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육목 족제빗과의 포유류. 이 해달은 숲에 산다. 수영을 잘 못하고, 맥없이 굼뜨며, 생존에 필요한 모든 능력이 부진하다. 일본 열도에 서식하다 15년 만에 국내 상륙한 이 해달이 그러나 인류를 들썩이게 한다. "녀석은 전혀 주인공답지 않죠. 느긋하고 답답하지만 그래서 사랑받는 게 아닐까요?" 1986년 네 컷 만화로 시작해 일본 내 단행본 판매 부수 1000만부를 넘긴 '아기해달 보노보노'의 원작자 이가라시 미키오(61·사진)와 이메일로 만났다. '보노보노'는 연재 30주년을 맞아 8분짜리 만화영화로 제작됐고, 지난달 29일 국내 TV 방영을 시작했다.

그는 보노보노였던 적이 있다. 백수. 고등학교 중퇴 후 인쇄소 등을 전전하다 1979년 만화잡지 '천재클럽'을 통해 꿈꾸던 만화가가 됐지만,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쉼 없이 그려내다 보니 1일 2회 마감까지 몰렸죠. 도저히 스케줄을 소화할 수가 없었어요." 2년간 펜을 놨다. 생활비가 거의 바닥났을 무렵, TV에서 해달 한 마리를 보게 된 것이다. "조개를 배 위에 올려두고 돌멩이로 깨서 먹는 모습에 반해버렸다"고 했다. "곧장 집 근처 수족관으로 가서 해달의 실물을 확인했고, 또 한 번 반해버렸죠. 집으로 돌아가 팩스 용지에 해달을 그려 출판사에 보냈어요. 편집자가 '만화를 해보자'고 하더군요." 그게 시작이었다.

보노보노(오른쪽)와 그의 친구 포로리. 미키오는 이 만화의 트레이드 마크인 보노보노의 땀방울에 대해 “‘정말 큰일 났다’의 상태를 표현한 것”이라고 했다.

보노보노는 느리고 수동적이며 때로 아둔해 보이기까지 한다. 미키오는 그가 희망하는 이상적 상태를 그림으로 옮긴 것이다. "숲속 친구들은 이런 보노보노를 답답해하면서도 기꺼이 돕죠. 도우면서 같이 노는 거죠." 그림체는 유아적이며 수채화풍의 따뜻한 색채는 동화를 연상케 한다. 보노보노가 너부리(너구리), 포로리(다람쥐)와 뛰노는 안일한 장면을 넋 놓고 보다가 기습적으로 툭 던져지는 대사와 맞닥뜨릴 때, 독자는 비로소 이 만화가 어른을 위한 동화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너부리야, 폭포가 왜 대단하냐고 생각하냐면 폭포는 내가 잠잘 때도 떨어지고 포로리와 놀 때도 떨어지고 계속 떨어지기 때문이야." 너부리가 묻는다. "그럼 안 보일 때는 폭포가 쉰다고 생각한 거냐?" "응. 내가 안 볼 때는 폭포도 쉬는 줄 알았어."

30년간 쉬지 않고 이어지면서, 독자층은 노인부터 유아까지 넓어졌다. 보노보노의 친구들이 대(代)를 잇는 것이다. "요새 보노보노의 신생아 시절이 담긴 만화 '보노짱'을 그리고 있어요. 아빠의 눈물겨운 육아 일기죠. 영화식으로 말하자면 '보노짱'은 '보노보노―에피소드1'쯤 되겠네요." 그는 늙어가고 있지만 "나는 스스로 어른이라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다"고 했다. "작가가 어떤 식으로 살아왔는지가 만화를 결정합니다. 나머지는 책상 앞에 앉았을 때의 영감일 뿐이고요." 보노보노가 세상을 향해 던지는 맑은 대사는 명언집으로 묶여 인터넷을 달궜고, 최근 일본에서 책으로도 출간됐다. 그는 "제일 좋아하는 단어는 '일기일회(一期一會)'"라고 했다. 평생 단 한 번의 만남. 그것이 그의 인생을 바꿨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