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핵심 수석이 CJ그룹 고위관계자에게 이미경 부회장의 퇴진을 요구하는 전화를 건 내용이 공개되면서, 그 동안 CJ그룹의 콘텐츠 산업을 이끌던 이 부회장이 청와대로부터 '미운 털'이 박혔다는 소문이 근거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재계 관계자는 4일 "이 부회장이 CJ의 문화·콘텐츠 사업을 총괄하던 2012년 전후로, CJ그룹의 영화와 TV 콘텐츠가 박근혜 대통령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다는 소문이 널리 퍼져 있었다"고 밝혔다.
CJ그룹의 케이블 채널 TVN의 시사 코미디 프로그램인 'SNL코리아'는 2012년 대선을 앞두고 박근혜 후보를 희화화하는 코너를 방영했다.
물론 박 대통령 뿐 아니라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 등 대선 후보들을 패러디했지만, 박 대통령이 그에 대해 유독 예민하게 받아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개그맨 정성호씨가 박근혜 후보로 분장하고 헤어스타일과 의상 뿐 아니라 표정·말투까지 똑같이 따라했는데 박 대통령은 권력욕이 강하고 말이 통하지 않는 캐릭터로 등장했다.
SNL의 또 다른 프로그램인 ‘여의도 텔레토비 리턴즈’에서는 개그맨 김슬기씨가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 후보를 패러디 한 캐릭터 ‘또’를 연기했다. 2012년 10월 국정감사에서는 “박근혜 비대위원장을 연상시키는 캐릭터가 다른 캐릭터들에 비해 욕설을 많이 한다”는 지적이 나와 논란이 일기도 했다.
소문의 다른 한 축은 CJ가 대선을 앞두고 제작한 영화들이 박 대통령을 불편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는 2012년 9월 개봉해 1200만 관객을 모으며 흥행했다. 그런데 서민 출신으로 왕이 돼 국민을 위하는 정치를 펼치려 한 주인공이 고(故) 노무현 대통령을 연상시킨다는 평가가 나왔다. 마침 문재인 당시 민주당 의원이 이 영화를 보고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이슈가 되기도 했다.
청와대 핵심 수석이 CJ 고위 관계자와 통화하면서 이 부회장의 퇴진을 압박한 시기는 2013년 말로 알려지고 있다.
이 부회장이 2014년 9월 치료를 이유로 미국으로 건너간 것이 청와대의 압박 때문인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CJ의 이후 문화 콘텐츠 성향이 이 때를 전후로 완전히 바뀐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현재 'SNL 코리아'를 비롯한 프로그램에서 정치 풍자는 찾아볼 수 없고, CJ에서 투자한 영화는 '국제시장'(2014년 12월), '연평해전'(2015년 6월), '인천상륙작전'(2016년 7월) 등 애국·안보 코드의 작품들로 완전히 뒤바뀌었다.
CJ그룹은 또 2014년 말 박근혜 정권의 '비선 실세'로 알려진 최순실씨의 측근인 차은택 감독이 추진한 '문화창조융합벨트' 사업에 참여 1조4000억원을 투자하기로 했고, 미르·K스포츠재단에 13억원을 출연했다.
2013년 7월 횡령·배임·조세포탈 등의 혐의로 구속된 이재현 CJ그룹 회장은 지난 8월 광복절에 사면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