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자도 아니면서 성경 이야기 책을 쓴다는 것은 상당히 부담되고 망설여졌습니다. 그렇지만 제 전공을 활용해서 제가 재미있게 읽은 영적(靈的) 히스토리를 독자들에게 좀 쉽게 서비스해볼까 하는 생각에 용기를 냈습니다."
중앙아시아사(史) 권위자인 김호동(62) 서울대 동양사학과 교수가 최근 구약성경 이야기를 다룬 책을 냈다. '한 역사학자가 쓴 성경 이야기-구약편'(까치글방)다. 책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시작으로 야곱, 모세, 여호수아, 사울, 다윗, 솔로몬, 엘리야, 엘리사,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느헤미야까지 인물들을 중심으로 구약을 이야기체로 정리했다. 하나님이 그 이름을 부르며 선택했던 인물들이다. 이들을 중심으로 김 교수는 하나님, 인간, 역사가 빚어내는 구약의 세계를 독자들 앞에 펼쳐 보인다.
개신교나 천주교 신자들도 구약은 이해하기가 어렵다. 인명, 지명도 낯설고 당시 풍습도 친절한 설명이 없으면 난해하다. 김 교수 역시 똑같은 문제 의식을 갖고 있었다. 책 집필엔 작년 9월 안식년을 맞아 미국 프린스턴 고등연구원에서 6개월을 보내게 된 것이 결정적 계기가 됐다. 가족 없이 혼자 지낸 데다 자동차도 없어 "공부 말고는 할 게 없는 조건"이었다. 새벽에 일어나 기도하고 연구와 집필을 시작해 해질녘까지 10주 동안 집중했다. 매주 한 장(章)씩 초스피드로 집필한 셈이다.
이 책의 장점은 김 교수의 '서비스'란 표현에서 잘 드러난다. 그는 참고 서적 30여종을 비롯해 고고학적 성과를 활용해 프로파일러처럼 구약의 이야기 퍼즐 조각을 맞춰나간다. 예를 들어 성경을 읽으면서 '청동기 시대' '철기 시대'를 떠올린 독자가 얼마나 될까. 김 교수는 사울과 다윗이 등장하던 시절이 후기 청동기에서 철기 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였다고 본다. 그렇게 보면 부족국가가 왕국으로 변화되는 모습이 보인다. 모세 이후 항상 성막(聖幕) 즉 천막에 보관해오던 언약궤가 솔로몬 시대에 성전(聖殿)으로 옮겨지는 것도 시대 변화를 반영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다윗이 거인 골리앗을 쓰러뜨린 무기인 '물매'도 마찬가지다. 당시 철제 무기는 귀했던 반면 물매는 흔한 '무기'였던 것. 심지어 수백명 규모 '물매 부대'를 운용하기도 했다.
또 BC 970년 즉위한 솔로몬왕 당시 이스라엘 왕국의 1년 세입(歲入)이 요즘으로 치면 1조1000억원 규모였다는 추정도 흥미롭다. 당시 세입이 금으로 660달란트였다는 것을 근거로 '1달란트=34㎏', 금 1g에 5만원으로 계산해 얻은 값이다.
여기에 더해 지도 30장을 실어 아브라함이 어떤 루트를 거쳐 가나안으로 갔는지, 모세와 유대인들은 이집트에서 나와 어떤 경로로 가나안으로 갔는지를 한눈에 보여준다. '사사기(士師記)'의 '사사'가 중국 고전 '주례(周禮)'에 등장하는 형벌과 법령을 담당하는 관직명에서 따왔다는 점도 알려준다. 책 곳곳에서 '신앙 고백'도 감추지 않는다. 모세의 마지막을 묘사하면서 적은 "아,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같은 문장은 전공서적이었다면 생각하기 어려운 표현이다.
미국 하버드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김호동 교수는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중앙아시아 연구자다. '근대 중앙아시아의 혁명과 좌절' '동방기독교와 동서문명' 같은 책을 냈고, 영국 케임브리지대가 출간하는 '케임브리지 몽골제국사' 편집 책임을 맡고 있다. 김 교수는 책 에필로그에 "누구에게보다도 나에게 큰 은혜였다"며 "은퇴 후에는 신약성경도 같은 형식으로 써보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