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들 시선이 요즘 최순실 사건 수사가 한창인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포토라인에 쏠려 있다. 지난달 26일 여당 원내대표는 "최순실을 반드시 국민이 보는 앞에 검찰 포토라인에 세우겠다"고 했다. 사건 당사자들은 줄줄이 소환되어 검찰 포토라인을 지나갔다. 피의자나 참고인들이 검찰 조사를 받기 전에 포토라인에 서는 것이 어느덧 한 번은 거쳐야 할 과정이 되고 있다.
검찰 포토라인 공식은 대개 이렇다. 검찰청사 1층 입구에 까만 차 한 대가 도착한다. 차 문이 열리면 당사자가 계단으로 올라와 포토라인 앞까지 걸어온다. 바닥에 노란 테이프로 붙인 삼각형 위에서 두세 개 질문을 받고 민원실 입구로 들어간다. 입구까지 걸어서 10초도 안 걸리지만 엄청난 카메라 플래시 세례를 받는다. 수많은 방송용 마이크와 스마트폰이 한마디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주인공 얼굴을 둘러싼다. 어쩌면 이 시간이 그들에겐 조사받는 시간보다 더 길고 치욕스럽게 느껴질 수 있다.
그동안 포토라인 앞 사진기자들은 분주하다. 길고 짧은 줌렌즈를 부착한 카메라 두 대로 빠르게 바꿔가며 찍는다. 미세한 움직임이라도 놓치지 않으려 한다.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을 거부하는 사람들도 눈빛과 표정으로는 거짓을 숨기진 못하기 때문이다. 가끔 피의자들이 모자나 마스크를 쓰고 포토라인을 지나가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보다 더한 것은 아예 기자들을 따돌리고 지하주차장으로 들어가는 등 포토라인을 피하는 것이다. 며칠 전 대기업 회장들도 검찰 소환 때 몰래 들어갔다가 슬그머니 나왔다.
짧은 시간이지만 포토라인에서는 워낙 돌발 상황이 많기 때문에 사진기자들은 안전한 정면 자리를 선호한다. 이른 아침부터 수많은 기자가 삼각형 형태로 포토라인에 자리 잡고 소환이 예고된 인물을 기다린다. 최근엔 검찰청사 입구 유리문 위에 카메라를 미리 설치해서 리모컨으로 원격 촬영까지 한다. 축구나 농구 경기를 찍을 때 골대 뒤에 카메라를 미리 설치해두었다가 슛이 들어가는 극적인 순간을 광각으로 촬영하는 방식이다. 광각으로 찍어도 여백이 없을 만큼 최근 검찰 포토라인 주변은 기자가 많고 열기도 뜨겁다.
포토라인은 왜 생겼을까? 포토라인은 사진기자의 접근 제한선이다. 현장에 기자가 많을 때 한 발씩 뒤로 물러서서 촬영하자고 그어놓은 일종의 약속이다. 사진기자나 방송촬영기자들은 결코 포토라인을 먼저 깨지 않는다. 돌발 상황이 생길 때 포토라인은 깨진다. 시민단체의 예정에 없던 시위나 시민들의 돌출 행동이 발생할 경우, 출두한 사람을 보호하던 경찰이나 경호원이 출두한 이의 얼굴을 가리고 예정된 진로를 벗어날 때 포토라인은 무너진다. 그렇지만 돌발 상황조차 사건 당사자에 대한 시민 반응이기 때문에 사진기자들은 막을 수 없고 그 자체로 기록해야 한다.
포토라인이 정착된 계기는 1993년 1월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의 검찰 소환이었다. 당시 정 회장은 국민당 대표로 대통령 선거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불려 나왔다. 정 회장이 갑자기 나타나자 기자들이 몰려들면서 아수라장이 됐고 그 와중에 한 사진기자의 카메라 플래시가 정 회장 이마와 부딪히며 상처를 냈다. 이후 무질서한 취재 현장에 대해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며 사진기자협회와 방송카메라기자협회가 공동으로 시행 준칙을 정하고 포토라인을 설치해 질서 있게 취재하고 있다.
포토라인은 영화제 레드카펫 같은 행사장 앞에도 세워진다. 공항, 행사 무대, 기자회견장, 장례식장 등에서도 기자들이 몰리면 자연스럽게 포토라인이 설치된다. 유명 스타들이 몰리는 곳엔 기자뿐 아니라 온라인 블로거, 망원렌즈를 부착한 일명 '대포카메라'를 든 팬, 심지어 지나가던 시민까지 스마트폰을 들고 포토라인 앞으로 몰려든다. 그래서 유명 영화제나 연예인들이 몰리는 행사장 포토라인엔 기자라도 취재 비표를 받아야만 겨우 자리를 잡을 수 있다.
다시 검찰 포토라인 얘기로 돌아가 보자. 카메라 플래시가 일제히 터지고 기자들이 몰리는 전형적인 포토라인의 모습은 대부분 영화나 드라마에서 사건의 결말을 앞둔 클라이맥스 때 넣는 장면이다. 포토라인을 지나서 검찰청사 1층 민원실 입구를 통과하면 모든 게 끝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는 검찰 조사의 시작일 뿐 결코 끝이 아니다. 검찰이 국민의 기대에 부응해 제대로 수사하는지 알 수 없다. 지난 6일 본지 고운호 기자가 단독으로 촬영한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조사실 안 모습에 많은 국민이 크게 분노했다. 그날 낮 포토라인에 서서 질문하던 기자를 노려보던 우 전 수석의 행동과도 일맥상통했다.
최순실 사태가 박근혜 대통령과 검찰의 충돌로 옮아가고 있다. 대통령이 포토라인에 서게 될까. 그래야 한다는 이도, 그것만은 안된다는 이도 있을 것이다. 가슴이 답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