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헌

탄핵 정국을 주역의 64괘로 환산하면 어떤 괘가 해당될까? 공부를 했으면 현실에 적용을 해봐야 할 거 아닌가. 못 하면 책상물림이 된다. 눈앞에서 100만명이 넘는 인파가 촛불을 들고 집회하는 현장이야말로 단군 이래 처음 맞이하는 신화적(神話的)인 상황이다.

공부의 요체는 대관세찰(大觀細察)이다. 복잡한 상황을 단순화시켜서 볼 수 있는 능력이 대관(大觀)이고, 단순한 사실을 세밀하게 뜯어보고 추론해 내는 능력이 세찰(細察)이다. 주역 공부는 대관능력(大觀能力) 양성에 그 주특기가 있는 것 같다. 현 상황은 주역의 50번째 괘인 화풍정(火風鼎) 괘로 보인다. 위에는 불이 활활 타고 있고, 아래에서는 바람이 불고 있는데, 여기에다가 솥단지를 올려놓은 형국이다. 정(鼎)은 다리가 3개인 솥단지를 가리킨다. 솥단지에다 뭘 넣어 놓고 밑에서는 장작불로 열심히 불을 때는 상황인 것이다.

동양의 고대사회에서는 새 시대가 오면 새 솥단지를 걸었다. 이제까지 쓰던 낡은 솥단지는 폐기 처분한다. 솥은 새 시대의 도래를 알리는 상징이다. 새 솥단지에다 끓인 음식을 하늘에 제사 지낸 다음에 그 제수 음식은 백성이 나누어 먹는다. 새 시대의 도래를 축하하기 위해서는 음식을 나누어 먹어야 한다. 먹어야 기쁨이 오기 때문이다. 백만 명이 넘는 인파가 장작을 가져와 불을 때는 이 솥단지는 그 크기가 얼마나 되는 솥단지일까! 지름이 100m도 넘는 거대한 황금 솥단지가 아닐까.

그리고 이 역사적인 대정(大鼎)에 담긴 내용물(음식)은 무엇일까. 음식은 민주주의라고 생각한다. 서양에서 수입한 민주주의(Democracy)라는 황소는 그동안 털도 안 뽑히고 설익은 채로 있다가 이번에 장작불로 솥단지에 완전히 고아서 먹기 좋게 보들보들한 도가니탕으로 변할 것이다. 한국에서 제조된 이 민주주의라는 탕(湯)은 선진국인 일본에서도 그 맛을 낼 수 없고, 대국인 중국에서는 아예 조리법이 없는 요리라고 생각한다. 일본이 19세기 이래로 탈아입구(脫亞入歐)를 모토로 삼았는데, 민주주의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한국이 탄핵 정국을 계기로 일본보다 먼저 탈아입구 되지 않나 싶다. 화풍정 괘는 한국이 '거듭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3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 일대에서 열린 제6차 민중총궐기에 참가한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