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명사진, 반명함판 사진 5분 완성'이란 간판을 내걸고 경쟁했던 동네 사진관들이 사라진 자리에 흑백 필름 사진 단 한 장을 찍어주는 사진관들이 들어서고 있다.

서울 종로구 계동 '물나무사진관', 서대문구 연희동 '연희동사진관'이 대표적이다. "결혼 1주년을 맞아 남편이랑 특별한 추억을 만들고 싶었는데, 흑백 필름 사진을 찍을 수 있다고 해서 찾아왔어요. 세상에 한 장뿐인 사진이라 더욱 기억에 남을 것 같아요." 연희동 골목길, 아련한 70~80년대 동네 사진관처럼 꾸민 '연희동 사진관'을 찾은 이영주(33)씨 말이다. 두 달 전 이곳에서 결혼 사진을 찍은 박진영(36)씨는 "억지로 꾸미고 웃는 기백만원 웨딩 사진보다 소박하지만 우리다운 사진을 찍어서 신혼집에 두고 싶었다"며 "비용도 줄인 데다 느낌이 아주 근사한 사진이 됐다"고 했다. 만난 지 100일을 맞아 기념사진을 찍으러 오는 풋풋한 대학생 짝, 태어날 아이를 기다리며 만삭 사진을 찍으러 온 부부, 부모님 모시고 가족사진 찍으러 온 사람들까지 다양한 사연을 가진 이들이 이곳 문을 두드린다.

아날로그 감성 가득한 흑백 필름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연희동 사진관(위)과 최근 출시된 후지필름의 즉석사진기용 흑백 필름.

지난해 봄 문을 열었다. "처음엔 연희동 주민들이 가족사진이나 기념사진을 찍으러 오는 동네 사진관이었어요. 흑백 필름 사진을 찍을 수 있다고 알려지면서 요즘은 멀리서 찾아오는 분이 더 많아졌지요." 김규현(30) 대표는 오히려 나이 든 사람보다 필름 사진은 물론 흑백 사진의 추억과 거리가 먼 20~30대 발길이 잦다고 했다. "생소하기도 하고 디지털 사진과는 느낌이 다르다 보니 20~30대에겐 더 특별하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소박한 아날로그 감성이 먹힌다고 할까요."

이곳에선 흑백 폴라로이드 사진과 흑백 필름 사진을 찍을 수 있다. 흑백 폴라로이드 사진은 단종된 흑백 폴라로이드 필름으로 촬영하는 즉석 사진. 촬영 후 30초~1분 만에 사진을 받을 수 있다. 흑백 필름 사진은 총 12컷을 촬영한 뒤 암실에서 필름을 인화하는 방식인데 디지털 사진처럼 포토샵으로 몸을 늘씬하게 만들거나 얼굴을 갸름하게 하는 등 보정 작업은 전혀 할 수 없는데도 인기다. 대학생 최규은(26)씨는 "사진을 매일 찍다시피 했는데도 흑백 필름으로 찍은 사진 속 제 모습은 좀 달랐어요. 물론 좀 뚱뚱해보이고 키도 작아 보이지만 오히려 자연스러운 제 표정과 저다운 모습이 담긴 따뜻한 사진이었죠."

필름과 흑백 사진, 사진 한 장에 대한 관심은 시장에서도 확인된다. G마켓에 따르면 최근 한 달 동안 카메라 판매량에서 DSLR(-7%), 똑딱이카메라(-8%), 미러리스카메라(-12%) 같은 디지털카메라 판매량은 감소한 데 반해 즉석카메라는 2%, 일회용 카메라는 55%로 필름카메라 판매량은 증가했다. 아날로그 취향에 맞춘 제품 출시도 이어지고 있다. 라이카는 즉석카메라 '라이카 소포트'를 출시했다. 자동 모드를 비롯해 파티·피플 모드, 스포츠·액션 모드, 마크로 모드 등 다양한 촬영 모드를 지원하고 다중 촬영, 장노출, 초점 거리 기능을 갖췄다. '셀카족'의 편리한 셀프 촬영을 위해 전방에 직사각형 거울을 단 것도 특징이다. 후지필름도 지난 10월 즉석 사진기를 위한 흑백 필름 '인스탁스 미니 필름 모노크롬'(1팩 1만4000원)을 출시했다. 한국 후지필름 관계자는 "컬러가 흔한 시대에 독특한 개성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사랑받는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