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주류 프리미엄: 비주류가 각광받는 시대

'비주류(非主流)'라고 하면 대세를 이루는 큰 흐름, 즉 주류(主流)에 반대되는 개념으로 '중심에서 벗어난 갈래'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비주류가 각광받는 시대다. 대중은 기득권과 주류층에 저항하는 비주류를 쿨(cool)하고 우월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주류층의 기득권이 클수록 비주류가 돋보이고, 비주류인 것이 '콤플렉스'가 아니라 '프리미엄'으로 작용하는 시대다.

[[트렌드 읽기] '비주류 문화'의 부상(浮上)]

비주류 출신 스티브 잡스의 비주류 철학

영원한 비주류였던 애플(Apple)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Steve Jobs | Steven Paul Jobs · 1955~2011)가 세계적인 IT 거장으로 거듭나기까지의 스토리는 유명하다.

미혼모의 아들로 태어난 뒤 입양, 가난, 대학 중퇴와 애플 창업, 세계 최초 개인용 컴퓨터(PC) 개발, 애플로부터 축출된 뒤 복귀와 재기, 희소 암 발병과 투병, 아이폰·아이패드 출시를 통한 디지털 시대 새 라이프 스타일 창조… 일생이 드라마의 상상력도 따라잡기 힘들 정도로 극적이었던 그는, 처음부터 비주류의 삶을 살아왔다.

[현대인의 삶을 바꾼 IT 거인의 56년]

[▶ [스티브 잡스, 세상을 바꾼 남자] 기사 모아보기]

애플 창업자로서의 경영 방침에서도 그의 비주류 스타일이 잘 묻어난다. 그는 애플의 구성원에게 '해군'이 아닌 '해적'처럼 행동하라 말하는 사람이었다. 그의 나이 42세였던 1997년, 직접 참여해 내놓은 기념비적인 애플 광고가 있다. 아래, "Here's to the crazy ones(미친 자들에게 축배를)"로 시작되는 1분짜리 이 TV 광고는 뒤이어 '부적응자들, 반항아들, 사고뭉치들, 구멍에 박힌 둥근 말뚝 같은 사람들. 그들이 세상을 바꿉니다"라고 말한다.
잡스는 '반항아' 전략으로 시대의 거인이었던 'IBM'을 침몰시켰다. 비주류였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주류가 된 것이다.

▼ 애플의 1997년 광고 'Think Different(다르게 생각하라)'

비주류 전략(2등 전략)으로 성공한 사례

"저희는 '업계 2위' 렌터카 브랜드입니다.
그래서 저희는 더욱 열심히 일합니다."

1963년 초 미국, 에이비스 임직원들은 2~3%대에서 올라갈 기미를 보이지 않는 시장 점유율에 큰 고민에 빠졌다. 전년도 적자는 무려 125만 달러. 1952년 창업 이래 누적 적자는 천문학적 액수에 달했다. 경쟁사 허츠(Hertz)는 70%를 넘나드는 점유율 '철옹성'을 쌓고 있었다. 2위라는 개념을 무색하게 할 만큼의 압도적 기세였다. 이기고 싶다는 열망은 에이비스 내에 가득했지만, 전략은 텅 비어있었다.

2등 전략을 펼친 에이비스의 지면 광고

"왜 꼭 이겨야 하죠?" 에이비스의 고민을 경청하던 한 광고회사 관계자의 물음이었다. "지금 우리는 허츠를 이기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서비스 파워 향상과 같은 1등을 따라잡기 위한 대 소비자 정책들이 거기에 담겨 있잖아요. 그 숱한 땀방울들을 가감 없이 그대로 보여주면 소비자들이 감동하지 않을까요. 진심은 항상 통하게 마련이니까요."

이후, 에이비스는 특별한 광고를 내보냈다. 'AVIS is only No.2 in rent a cars. So why go with us?' (에이비스는 2등에 불과합니다. 그런데도 소비자들이 우리를 찾는 이유는?), 'We are number two. Therefore, we work harder' (우리는 2등입니다. 그래서 더 열심히 일합니다) 호소는 소비자들에게 그대로 통했고, 무너지지 않을 것 같았던 허츠의 시장 점유율은 1966년 45%대까지 급락했다. 당시 일부 허츠 직원들 사이에서는 에이비스를 응원하는 분위기도 있었다고 한다. 사실상 '동정론’에 가까웠을지 모르나 경쟁사의 경계심을 허물어뜨리는 결과와 함께, 소비자들의 마음도 얻었다.

