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삼희 수석논설위원

이번 조류인플루엔자(AI) 피해는 산란계(産卵鷄)에 집중되고 있다. 사육 마릿수는 육계(肉鷄)나 산란계나 7000만 마리 전후다. 그런데 22일까지 살(殺)처분 비율은 산란계 22.8%(1593만 마리), 육계는 0.8%(63만 마리)였다. 육계는 모래·왕겨를 깔아놓은 평사(平舍)에서 키우고, 산란계는 계란 수거가 용이하게 케이지 사육을 한다. 케이지당 3~6마리를 넣는다. 두 방식의 마리당 바닥 면적(500~530㎠)은 큰 차이 없다. 다만 케이지는 아파트 식으로 여러 단을 쌓아 올린다.

산란계를 케이지에 가둬 키우는 밀집(密集) 사육이 AI를 확산시킨다는 견해가 있다. 닭이 좁은 공간에 갇혀 스트레스를 받고 질병 저항력도 떨어진다는 것이다. 병에 잘 걸려 항생제도 많이 쓴다고들 한다. 공격성이 늘어 서로 쪼는 걸 막으려고 부리도 잘라놓고, 알을 많이 낳도록 밤에도 불을 밝혀놓는다는 것이다.

전문가 다섯 명을 취재해봤는데 알려진 얘기와는 다른 설명들을 했다. 산란계 농장에 피해가 집중된 것은 매일 계란을 끄집어내려고 운반 차량과 인력, 계란 담는 팰릿 등이 드나들기 때문으로 봐야 한다. 육계는 한 달 정도 키운 후 반출하는데 그 사이의 사료 공급은 자동화돼 사람 드나들 일이 별로 없다. 결국 AI는 케이지 사육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관리 부실 탓이라는 것이다.

국립축산과학원 최희철 박사는 현대화된 사육 시설들은 생각보다 위생적이라고 했다. 케이지에 키워도 생산성이 유지되는 걸 보면 닭들이 심한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지도 않다는 것이다. 가금연구소 김상호 박사는 재래식 닭장 경우 온도·습도를 맞추거나 환기(換氣)하는 게 어렵다고 했다. 방사(放飼)는 철새·야생동물의 기생충·분변에 의한 세균성 감염에 취약하다. 전북대 류경선 교수는 "유럽에서 방사를 권장했더니 닭들이 케이지 사육에 적응된 탓에 날갯짓으로 점프하다가 가슴뼈·발목뼈가 부러지곤 해 문제가 됐다"고 했다.

병아리 때 부리 자르는 것은 옥수수·영양제 등을 섞은 배합사료에서 자기 좋아하는 것만 편식하지 말라는 뜻이 먼저라고 충북대 모인필 교수는 설명했다. 항생제는 2012년부터 질병 있을 때만 수의사 처방을 받아 쓸 수 있기 때문에 거의 문제가 안 된다는 견해들이었다. 김상호 박사에 따르면 동물 복지 선진국인 영국이 올 초부터 병아리 부리 자르기를 금지하려다가 부리를 그냥 두면 허약한 놈을 집단으로 쪼아대는 현상이 심해져 보류했다. 김 박사는 재래식 사육 환경에서 닭들이 더 공격적이 된다는 의견이었다.

계사에 불을 밝히는 것은, 닭은 빛이 충분히 공급돼야 성호르몬이 분비돼 알을 낳기 때문이다. 새벽 5시~저녁 8시의 15시간 정도 전깃불을 켜둔다. 24시간 켜두면 닭도 고통받고 전기료는 많이 들고 아무 때나 알을 낳아 집란(集卵)이 어려워진다. AI 바이러스는 고병원성이어서 케이지 사육이건 방사 방식이건 감염된 닭은 무조건 죽는다(모인필 교수, 축산과학원 이준엽 박사). 개방형 케이지에서 키우는 유럽에서도 AI는 많이 발생하고 있다. 국내 AI 확산은 바이러스의 증식 기계 역할을 하는 오리 농장과 닭 농장이 섞여 있는 것이 문제라는 지적들이 많았다(모인필, 류경선 교수).

닭은 감각을 가진 생명체(sentient being)다. 날갯짓하고 모래 목욕하고 땅을 쪼아대고 밤엔 횃대에 올라가 자는 습성이 있다. 마리당 A4 용지(620㎠)만큼도 안 되는 공간에 가둬 키우는 건 분명 못 할 짓이다. 유럽은 2012년부터 케이지 사육을 금지했다. 케이지에서 키우더라도 횃대·모래목욕장·산란 상자를 만들어주는 것이 생명 존중에 맞는다. 그러나 동물 복지 시설을 갖추려면 소비자들이 닭고기·달걀에 값을 더 쳐줘야 한다. 이건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부분이다(류경선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