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은 한 해를 마감하는 달이지만, 동시에 신춘문예의 계절이기도 합니다.
다른 신문 신춘문예 소설 심사를 한 문학평론가와 밥을 먹다가 그런 푸념을 들었습니다. 심사하기가 너무 힘들어졌다고요.
전에는 한두 장만 읽으면 '견적'이 나왔는데, 지금은 한참을 읽어야 한다는 겁니다. '함량 미달'이 다수였던 예전과 달리, 요즘은 어느 정도 수준을 갖춘 응모자가 많아졌다는 거죠. 거칠게 일반화하면, 70~80점 수준의 지망생들. 그러다 보니 계속 읽어야 판단이 서고, 또 그러다 보니 심사에 필요한 시간이 부쩍 늘었다는 비명이었습니다.
일견 상향 평준화 같지만, 좋은 뉴스만은 아닙니다. 이 현상의 이면에는 '독자의 저자화(化)'가 있습니다. 전에는 독자로 만족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저자를 자처하고 나선 거죠. 문제는 스스로 쓰려고만 하지, 읽는 사람은 대폭 줄었다는 것.
이번 주 신간에 서평가 이원석의 '서평 쓰는 법'(유유刊)을 주목해서 읽었습니다. 그는 '독후감'과 '서평'을 구분합니다. 한 줄로 요약하면 독후감은 책을 읽은 다음의 감상(感想), 서평은 책에 대한 사유(思惟)를 담는다는 것. 요컨대 많이 읽고 오래 생각하는 만큼, 서평 수준이 높아진다는 이야기였죠.
지난해 봄 '인문학 페티시즘'을 펴냈을 때, 저자인 그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사장님도 인문학, 직원들도 인문학, 주부들도 인문학, 모두가 인문학을 찬양하는 세상인데, 정작 학문으로서의 인문학은 앙상해져가는 현실에 대한 비판이었죠. 페티시즘은 결국 물신(物神) 숭배. 어쩌면 근본은 잊고 사소한 줄기에만 사로잡힌 본말전도(本末顚倒)일 겁니다. 인문학은 문화적 액세서리나 성공을 위한 스펙을 넘어서니까요.
지난 1년, 독자 여러분과 많은 책을 함께 읽었습니다. 오늘 밤은 크리스마스 이브. 이번 주 커버스토리는 성탄절에 함께 읽으면 좋을 시와 소설입니다. Books가 산타클로스는 아니지만, 이 책 선물과 함께 자기만의 리듬과 속도로 걸어가는 연말 되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