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6일 오후.
오후 편집회의가 끝난 뒤 부장으로부터 취재지시가 떨어졌다.
"검찰 밖에서 보이는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아니라 조사실의 우병우를 찍어보라"는 지시였다.
앞서 검찰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두한 우병우 전 수석은 질문을 하는 여기자를 날카로운 눈으로 쳐다봐 언론의 지탄을 받은 터였다. 사진 부장의 판단은 이런 것이었다. "소환과정에서 보여준 우 전 수석의 고압적인 자세, 그리고 검찰의 저자세. 조사실에서는 과연 어떤 모습이 연출될지 우리가 확인해 보자"

사진부 야간 데스크가 곧바로 검찰출입 기자에게 연락, 우병우 전 수석이 조사를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조사실 층수와 호수 정보를 파악해줬다. 다음 숙제는 조사실이 잘 보이는 촬영지점을 물색하는 것. 데스크는 조사실이 가장 잘 보이는 맞은편 건물의 '지점'을 낙점해줬다.

830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맞은편 건물에 도착했다. 운좋게 옥상까지 별다른 어려움 없이 올라갔다. 기자의 무기는 캐논 1DX 카메라, 렌즈는 600mm 망원 렌즈. 여기에 2배율 텔레컨버터(화질은 떨어지지만 2배로 확대한 사진을 찍을 수 있다)를 끼우고 모노포드를 사용했다. 옥상 울타리에 렌즈를 거치한 후, 나무에 등을 기대고 '안정적' 포즈를 잡았다. 이렇게 해야 셔터를 누를 때 흔들림이 없다. 데스크가 직접 건네줬던 고배율 망원경도 틈틈히 사용해 가면서 조사실의 분위기를 살폈다. 이제 남은 것은 조사실만 하염없이 바라보는 것이었다.

밤 8시 50분.
건물 오른쪽부터 1호가 시작된다는 정보를 바탕으로 카메라 렌즈를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옮기며 겨눴다. 건물 중간에서 약간 왼쪽. 1118호만 뚫어지게 쳐다봤다. 우 전 수석 조사를 담당한 김석우 특수2부장실이었다. 그 순간 특수2부장실 바로 옆에 딸린 부속실 창에 누군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무 생각 없이 첫 셔터를 눌렀다.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깜깜했고 눈으로 식별이 불가했지만, 느낌이 왔다. 누군가 목을 뒤로 젖혀 돌리는 식으로 스트레칭을 하면서 검찰 관계자들에게 다가갔다. 그가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자 앉아 있던 두 사람이 벌떡 일어났다. 수사를 하는 사람과, 받는 사람이 바뀐 듯한 느낌이었다. 촬영된 사진을 살펴보니 역시나 우병우 전 수석의 모습이 선명하게 담겨있었다.


9 19분.
육안으로 보기에 흐릿한 형상의 누군가 나타나 다시 셔터를 눌렀다.
그는 우병우의 변호인 곽병훈 변호사였다. 곽 변호사는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고 검찰 관계자들 앞에서 크게 웃는 모습이었다.


9 25분.

다시 무언가 움직임이 느껴졌다. 우병우였다. 점퍼 차림의 그는 팔짱을 끼고 웃음을 띤 채 정면을 바라보고 서 있었고, 그의 옆에 있는 두 사람의 검찰 관계자는 정자세로 서서 우 전 수석의 말을 듣고 있었다. 뒤이은 컷에는 우 전 수석이 계속 팔짱을 끼고 두 사람을 향해 서 있었고, 검찰의 두 사람은 자세를 풀지 않고 그대로 앞으로 손을 모은 채, 우 전 수석의 얘기를 듣고 있었다. 3초. 셔터를 누른 시간이었다.

노트북을 열고 사진을 송고했다. 이 사진들 중 마지막에서 두번째 사진이 조선일보 1면에 실린 우병우 전 수석의 모습이다.

이후로도 7일 새벽 1시까지 조사실과 부속실을 향해 카메라를 맞추고 있었으나 나타나지 않았다. 그 동안 잠깐 빛만 스쳐도 찍은 사진만 900장. 우병우의 ‘위세’는 검찰에 출두할 때는 물론, 조사를 받을 때도 ‘한결 같은 것처럼’ 보였다. 조사실 안이 다른 점이 있다면, ‘지켜보는 눈’이 없었다는 점이다. 적어도 그들은 그렇게 판단하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