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라 헬멧 무늬가 왜 서로 다르지?"
지난 주말 ISU(국제빙상연맹) 쇼트트랙 월드컵 2차대회(미국 솔트레이크시티)를 시청한 팬들은 '신기하다'는 반응을 쏟아냈다. 각국 선수들이 저마다 형형색색 화려한 무늬로 장식된 헬멧을 쓰고 등장했기 때문이다. '쇼트트랙은 모두가 같은 색 민무늬 헬멧을 쓰고 달리는 경기'라는 고정관념이 산산조각나는 순간이었다.
여자 쇼트트랙 경기에 출전한 미국의 제시카 쿠어먼의 헬멧 가운데에 미국의 국조(國鳥)인 흰머리수리가 그려져 있다. 전체 배경은 미국의 국기(國旗)인 성조기 무늬다. 헬멧만 봐도 어느 나라 선수인지 단번에 알아챌 수 있는 경우가 많다. 여자 500m에 출전한 영국의 엘리스 크리스티의 헬멧에는 영국 상징인 '유니언잭'이 새겨져 있다. 같은 종목에 출전한 판커신(중국)은 중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색깔인 금색과 빨간색 무늬로 치장된 헬멧을 쓰고 나왔다.
최민정(서현고)·심석희(한국체대) 등 한국 선수들은 흰 바탕에 대한빙상경기연맹 로고(육각형 구조 얼음 결정을 형상화한 모습)가 가운데에 그려진 헬멧을 썼다. 헬멧 양귀퉁이에는 태극 문양인 빨간색과 파란색 무늬가 조화를 이뤘다. 한국처럼 선수 전원이 똑같은 헬멧을 쓴 나라가 있는가 하면 네덜란드처럼 대부분 선수가 서로 다른 무늬의 헬멧으로 각자 개성을 뽐내기도 했다.
ISU는 지난 7월 '선수는 동일한 색깔의 커버를 헬멧에 쓰고 경기를 한다'는 기존의 규정을 폐기하고 대신 '각 선수의 취향을 헬멧 디자인에 반영할 수 있다'는 규정을 신설, 2016~2017 시즌부터 적용하고 있다. 이와 함께 트리코(쇼트트랙 유니폼)에는 각 국가의 국기 혹은 국기 색깔을 반드시 넣도록 의무화했다. 1992년 프랑스 알베르빌 올림픽에서 쇼트트랙이 정식 종목이 된 이래 24년 만의 변화다.
대한빙상경기연맹 관계자는 "쇼트트랙은 유럽·북미에서는 인기가 낮은 마이너 스포츠"라며 "시각적인 효과를 통해 관심을 유도하자는 취지로 그동안 방치해왔던 디자인 규정을 바꿨다"고 설명했다.
2018년 평창올림픽 때도 경기뿐 아니라 눈길을 사로잡는 '헬멧 디자인 전쟁'이 국내외 팬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할 전망이다. 다만 정치적 의미가 담긴 무늬 등 올림픽 정신에 위배되는 헬멧 디자인은 금지된다.
다른 변화도 있다. 국가별로 헬멧 번호가 부여되던 과거와 달리 지난 시즌부터는 세계선수권 종합성적(직전 시즌)을 기준으로 번호를 부여한다. 번호만 보면 선수의 실력을 가늠할 수 있다. 한국의 경우 2016 세계선수권에서 우승한 최민정은 1번, 13위를 차지한 심석희는 13번이다.
헬멧이 일종의 패션으로 자리 잡는 현상은 쇼트트랙이 처음은 아니다. 썰매 종목에서는 대회 때마다 미디어를 통해 헬멧 디자인과 의미가 다뤄지며 화제가 된다. 한국의 스켈레톤 국가대표 윤성빈(한국체대)은 '아이언맨'과 흡사한 헬멧을 착용해 외국팬들에게 '한국의 아이언맨'이란 별명을 얻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