['비교'는 해도 '비방'은 하지 마라]

[현란한 마케팅보다 진심 담긴 '레알 마케팅' 뜬다]

언더아머는 창업 20년도 안 돼 미국 2위로 성장한 스포츠 브랜드다. 언더아머의 성공 비결 중 하나가 '안티 나이키' 마케팅이다. 나이키는 마이클 조던 같은 최고 스타를 광고모델로 기용해 '강함'을 내세웠던 반면, 언더아머는 1등이 아닌 도전자의 열정을 내세우는 비주류 광고 전략으로 젊은 소비자들 호응을 얻어냈다.

대한생명: 2등은 시끄럽다, 왜? 1등인 고객을 위해

대한생명의 2등 광고 당시, 생명보험 시장의 1위 기업 삼성생명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쉽게 인식하는 반면, 사람들은 2등에는 큰 관심을 두지 않았고 2등 업체가 어디인지 확인하기도 쉽지 않았다.

이에 대한생명은 자신들 스스로 2위 업체라고 포지셔닝해서 사람들에게 인지시켰고, 1등 기업보다 열정적이고 더 열심히 노력해서 고객에게 만족을 주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이런 전략으로 사람들의 감성을 이끌어내 많은 공감을 얻었다.

오뚜기 진라면: 2등이라도 괜찮아, 맛있으니까!

오뚜기 진라면의 경우, 광고 속 배우가 "이렇게 맛있으면 언젠가는 1등이 되지 않겠어"라고 말하는 진정성 있는 광고 전략을 펼쳤다. 라면 업계 1위를 지켜온 농심에 대항한 광고로 농심이 업체 1위임을 인정하지만, 자신들의 '맛'에 있어서는 1위 업체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만큼 뛰어나다는 자신감을 드러냈다.

인정할 것은 인정하는 쿨함과 함께, 자신들의 자신감을 그대로 드러낸 이 광고는 친근감으로 소비자들과의 거리를 좁혔고, 맛있는 라면이라는 이미지를 각인하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스스로를 열세로 포지셔닝할 때 빛을 발한다'
언더독 우위 이론

기업들의 위와 같은 성공의 비결은 '언더독(약자)' 전략으로 정리된다. 스스로를 강자 밑에 깔린 언더독으로 포지셔닝해 챔피언에 맞서 열정을 불사르는 도전자 이미지로 젊은 소비자들을 사로잡았다.

2004년 미국의 기업 및 정치 컨설턴트인 데이비드 모레이(David Morey)와 스콧 밀러(Scott Miller)가 '언더독 우위' (Underdog Advantage)란 책을 발간하고 제목과 같은 이론을 제시했다. 그들은 25년간 주로 성공한 기업들에 대해 자문을 해 오면서 그들의 비결을 탐구한 결과, 규칙을 발견했다.

"그 분야의 최고의 기업은 결코 오만한 기득권자(arrogant incumbent)에 안주하지 않고 배고픈 게릴라로서 그들이 겸손할 때 항상 최고의 위치에 있었다"는 사실을 포착했다. 스스로를 열세로 포지셔닝하는 언더독 기업이 성공하는 경향이 있더라는 것이다. 기득권에 안주하지 않고 배고픈 게릴라로 끊임없이 도전하는 기업에 소비자들은 매력을 느낀다는 이론이다. 여기에 착안한 기업들이 종종 들고 나오는 것이 '2등 마케팅'이다.

선거에서도 인정받은 비주류

지난 5월, 파키스탄 이민자 가정 출신인 사디크 칸이 런던 시장이 됐다. 그는 5월 5일에 열린 영국 지방선거에서 56.8%를 득표해 집권 보수당 잭 골드스미스를 제치고 당선됐다. 무슬림 출신이 런던시장에 당선된 것은 처음이었다.

2016년 5월 7일(현지 시각) 사디크 칸 런던시장 당선자가 취임식에서 지지자들에게 감사를 표하고 있다.

버스기사 아버지와 재봉사 어머니를 둔 그는 신문 배달도 하고 공사장에서 일하기도 했던 소위 '흙수저' 출신의 비주류였다. 인권변호사로 일하다 2005년 하원에 당선돼 정계에 진출했으며, 노동당 예비내각의 교통장관·재무장관·법무장관 등을 거쳤다.

