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발견
최정운 지음|미지북스|688쪽|2만5000원

“1950년대는 그간 비참한 시대로만 알려져 왔지만, 사실은 비참했던 만큼 위대한 시대였다. 어떤 지도자의 힘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지식인들이 자발적으로 노력해서 죽은 민족을 살려내고야 말았다.”

한국인들은 근대로 오기까지 어떤 여정을 걸어왔을까. 최정운 서울대 교수는 신간 ‘한국인의 발견’을 통해 한국 현대사를 움직인 힘의 정체를 파헤치며, 해방 이후 역사적 사건과 한국 현대 소설 속에서 새롭게 발견한 시대정신을 소개한다.

1945년 8월 15일, 해방 직후의 분위기는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달리 환희와 축제의 시간만은 아니었다. 일제가 물러간 해방 공간에는 권력 공백이 생겼고, 한국인들은 앞다퉈 수많은 정치 단체와 정당들을 만들어냈다. 이러한 혼란을 종식하기 위해서는 ‘홉스적 사회 계약’이 필요했고 이는 자연스레 미국에 대한 의존으로 나타났다. 미국에 대한 물적 의존은 점차 정신적 의존으로 심화됐고, 결국 이러한 초기 조치들이 장기적으로 대한민국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게 됐다.

대한민국은 휴전선을 긋고 살아남았다. 한국전쟁은 한국인들에게 여러 층위의 악몽을 심어놓았고 황폐화된 도시를 남겼다. 1950년대 전반, 대표적인 한국 소설들에 나타난 당시의 모습은 ‘죽음’이었다. 이후 한국은 긴 시간 동안 혁명과 투쟁의 시간을 보냈다. 유신 체제에 저항하고 민주주의를 확립하기까지 꼬박 반세기가 지났다.

1990년대는 근대화의 결정적 단계였다. 서구의 근대성을 흉내내던 ‘짝퉁 근대화’를 넘어, 근대성의 근본적인 문제의식을 습득하고 진정으로 근대에 진입하는 시대였다. 결국 2000년대 현재에 이르러 한국인은 과거를 돌아보며 ‘우리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본격적으로 던지기 시작했다.

저자는 근대로 시간여행을 떠나며 이 해답을 찾아 나간다. 그 과정에서 발견된 우리 역사는 ‘예술 작품’의 연속이다. 1953년작 황순원의 ‘카인의 후예’에서 전쟁의 그늘을 발견했고 김동리의 ‘등신불’에서 5·16의 첫인상을 포착했으며, 공지영의 ‘고등어’를 통해 근대로의 진입을 확인한다. 50여개의 문학 작품이 보여주는 반세기 현대사 속에서 한국인의 정체성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