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후 한국 경제와 사회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큰 흐름을 보여주려고 했다. 그래서 경제 부분도 사건의 단순한 나열이 아니라 구조와 이론 중심으로 설명했다. 한국의 경제발전과 민주화를 가능하게 했던 비결이 무엇이었는지 이번 국정교과서를 통해 좀 더 분명하게 드러났다고 생각한다."
지난달 말 공개된 고등학교 한국사 국정교과서 검토본의 현대사 부분에서 경제·사회 분야 집필을 담당한 김낙년(59)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국근현대경제사를 전공하는 학자다.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일본 도쿄대에서 박사를 받았으며 '일제하 한국경제' '한국의 경제성장' '한국의 장기통계: 국민계정 1911~2010' 등의 편·저서가 있다.
―경제학과 출신의 경제사학자가 국사교과서 필진으로 참여한 것은 처음이다. 더구나 학생운동권 출신으로서 국정교과서 집필을 맡는 것이 쉽지 않았을 텐데.
"학교에서 한국경제사 수업을 토론 방식으로 진행하면서 학생들이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읽을거리를 나눠주면 매우 혼란스러워하고 반발한다. 근원을 따지고 들어가니 고교 역사교육 때문이었다. 예전에 사용된 검정 한국근현대사 교과서는 좌편향성이 매우 심했고 지금의 검정 한국사 교과서는 조금 완화된 듯하면서도 그대로 숨어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생각하던 차에 국정교과서 집필 의뢰가 와서 응했다."
―교과서 집필에서 가장 역점을 둔 것은 어떤 점인가.
"기존 검인정 국사 교과서들은 경제 부분에서 필자들이 경제전문가가 아니어서인지 사실을 나열하면서도 논리적으로 연결하지 못하고 있다. 예를 들어 '한강의 기적'과 저임금, 저성장과 양극화가 어떤 관계에 있는지 설명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경제·사회적 변화를 고교생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학계의 연구 성과를 녹여서 쉽게 설명하려고 노력했다. 그래프와 표를 되도록 많이 넣은 것은 그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기존 검정 교과서들과 어떻게 다른가.
"종래는 1987년 민주화를 4·19혁명 이후 민주화운동의 연속선상에서 설명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4·19정신이 1960년대 이후 권위주의적 경제성장의 결과 형성된 중산층을 기반으로 실현될 수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주려 했다. 1970년대 중화학공업화와 재벌(대기업집단) 형성에 대해서는 1960년대 경제개발 과정에서 실적이 있는 기업들을 전망이 불확실한 산업에 진출하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었고 그 결과 국제경쟁력을 갖게 됐지만 정경유착이 초래되기도 했다는 점을 밝혔다. 이승만 정부가 친미(親美) 일변도였다는 오해를 바로잡기 위해 한국이 미국의 원조자금을 일본 공산품 수입에 사용하는 것을 반대해 한·미 갈등이 빚어졌다는 사실도 서술했다."
―1960~70년대의 경제성장을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공으로 돌려서 미화했다는 비판도 있는데.
"한국경제의 고도성장을 박정희 한 사람과 연결해 논의해서는 안 된다. 1950년대의 자유시장경제 제도 정착, 후발주자로서의 이익, 인구구조와 교육열, 냉전하 중국의 봉쇄 등이 영향을 미쳤다. 이런 요인들을 제대로 설명했는지는 보지 않고 박정희 시기의 경제를 몇 쪽 서술했는지 계산하는 것은 유치하다."
―새마을운동에 관한 서술이 새로 들어간 것도 말이 많다.
"그 부분이 박근혜 대통령과 관련 있었다면 박차고 나왔을 것이다. 새마을운동이 관(官) 주도로 출발했지만 농민이 지역개발에 참여하게 됐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가 있다. 다만 분량 때문에 새마을 운동의 한계와 문제점에 대한 지적이 줄어든 것은 다시 살리기로 했다."
―내용이 아무리 좋아도 국정교과서는 안 된다는 사람도 있다.
"나도 국정교과서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입장이 다른 교과서는 씨를 말리는 풍토에서 단기적으로 국정교과서가 불가피한 측면도 있다. 1~2년 국정을 사용해 기존 교과서와 비교하게 한 후 검인정으로 가면 좋을 것 같다. 이번 국정교과서를 사용해 보면 교사나 학생 모두 기존 교과서들과는 확실히 다르다고 느낄 것이다. 국정교과서가 나온 뒤 차분한 토론을 기대했는데 정국과 연관돼 정치적 갈등만 증폭돼 유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