사디크 칸 시장은 취임식에서 "내가 이 자리에 설 수 있었던 건 런던이 준 기회와 도움 때문"이라며 "런던이 내게 준 그 기회를 모든 런던 시민들이 누리게 할 것"이라고 했다.

[첫 무슬림 런던시장 "대중교통 요금 4년간 동결"]

로드리고 두테르테는 지난 5월 9일 치러진 필리핀 대선에서 승리해 6월 30일 대통령에 취임했다. 대선 전부터 취임 후 현재까지, 필리핀 국민들은 '두테르테 신드롬'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그를 지지하고 있다.

'징벌자', '두테르테 해리', '필리핀의 트럼프'라 불리는 그는, 각종 막말 논란을 비롯해 대대적인 범죄자 처형을 실행하며 세계적으로 논란을 몰고 다닌다. 그의 행적에 인권단체의 반발과 세계의 우려도 크지만, 지난 7월에 조사된 필리핀 내 두테르테의 지지율은 91%나 됐다.

여성 지지자들에게 둘러싸인 '필리핀의 트럼프' -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이 당선 후 2016년 5월 15일 다바오시(市)의 한 식당에서 여성 지지자들에게 둘러싸여 휴대전화 '셀카' 촬영에 응하고 있다.

두테르테는 필리핀 중부지역 레이테에서 태어나 다바오 시(市)에서 성장했다. 그의 아버지는 1950년대 다바오 주지사를 지낸 공직자였지만 그의 학창시절은 평탄하지 않았다. 두테르테는 고등학교 시절 두 차례 퇴학을 당한 뒤 3번째 학교에서 겨우 졸업장을 받았고, 반항 기질이 강한 '문제아'로 통했다.

이후 두테르테는 필리핀 산베다대학 법대를 졸업하고 변호사 시험에 합격한 뒤, 1970년대 후반∼1980년 중반 다바오시 지방검사로 활약하며 강력 범죄 소탕에 나서기 시작했다. 그는 1988년 다바오 시장(市長)에 처음 당선된 후, 도중 하원의원 시절을 빼고 22년간 시장직을 맡으며 범죄가 만연했던 다바오 시를 필리핀에서 가장 안전한 도시로 탈바꿈시켜 주목받았다.

['아이콘'으로 떠오른 두테르테가 통하는 나라]

지난 11월 9일(한국 시각) 열린 미국 제45대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 후보를 꺾고 당선됐다. 클린턴은 미국 정계의 전형적인 주류였고, 많은 이들이 그의 승리를 예상했다.

이단아에서 대통령으로 - 성공한 사업가 출신으로 정치에선 완벽한 '아웃사이더'였던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선 후보가 제45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됐다. 트럼프 당선인은 뉴욕의 힐튼 미드타운호텔에서 열린 승리 연설에서 "미국을 재건하고 모든 미국인이 꿈을 이룰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변화와 모험을 택한 많은 미국인들은 정치 경력이라곤 없는 정계 비주류였던 트럼프를 밀었다. 미국 역사상 첫 여성 대통령을 꿈꾸던 클린턴은 기득권 정치에 대한 반감과 여성 대통령에 대한 거부감, 부패 이미지의 한계를 넘지 못하고 패했다.

트럼프 승리의 주역은 분노한 저학력·블루칼라 등의 비주류 백인들이었다. 히스패닉과 흑인 등 소수 인종이 증가하면서 주류 사회에서 밀려나는 데 대한 분노, 세계화와 디지털화에 뒤처진 데 대한 불만이 확산하면서 이들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고 외친 트럼프를 선택했다.

[미국 제 45대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가 걸어온 길 ]

[앵그리 화이트, 미국을 뒤엎다]

주류의 판에 박힌 행보보다 비주류의 도전이 더 신선하게 작용하고 응원받을 때가 있다. 주류였던 것들이 밀려나거나, 주류와 비주류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현상은 문화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 등 여러 방면에서 진행 중이며, 이런 성향을 이용한 마케팅 전략의 예 또한 많이 볼 수 있다. 약한 비주류인 것이 핸디캡이 아니라 성공의 조건이 되기도 하는 사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