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껏 환경보호 위해 비닐 분리수거하자더니 왜 이제 와 딴말인가요?"

서울의 각 구청 청소행정과 직원들은 요즘 몇 달째 "폐비닐 전용 봉투를 어디 가야 찾을 수 있느냐"고 묻는 단독주택 주민들의 문의 전화를 받고 있다.

폐비닐 전용 봉투는 커피믹스, 과자 봉지, 한약 팩, 1회용 비닐봉지 등 비닐 쓰레기를 따로 모아 버리는 전용 봉투다. 일반 종량제 봉투와 달리 흰색 바탕에 '폐비닐전용봉투'라고 적혀 있다. '폐비닐도 모이면 소중한 자원이 됩니다'는 문구도 있다. 서울시는 '비닐 쓰레기를 분리수거해 쓰레기양을 줄이겠다'는 취지로 작년 4월 폐비닐 전용 봉투를 특별 제작해 서울 시내 단독주택 180만가구에 무료 배포하는 시범 사업을 벌였다. 아파트는 단지별로 비닐을 포함해 재활용 쓰레기를 종류별로 모으는데, 단독주택은 분리수거가 쉽지 않기 때문이었다.

서울시는 예산 8억여원을 들여 의욕적으로 이 사업을 시작했다. 쓰레기봉투 속엔 재활용 가능한 비닐류·종이류가 60%나 섞여 있어 제대로 분리 배출만 해도 쓰레기를 상당 부분 줄일 수 있다고 예상했다. 비닐 쓰레기를 그대로 태우거나 매립하면 환경오염을 일으키지만 분리수거를 하면 환경보호 효과도 있다고 홍보했다.

하지만 서울시는 시범 사업을 시작한 지 7개월 만에 별다른 공지 없이 폐비닐 전용 봉투 지급을 중단했다. 한 구청 관계자는 "작년에 단독주택 한 가구당 20L짜리 봉투 9~10장이 지급됐는데, 사업이 중단된 사실을 모르는 주민들이 봉투가 떨어지자 '왜 봉투를 구할 수 없느냐'고 항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도 '폐비닐 전용 봉투를 어디서 구해야 하나'는 질문이 속속 올라왔다. 봉투가 더 이상 지급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모르는 주민들이 작년에 받은 봉투를 다 쓴 뒤 이곳저곳에 문의하는 것이다. 각 구청 관계자들은 이런 문의 전화가 오면 "더 이상 폐비닐 전용 봉투를 제공하지 않으니 비닐을 안의 내용물이 보이는 봉투에 담아서 배출하면 된다"고 안내하고 있다.

폐비닐 전용 봉투 제도엔 뜻밖의 부작용도 있었다. 비닐 쓰레기는 물기 등 내용물을 깨끗하게 제거한 다음 분리 배출해야 재활용할 수 있다. 하지만 막상 폐비닐 전용 봉투 안에 비닐 외에 과자나 음식 쓰레기 등 각종 이물질이 함께 나오는 경우가 많았다. 또 공짜로 얻은 폐비닐 전용 봉투를 일반 종량제 봉투(유료) 대신 쓰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강북구청 관계자는 "우리 구에서 배급한 10L짜리 폐비닐 전용 봉투는 화장실 쓰레기통에 딱 맞는 사이즈였다. 그래선지 주민이 화장실 쓰레기를 담아 버리는 경우가 허다했다"고 말했다.

결국 서울시는 작년 말 시범 사업을 중단했다. 시 기후환경본부 자원순환과 관계자는 "폐비닐 전용 봉투를 악용하는 일부 주민 때문에 비닐 쓰레기 분리수거가 사실상 무의미해졌다"고 말했다. 시는 지난 9월부터 하루 기준 300㎏ 이상 쓰레기가 나오는 사업장에만 120L짜리 폐비닐 전용 봉투를 무료로 주고 있다.

'자치구들이 이 사업의 취지를 주민에게 미리 충분히 알렸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건국대 사회환경시스템공학과 박기영 교수는 "강제성이 없고, 시민의 자발적인 참여가 필요한 정책을 시행하려면 사전에 정책 타당성 분석, 충분한 홍보 교육을 해야 한다"며 "서울시가 작년부터 '쓰레기와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정책을 남발하다 보니 일선에서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는 얘기가 나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