웃었다.

이 같은 문제를 극복하려면 패널들의 스펙트럼이 더 다양해지고 전문화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병묵 전 편집장은 "정치 밖 이슈가 속보로 터졌을 경우 미리 공부해오지 않았다면 난감할 때가 왕왕 있다"고 했다. 익명을 요구한 연출자는 "이슈별, 분야별로 최고의 전문가들이 패널로 나와 수준 높은 토론을 이어가야 하는데 현재 방송 제작 구조상 한계가 있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변호사 출신 패널이 너무 많은 것도 문제로 지적됐다. 황태순 평론가는 "세월호, 유병언 사건이 터진 2014년 법률 다툼에 강한 변호사 그룹이 대거 종편에 진출했다"면서 "논리적 화법이 강점인 반면 정치 현장 경험은 부족해 현실과 동떨어진 대안을 제시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종편 패널이 정치인 혹은 정치 지망생들의 2부 리그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정계로 진출 혹은 재진출하기 위한 발판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 '더 테이블'이 조사한 패널 그룹 신뢰도에서도 '국회의원 등 정치인 그룹'은 3.4%로 최하위를 기록했다. 채널A '뉴스 Top 10', TV조선 '신통방통'을 연출한 정동욱 PD는 "새로운 얼굴, 새로운 시각들을 발굴하려고 노력을 많이 한다"며 "한 보도 채널에서는 전문해설위원 제도를 고려하는 등 겹치기 출연을 막기 위한 다양한 대안들을 모색 중"이라고 말했다.


"종편 패널들의 장점은 딱딱한 정치 이슈를 쉽게 설명해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