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소사회
김민하 지음|현암사|320쪽|1만5000원

“냉소주의의 문법에서 보이는 가장 중요한 특징은 언제나 상대 주장의 내용이 아니라, 그의 ‘진정성’을 확인하려 든다는 것이다.…즉, 나에게 일부러 손해를 끼치려고 시도하는 게 아닐 때에만 이해와 수용의 대상이 된다.”

한국은 지금 냉소주의의 함정에 빠져있다. 정치 지향에 대한 냉소로 인해 진보 정치는 외면받았고, 냉소적 정서를 바탕으로 움직인 권력은 정치적 리스크를 줄이는 데에만 급급해 무능과 실패를 반복했다. 초유의 사태인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 또한 이러한 정치적 배경에서 탄생했다. 사회평론가인 저자 김민하는 신간 ‘냉소사회’를 통해 총체적 난국에 빠진 한국 사회와 정치 상황의 원인을 분석한다.

저자는 냉소주의의 근원을 ‘열등감’에서 찾는다. 다수의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사회에서는 필연적으로 잘난 사람과 그만큼 잘나지 못한 사람이 나뉘기 마련이다. 무한경쟁 사회에서 이러한 우열은 점차 극단화됐고, 인터넷의 발달은 열등감을 일상화시켰다.

열등감이 팽배한 사회 속에서는 나의 합리성과 열등하지 않음을 끊임없이 증명해야 하는데, 이는 결국 ‘속지 않겠다’는 냉소적 결의로 가득 차게 만든다. 선거에서 일정한 노선이나 이념에 따라 투표하지 않고, 나에게 가장 많은 이득을 줄 후보를 찍는 것이 그러한 예다.

‘손해보지 않겠다’ ‘책임지지 않겠다'는 냉소의식에서 비롯된 ‘효율성 제일주의’는 결국 세월호 참사라는 비극을 빚어냈다. 세월호는 더 많은 이윤을 남기기 위해 배의 안정성을 희생하는 방식으로 운영됐다. 게다가 사고 수습과정에서 또 다른 차원의 효율성이 작용하기도 했다. 바로 ‘인명 구조의 외주화’이다. 즉, 국가가 비용을 줄이기 위해 인명 구조 업무를 외부 업체에 맡김으로써 국가의 기본적 권리이자 의무를 스스로 포기한 것이다.

한국을 물들인 냉소주의는 비단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다. 2016년 세계를 놀라게 한 두 가지 사건, ‘브렉시트’와 ‘미국 대선 트럼프의 승리’ 또한 냉소주의에서 비롯된 결과다. 유권자들은 더 이상 기존의 좌우관념에 따라 투표하지 않는다. 자신의 이익과 효율성이 가장 우선시된다.

저자는 신간을 통해 냉소주의, 열등의식, 소비주의라는 세 가지 차원에서의 화해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화해를 통해 정치적 냉소주의를 무력화할 때, 현재 우리가 직면한 문제를 비로소 풀어낼 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