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리(1926~2008) 작가가 25년에 걸쳐 집필한 대하소설 '토지'를 일본어로 번역 출판했다. 전 20권에 달하는 대작 가운데 이제 겨우 1, 2권이 나온 데 불과하지만, 시작이 반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완성된 번역본을 들고, 일본에서 독자들 30여명과 함께 통영의 박경리 선생 묘소를 21일 찾았다. 매달 한 번 모여 한국의 소설을 읽는 모임의 멤버들, '토지'를 펴낸 출판사 쿠온의 독자들, 한국어를 배우는 사람들, 한국의 역사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 이 '문학 기행'에 참가했다. 매년 일본의 독자들과 함께 이렇게 한국으로 문학 기행을 오지만, 올해는 공지를 낸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정원이 가득 찼다. 드라마보다 재미있는 소설 '토지'의 문학 기행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토지'는 구한말 1897년의 추석날에 이야기가 시작되어 1945년 8월 15일 해방이 되던 날에 끝이 나는 대하소설. 출생의 비밀이 있고, 로맨스가 있고, 복수가 숨어 있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일반 서민들이 아주 많이 등장하여 자신들의 이야기를 펼친다. 도쿄의 독서 모임 '토지독서단'에서 이야기하려고 등장인물 배치도를 만들었더니 마치 수사극의 한 장면에 나오는 용의자 관계도 같았다. 1, 2권인데도 이 정도니, 20권의 관계도는 어떨까. 대하소설을 읽는 재미다.
'토지'를 들고 박경리 선생님 묘소에 올라가 절도 하고 번역을 한 시미즈 지사코씨가 일본어로 낭독도 해 드렸다. 1987년 선생을 만나 직접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는 문예평론가 가와무라 미나토씨가 모두에게 그때의 이야기를 들려 주기도 했다.
한 권의 소설이 각자의 입장에서 과거를 불러일으키고, 또 앞으로 뚜벅뚜벅 나아가게 하고, 이웃 나라의 어떤 작은 지방 도시를 찾게 하고, 또 거기서 사람을 만나고 사랑이 싹트고. 내가 소설에 빠져 사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 같다.
나는 토지 전 20권을 7년에 걸쳐 모두 일본어로 번역하여 낼 계획이다. 다 만들어지면 다시 선생님의 묘소에 20권을 늘어놓고 자랑을 하러 오고 싶다. 시작이 반인데 이미 반을 다 한 셈이니 틀림없이 가능하리라고 생각한다. 한국에 계시는 여러분도 모쪼록 응원해 주시기를.
한 사람 한 사람의 '토지'
저희 쿠온출판사는 이번에 박경리 선생이 25년에 걸쳐 집필한 대하소설 '토지'를 일본어로 번역출판했습니다. '토지'를 일본에서 내보겠다 마음먹은 지 3년만의 일입니다. 전 20권에 달하는 대작 가운데 이제 겨우 1·2권이 나온 데 불과하지만, 시작이 반이지요.
완성된 번역본을 들고, 일본에서 독자들 30여명과 함께 박경리 선생의 묘소를 찾아왔습니다. 문학기행으로 통영을 찾은 것인데요. 매달 한번 모여 한국의 소설을 읽는 모임의 멤버들, 쿠온의 독자들, 한국어를 배우는 사람들, 한국의 역사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 이번 문학기행에 참가하신 분들입니다. 저희는 매년 일본의 독자들과 함께 이렇게 한국에 문학기행을 하고 있습니다만 올해는 공지를 낸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정원이 가득 찼습니다.
통영은 일본에서도 개인 여행자들에게 서서히 알려지며 인기를 얻고 있는 지역 중 하나입니다. 작고 깨끗한 골목길, 온 동네가 스케치북에 그린 수채화처럼 산뜻한 도시라 특히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습니다. 이곳에 관심은 있었지만 선뜻 혼자 나서기가 쉽지 않았던 이들에게 쿠온이 던진 유혹은 반가운 것이었겠지요. 게다가 드라마보다 재미있는 소설 '토지'의 문학기행이니까요.
그렇습니다. 소설 '토지'는 드라마보다 더 재미있습니다. 얼마나 재미있으면 시간차를 두고 두 번이나 드라마로 만들어졌을까요. 이 드라마는 일본에서도 방영이 되었고, 특히 두 번째로 제작된 김현주 씨가 서희 역으로 등장하는 작품은 DVD로도 판매되고 있을 정도입니다.
'토지'는 구한말 1897년의 추석날에 이야기가 시작돼 1945년 8월 15일 해방이 되던 날에 끝이 나는 대하소설입니다. 출생의 비밀이 있고, 로맨스가 있고, 복수가 숨어 있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일반 서민들이 아주 많이 등장하여 자신들의 이야기를 펼칩니다. 소설 속이 어찌나 시끄러운지 모릅니다. 페이지를 넘길수록 등장인물이 점점 늘어나 아예 토지 독서노트를 만들어 이들의 이름과 특징을 적어가며 읽어야 합니다. '토지독서단'(아, 도쿄에서 제가 만든 독서모임입니다. 토지를 함께 읽으면 더 재미있지 않을까 싶어 7명이 ‘독파단’이라는 독서단을 만들었습니다)에서 이야기하려고 등장인물 배치도를 만들었더니 마치 수사극의 한 장면에 나오는 용의자 관계도처럼 되었습니다. 권 수가 늘수록 더 복잡해질테지요. 대하소설을 읽는 재미 중의 하나입니다.
열심히 만든 '토지'를 들고 와 박경리 선생님 묘소에 올라가 절도 하고 번역을 한 시미즈 치사코 씨가 일본어로 선생님께 낭독도 해 드렸습니다. 투어에 함께 참가한 문예평론가이자, 1987년 박경리 선생을 만나 직접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는 가와무라 미나토 씨가 모두에게 당시의 이야기를 들려 주었습니다. 유창하지 못한 통역사를 답답해 하다 나중에는 결국 당신이 직접 일본어로 말씀하셨다는 대목에서는 이런 보충 설명도 해 주었습니다. 식민지를 겪어낸 많은 지식인들의 아픈 한 대목이었다는. 그러고보니 제가 평소에 존경하는 최정호 선생께 토지 일본어판을 드렸더니, 1920년대생이신 그 분은 "한국어로는 여러 번 좌절했지만 일본어판이니 독파할 것 같다"고 좋아하시며 이게 다 당신에게 남은 식민지 시절의 슬픈 유산이라 하셨던 것이 생각납니다.
한 권의 소설이 각자의 입장에서 과거를 불러일으키고, 또 앞으로 뚜벅뚜벅 나아가게 하고, 이웃나라의 어떤 작은 지방 도시를 찾게하고, 또 거기서 사람을 만나고 사랑이 싹트고. 제가 소설에 빠져사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 같습니다. 최근 쿠온에서는 맨부커 수상으로 올 한해 일본에서도 화제의 인물이었던 한강 소설가의 ‘소년이 온다’를 출간했는데요, 매년 진행하는 한국 문학기행으로 내년에는 일본의 독자들과 함께 광주를 찾으려 합니다. 거기에선 또 어떤 각자의 이야기가 펼쳐질지요.
저는 토지 전 20권을 7년에 걸쳐 모두 일본어로 번역해 낼 것입니다. 다 만들어지면 다시 선생님의 묘소에 20권을 늘어놓고 자랑을 하러 오겠습니다. 시작이 반인데 이미 반을 다 한 셈이니 앞으로 수많은 등장인물들을 데리고 잘 다니도록 하겠습니다. 한국에 계시는 여러분도 모쪼록 기대해 주시고 응원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