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게이트 국정조사 청문회의 하이라이트는 본래 오늘이었다. 사건 주연 격인 최순실씨와 그 일가,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증인으로 나오기로 된 날이니 말이다. 그런데 대부분 출석을 기피해 '최순실 없는 최순실 청문회' '맹탕 청문회'가 될 판이다. 최씨 일가는 건강 문제를 들어 불출석 사유서를 냈고 우 전 수석은 '행방불명' 상태다. 국회가 동행명령장을 발부하겠다고 하지만 이 역시 당사자들이 '그냥 처벌받고 안 나가겠다'고 버티면 강제할 방법이 없다.

▶어떤 의미에선 피해자라 할 수 있는 기업 총수들은 어제 TV로 생중계된 국회 청문회에 줄줄이 불려나가 하루 종일 곤욕을 치렀다. 팔 비틀린 기업인들은 청문회장에 나가고 정작 비튼 쪽은 쏙 빠진 이 희한한 상황을 어느 국민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 기업에선 "조폭 수사하는데 돈 뜯긴 상인만 터지는 꼴"이란 볼멘소리가 나온다니 충분히 그럴 법도 하다.

▶최씨의 버티기도 문제지만 빠져나가기의 압권은 우 전 수석이다. 그와 가족이 아예 집을 비워 국회는 출석요구서조차 전달하지 못했다. 국회 직원들이 집을 찾아갔지만 허탕을 쳤고 나중에 보낸 등기우편도 '송달 불능'으로 처리됐다고 한다. 집을 찾았던 국회 직원은 "개 짖는 소리만 들렸다"고 했다. 현행법에는 출석 요구일 7일 전까지 출석요구서를 직접 받지 않으면 청문회에 나오지 않아도 처벌받지 않게 돼 있다. 검사 출신으로 법률 전문가인 우 전 수석이 그 허점을 노리고 가족과 함께 단체로 집을 비웠을 것이다. 잘난 법률 지식으로 법치(法治)를 농락한 셈이다.

▶우 전 수석에겐 동행명령장 발부도 별 소용이 없다. 정당한 이유 없이 청문회에 불출석하면 3년 이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 벌금형이지만, 동행명령장을 받고도 청문회에 나오지 않으면 국회 모욕죄가 적용돼 처벌이 더 무겁다. 5년 이하 징역형이다. 그러나 동행명령장은 당사자를 직접 만나서 건네야 법률적 효력이 있다. 가족이나 동거인에게만 건네도 효력이 인정되는 출석요구서와는 다르다. 결국 우 전 수석에게 동행명령장을 발부한다 해도 그가 직접 받지 않는 한 효력은 없어지고, 그는 어떤 처벌도 받지 않고 피해갈 수 있다. 우 전 수석은 아마 이것도 계산에 넣었을 것이다.

▶우 전 수석은 한때 법 집행을 맡았던 고위 공직자였다. 그도 공권력을 휘두를 땐 법과 원칙을 강조했을 것이다. 그래 놓고 청문회와 수사 대상이 되자 교묘하게 법망을 빠져나가려 한다. 그런 그를 두고 어느 네티즌은 '법률 미꾸라지'라고 했다. 그 말에 이의를 달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