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수'가 모든 기사에게 선망의 표적이라면 '여류 국수'는 여성 기사들의 꿈이자 최고 목표다. 윤영선·루이나이웨이·조혜연·박지은·박지연 등 당대 여성 최고수들의 '거점' 역할을 해온 여류국수전이 21회째인 올해는 전혀 새로운 조합으로 결승 3번기에 돌입한다. 오유진(18·왼쪽 사진)과 오정아(23)가 그 주인공. 여성 기사 중 단 두 명뿐인 오씨 집안싸움(?)이다.

"국내 준우승 두 번에 그쳤으니 이번엔 꼭 우승해야죠. 첫 판이 엄청 중요할 것 같아요."(오유진)

"나는 결승 진출 자체가 처음인데 물러설 수 없죠. 유진이가 강하지만 뭔가 느낌이 좋아요."(오정아)

현재 국내 여자 랭킹은 최정(20)을 필두로 오유진 김혜민 조혜연 박지은 오정아(이상 랭킹순)가 추격 중이다. 오유진은 최정에게 가려 번번이 조연에 그치다 1승 10패의 열세를 딛고 준결승서 이겼다. 그 기세가 지난주 쑤저우(蘇州)서 끝난 세계 여자 개인전(궁륭산병성배)까지 이어져 생애 첫 우승을 국제 무대서 맛보았다. 이번 결승 전망이 오유진 우세로 기우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하지만 기세를 탄 것은 오정아도 마찬가지다. 결승에 오르기까지 김신영 김은선 이슬아 등 최근 잘나가던 강자들을 모조리 꺾었다. 오유진에게는 통산 2승 7패로 뒤져 있지만 그 내용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둘 간의 마지막 공식전(올해 6월 중국 여자을조리그)서 오정아가 승리한 것. 다른 1승은 바로 1년 전 이 대회(여류국수전)서 거뒀다. 투혼이 승부를 가르는 여성 바둑의 특성을 감안하면 결과는 두고 봐야 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오유진은 입단 직전이던 2012년 세계청소년대회 선발전 때 막강한 남자 연구생들을 연파하며 대표로 뽑히는 등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기사. 현재 전남 순천시 소재 한국바둑고등학교 2년인 여고생이다. 여성적이고 조용한 성격이지만 승부에 임할 때는 매서운 투사로 표변한다.

오정아는 넓은 시야가 강점. 국제 대회에 특히 강해 제5회 황룡사배(2015년) 때 세계열강을 상대로 5연승, 한국의 우승을 주도한 적이 있다. 페어 바둑 대회서도 우승과 준우승을 한 번씩 했지만 국내 개인전 무대에선 4강 한 번이 최고 성적이어서 특히 각오가 남다르다.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 서귀포에서 살았던, 프로바둑계 단 두 명뿐인 제주 출신 중 한 명이다.

"유진이는 참 착한 동생이죠. 내게 가끔 존댓말을 섞어 하는데, 안 그랬으면 더 가까워졌을 거예요. 내 입장에선 거북한 스타일이지만 상대적으로 약해 보이는 포석을 잘 공략하면 기회가 올 거예요. 제주 동향분들의 성원 때문에라도 꼭 우승하겠습니다."(오정아)

"정아 언니는 언제나 편하게 대해주는 좋은 언니예요. 덜렁대는 나와 달리 차분한 성격을 보면서 항상 부러워요. 바둑고등학교 선생님과 친구들의 성원을 생각하며 후회가 남지 않는 바둑을 두고 싶습니다."(오유진) 국가대표 여성 상비군서 몇 년째 얼굴을 맞대고 지내다 보니 피차 미운 정 고운 정 다 든 눈치다.

여류국수전은 1인당 3시간에 1분 초읽기 5회가 주어진다. 국내 기전 중 남녀를 통틀어 가장 긴 제한 시간인데, 이 점이 누구에게 더 유리하게 작용할지 주목된다. 상금은 1200만원. 24일과 12월 9일의 1·2국에서 1대1이 될 경우 12월 13일 최종 3국에서 결판을 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