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비상대기체제 돌입…"국민 목소리 무겁게 듣겠다"]

첫눈이 내린 26일 오후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는 5차 촛불집회가 열렸다. 추운 날씨 탓에 참가자가 줄지 않겠느냐는 예상과 달리 150만명(주최 측 추산·경찰 추산 27만명)이 모였다. 전국적으로는 190만명이 모여 역대 최대 규모 집회·시위였다고 한다. 청와대 앞 200m까지 행진이 허용돼 자칫 흥분한 시위꾼이 끼면 폭력이나 예상치 못한 사고가 발생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집회 참가자들은 끝까지 자제했다. 시위 연행자와 경찰 부상자가 한 명도 없었다.

최순실 사태로 5주째 이어진 주말 대규모 집회 전부가 이렇게 놀랄 만큼 평화적이었다. 26일 서울 도심 집회에서도 대다수 시민은 구호를 크게 외쳤지만 폭력은 거부했다. 일부 과격 시위꾼이 경찰을 때리려 하면 "평화 시위" "비폭력"을 외쳤다. 학생들은 집회 현장에 '쓰레기 주세요'라는 종이를 들고 서 있었다. 의경에게 다가가 "아들 같다"며 포옹해주는 중년도 있었다.

150만명이 광장에 모이면 폭력이 아니더라도 불의의 대형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 이날도 광화문광장 주변과 통의동 로터리 등에서 인파가 밀고 밀리는 상황이었지만 그때마다 시민들은 "질서"를 외쳤다. 세계는 지금 최순실 국정 농단에 어이없어하면서도 이 대규모 평화시위만큼은 경외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매우 평화로웠고 축제 같았다"고 전했다. 영국 BBC는 "대규모 집회에서 폭력이 한 건도 보고되지 않았다"고 했다.

상상도 못했던 국정 농단 사태에 국민은 분노했지만, 어느 때보다 성숙하고 절제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5 차례 집회에서 나타난 시민들의 불의에 대한 거부, 그러나 절제된 분노, 양식 있는 행동이 최순실 사태로 암흑이 된 대한민국을 다시 밝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