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해범 동북아시아연구소장

도널드 트럼프는 정치인이기 전에 사업가다. 사업가는 밑지는 장사를 싫어한다. 그는 지난 4월 워싱턴 CFTNI(구 닉슨센터)에서 행한 외교정책 연설에서 "협상에선 언제든 자리를 박차고 나갈 수 있어야 한다. 당신이 협상 테이블을 떠나지 못한다는 걸 상대가 아는 순간, 협상을 이길 수 없다"고 말했다. 그가 언급한 실패한 외교 리스트엔 오바마의 이란 핵협상과 북핵 문제가 들어 있다. 이를 보면 트럼프는 외교에서도 '손해 보는 장사'를 할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인다.

선거 기간 트럼프는 '중국 때리기'를 멈추지 않았다. 지난 6월 연설에서 그는 "미국이 알카에다(9·11 테러 집단)를 격퇴하는 일보다 중국을 WTO(세계무역기구)에 가입시키는 데 더 힘을 쏟은 것은 재앙이었다. 이로 인해 미국에서 사상 최대의 일자리 도둑질이 일어났다"고 비판했다.

제45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도널드 트럼프가 9일(현지시각) 뉴욕 맨해튼의 힐튼 미드타운 호텔에서 '포용'과 '화합'을 강조하는 수락 연설을 하고 있다.

전임 지도자들이 중국과 '밑지는 협상'을 하여 값싼 중국 상품이 밀려왔고 미국 내 공장들이 문을 닫아 수많은 일자리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는 중국을 지식재산권 절도국, 위안화 환율 조작국, 무역보조금 지원국으로 규정했다. 내년 초 취임하면 중국에 새로운 무역 질서를 압박할 것임을 예고하는 발언이다.

70세의 냉혹한 사업가 트럼프가 '장사꾼 원칙'을 들이댈 상대는 제국 통치 경험이 풍부한 13억의 황제 시진핑(習近平)이다. 그는 지난 4년간 중국의 당·정·군(黨·政·軍)을 확실히 장악하고 1인 우위의 집단지도체제를 구축했다. 그의 권력은 하늘을 찌를 듯하다. 그는 2차대전 이후 미국이 만든 국제 질서를 중국 중심 질서로 바꾸려 한다. 그가 추진하는 일대일로(一帶一路) 계획은 유라시아와 중동·아프리카를 잇는 에너지·상품의 '뉴 실크로드'지만, 그 통로가 완성되면 미국은 고립될 수밖에 없다. 시진핑이 추구하는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 꿈도 트럼프의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목표와 닮았지만 두 꿈은 부딪칠 가능성이 높다. 중국이 인공섬을 건설한 남중국해에 대해 트럼프는 "중국의 모험주의를 꺾기 위해 미군을 증강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미·중의 두 '스트롱맨'이 그리는 큰 그림을 겹쳐보면, 동아시아의 장기판은 외교·군사·경제 등 모든 분야에서 요동칠 게 분명하다. 푸틴과 아베도 여기에 끼어들 것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누구?]

한국은 이 격랑에서 벗어날 수 없다. 트럼프의 '장사꾼 원칙'도 어김없이 적용될 것이다. '미국인 일자리를 뺏는다'는 한·미 FTA, '적정한 비용을 분담하지 않으면 스스로 방어해야 한다'는 주한미군 문제, '오바마가 8년간 무기력하게 바라보기만 했다'는 북핵 등 모든 게 손익 계산의 대상이다. "김정은과 만나겠다"고 한 트럼프가 '북·미 직접거래'를 성사시킬지, 협상장을 박차고 나와 강경책을 택할지, 중국을 통한 압박으로 회귀할지 아직은 알 수 없다. 확실한 것은 트럼프 시대 한·미 관계가 일방적 시혜에서 냉정한 거래로 바뀔 것이란 점뿐이다. 이 시점에서 한국 정부가 해야 할 일은 트럼프의 '실리주의 외교'와 조화를 이루는 외교·안보 전략을 마련하고 트럼프 진영과 소통을 강화하는 일이다. '장사꾼과의 거래'에선 가끔 위기가 기회로 바뀌기도 한다. 한국은 트럼프 시대를 자주적 외교·안보의 폭을 넓히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