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지휘하던 민정수석실이 '최순실의 흔적'을 추적하다가 돌연 중단한 정황이 드러났다. "K스포츠클럽 운영을 둘러싼 출장 조사를 위해 직원 20여명이 집결했다가 출장 당일 아침에 급작스럽게 취소됐다는 지시를 받았다"는 민정수석실 내부 증언이 나온 것이다. 이 일이 있었던 5월 말 민정수석실엔 계획된 조사를 중단할 만한 특별한 현안도 없던 상황이어서 직원들이 무척 의아하게 받아들였다고 한다.
K스포츠클럽 사업은 당초 주민 체육 진흥 사업의 일환으로 출범했다. 문체부 산하 국민생활체육회가 독일과 일본을 벤치마킹해 도입했다. 클럽 1곳당 정부로부터 3년에 최대 9억원까지 예산 지원을 받을 수 있고, 올해는 작년보다 42억5000만원이 늘어난 130억원가량의 예산이 배정됐다. 2020년까지 클럽 수를 228개로 늘려 예산 1000억원을 투입한다는 계획도 있었다.
그런데 문화체육계에선 작년 말쯤부터 이 사업을 둘러싼 '이상 신호'가 잡히기 시작했다고 말하고 있다. 당초 사업의 명칭은 '종합형 스포츠클럽 사업'이었는데 문체부가 갑자기 공문을 보내 '명칭을 K스포츠클럽으로 바꾸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올해 1월 최순실씨가 대기업들로부터 288억원을 모금해 'K스포츠재단'을 만든 뒤엔 클럽이 재단 또는 최순실씨의 이권을 위해 활용되는 일들이 속속 벌어졌다. 이 재단 관계자들은 대한체육회, 문체부 직원들과 함께 지난 5월 남양주시청을 찾아가 K스포츠클럽 사업을 설명한 뒤 두 달 뒤인 7월 남양주시와 업무 협약을 맺었다. 재단의 한 관계자는 "최순실씨가 자신이 운영하던 커피숍 테스타로사를 K스포츠클럽에 입점(入店)시켜 수익을 챙기려고 했다"고 증언했다. 재단은 '지역 스포츠클럽의 예산·운영을 관리한다'는 식의 사업안도 만들었다. 최근 검찰 수사에서는 최씨의 개인 회사인 '더블루K' 사무실에서 K스포츠재단으로 '종합형 스포츠클럽 30개소 현황'이라는 제목의 문서를 보낸 사실도 드러났다.
문화체육계에 따르면 K스포츠클럽 사업을 총괄하면서 사업 확대를 추진한 사람은 김종 전 문체부 2차관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최순실·차은택씨와 함께 문화체육계 인사와 이권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인물이다. 하지만 김 전 차관이나 문체부 측은 "최순실씨가 K스포츠클럽을 주도하면서 예산 등을 빼내가려 했다는 의혹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는 입장이다.
사정 당국과 민정수석실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민정수석실은 각 지역 K스포츠클럽들의 체육시설 대관 문제를 둘러싼 잡음 외에도 클럽 운영의 투명성 문제를 점검하기 위해 조사를 계획했다고 한다. 국가 예산이 들어가는 사업의 운영 문제는 민정수석실의 '공직 감찰' 업무 영역에 속한다. 그런데도 느닷없이 중단된 배경을 놓고 민정수석실 주변에선 우 전 수석 등 청와대 고위층의 개입이 있었던 게 아니냐는 소문이 돌았다는 것이다.
비슷한 시기 민정수석실이 K스포츠클럽 문제 외에도 미르·K스포츠재단 관계자들을 내사했다는 증언과 정황이 계속 밝혀지고 있다. 재계에 따르면 미르재단이 2015년 10월 설립된 직후부터 재단에 돈을 출연한 대기업들을 중심으로 불만이 터져나왔다. K스포츠재단이 설립된 올 1월 이후에는 '재단 관계자들이 사고를 치고 다닌다' '안종범 전 수석이 기업들 발목을 비틀었다'는 말까지 돌았다. 청와대 특별감찰관실도 올해 초 이 같은 첩보를 입수해 내사를 벌였던 사실이 최근 공개됐다.
잡음이 계속되자 민정수석실도 미르재단 전 사무총장인 이성한씨, 재단 인사 등에 개입한 차은택(47) 전 창조경제추진단장 등의 비위 정보를 수집했다고 한다. 특히 이씨 측은 자신이 사무총장에서 물러난 것이 민정수석실과 무관치 않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우병우 전 수석은 '나와는 전혀 무관하다. 몰랐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법조계에선 "안 전 수석이 깊숙이 개입했고, 그토록 잡음이 많았던 사안을 민정수석이 파악하지 못했다는 건 믿기 어려운 얘기"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