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나우저종 개 다롱이(14)는 7년째 당뇨를 앓고 있다. 4년 전 합병증으로 소화 장애가 와 서울 강남 한 동물병원에서 "췌장암 환자들이 먹는 약을 하루 두 알씩 평생 먹어야 한다"는 처방을 받았다. 개 주인 지모씨는 다롱이를 위해 매달 동물병원에서 한 달 6만원어치 약을 타왔다.
그러다 지난 9월 지씨는 다롱이가 먹는 약이 한 팩(10알)당 2500원짜리 소화제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지씨는 "매달 20만~30만원 하는 검진은 생략하고 약만 타가겠다고 하니 수의사가 약을 처방해주지 않아 발을 동동 구르다 직접 약 성분을 찾아보게 됐다"며 "소화제를 먹고 다롱이가 죽을 뻔한 고비는 넘겨서 원장에게 따지지도 못하고 속만 끓였다"고 했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동물병원을 둘러싸고 진료비와 처방약 논란이 커지고 있다. 동물 주인들 사이에서는 "동물병원은 부르는 게 값" "예방접종도 서너 군데 가격을 비교해보고 맞혀야 한다" "병원비도 잘 얘기하면 깎을 수 있다"는 말이 오간다. 지난해 한국소비자원에 접수된 동물병원 관련 피해 상담은 459건이었다. 소비자원 조사에 따르면 반려동물을 기르는 사람의 약 70%가 진료비와 관련해 개선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고양이를 키우는 주부 A씨는 얼마 전 바이러스성 장염에 걸린 고양이를 동물병원에 입원시켰다가 '병원비 폭탄'을 맞았다. 밤에 갑자기 설사를 하는 고양이를 데리고 24시간 동물병원에 갔더니 입원비, 야간 진료비, 엑스레이 촬영, 피검사, 수액 등을 포함해 첫날에만 62만원이 나왔다. 이튿날에는 68만원을 결제했다. A씨는 "당장 고양이가 아프니 병원에서 하라는 검사는 모두 받을 수밖에 없었다"며 "병원비를 당일에 바로 결제하지 않자 구토 억제제를 줄 수 없다고 했다. 고양이를 볼모로 바가지를 쓴 기분이었다"고 했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 사이에서 동물병원비가 공포의 대상이 된 이유는 같은 진료라 해도 병원마다 가격이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암캐 대부분이 받는 중성화 수술 비용만 해도 20만원대부터 60만원대까지 다양하다. 동물 진료비는 병원 시설이나 처방하는 약물에 따라 자율적으로 정할 수 있기 때문에 금액이 과다하게 청구된 것 같아도 구제받기 쉽지 않다.
대한수의사협회는 "동물병원 진료비에 관해서는 공식적인 입장을 내지 않는다"며 말을 아꼈다. 익명을 요구한 수의사 B씨는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동물 진료비는 당연히 사람보다 비쌀 수밖에 없다"며 "양심적으로 가격을 정해도 손님들이 '수의사는 사기꾼'이라는 식으로 몰아가니 차라리 진료비 기준을 마련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일부에서는 지난 1999년 폐지됐던 '동물 의료 수가제'를 부활하자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조금이라도 의료비를 줄이기 위해 동물 의약품을 주로 취급하는 '동물약국'을 찾는 이들도 있다. 서울 구로구에 있는 동물약국을 이용한다는 홍모(30)씨는 "강아지 안약을 항상 병원에서 1만 5000원에 처방받아 썼는데 약국에서는 3분의 1 가격에 팔고 있었다"며 "심장사상충 약이나 구충제 같은 약이 필요할 때는 굳이 병원에 가지 않는다"고 했다.
이에 따라 보험회사에서는 최근 몇 년 새 반려동물 보험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7개월짜리 몰티즈를 기르는 C씨는 "보험료가 1년 40만원 정도로 적지 않지만 강아지가 나이 들면 병원비를 감당하기 버거울 것 같아 가입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사람은 "보험으로 보장되지 않는 항목도 있기 때문에 강아지를 입양하자마자 한 달에 3만원씩 병원비 적금을 붓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