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의도치 않게 거액의 빚을 떠안을 수가 있다. 하지만 티끌 모아 태산이라고, 희망을 잃지 않으면 언젠가는 전화위복의 순간을 맞을 수 있다. 일본의 기업가 유자와 쓰요시가 '어느날 400억원의 빚을 진 남자'라는 책을 통해 16년 간의 파란만장한 '빚갚기 대장정'을 공개했다. 저자 유자와 쓰요시는 소고기 덮밥 체인 요시노야 등으로 유명한 일본의 요식업체 주식회사 유사와의 대표이며, 어느날 아버지의 부고 소식과 동시에 400억이라는 어마어마한 '유산'을 물려받는다. 조선비즈가 저자와 협의해 이 책의 하이라이트를 온라인에 연재한다. [편집자주]
2006년 4월 최대 염원이었던 대형은행의 대출금 120억 원을 전부 갚다
잠들지 못하는 밤이면 이불 속에서 이케나미 쇼타로의 낭독 CD를 들으며 잠을 청하다
요시노야가 규동 판매를 부분 재개한 때는 2006년 12월이었다. 나는 그동안 이자카야 부문에서 철저히 이익을 우선하여 경영하였다. 자나 깨나 매출, 인건비, 원가 계산만 했다. 매주 점장들을 본사에 불러 모아 계수관리(감이나 경험이 아닌 금액이나 수량 등의 수치를 근거로 경영하는 방식)만은 철저하고 엄격하게 지도했다. 직원들은 정신적으로나 경제적으로도 힘겨웠을 것이다.
그나마 유일한 위안은 이런 위기에 몰림으로써 이자카야 부문이 한 단계 도약했다는 점이었다. 요시노야의 이익은 거의 제로였지만, 2006년 12월에는 이자카야 부문에서 역대 최고 이익을 갱신하였다. 또한 그사이에도 쌓인 이익을 꼬박꼬박 부채 상환에 충당한 결과 빚이 점점 줄어들었고, 2006년 4월에는 염원이었던 대형은행의 대출금 120억 원을 전부 갚았다.(편집자 주;1999년 가업을 물려받은 지 7년 만이었다).
내가 확실히 한 고비 넘겼다고 느낀 것은 그때였다. 조촐하게나마 아내와 둘이서 와인을 마시며 축하했다. 마지막으로 ‘축하’한 게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을 만큼 오래간만이었다. 아직 280억 원의 빚이 남아 있었으므로 행복 일색은 아니었지만, 나 자신도 놀라우리만치 해방감이 느껴져서 밤에 푹 잘 수 있게 되었다. 대형은행과의 관계는 나에게 트라우마가 될 정도로 괴로운 일이었고, 가슴을 억누르는 돌덩이였다.
실제로 당시에 쓴 일기를 다시 읽어보면 ‘이로써 도산할 일은 없어졌다.’고 강한 필체로 적혀 있다. 여기까지 오는 데 나는 얼마나 많은 밤을 잠들지 못했던가. 아무리 피곤해도 일 문제가 머리를 스치면 곧바로 잠이 달아났다.
잠들지 못하는 밤이면(매일 밤이었다고 해도 좋다.), 나는 이불 속에 들어가 소설 낭독 CD를 들으며 잠을 청했다.
그때 들었던 것은 이케나미 쇼타로(일본의 유명한 시대소설가)의 《오니헤이한카초》(실존 인물인 하세가와 헤이조가 방화, 절도, 도박을 단속하며 활약하는 내용)와 《검객 장사》(검객인 아버지와 아들이 다양한 사건을 해결해가는 내용) 등이었다. 이런 낭독 CD는 스토리에 빠져들게 해서 그 순간만큼은 잠시나마 일에 대해 잊을 수 있었다.
일 문제를 잊고 스토리에 집중하기만 하면 피곤으로 인해 스르르 잠에 빠져들었다. 만약 한밤중에 잠이 깨면 또 CD를 틀었다. 그리고 또 잠깐이나마 잠들었다. 해 뜰 무렵까지 몇 번이고 반복했다.
일기와 상환 실적표도 잠들지 못하는 밤의 위안이었다. 나는 지금도 일기를 빠뜨리지 않고 쓴다. 괴로운 일이 있을 때면 더 힘겨운 상황을 극복했던 지난날의 일기를 읽으며 눈앞에 닥친 문제와 맞설 용기를 얻었다.
매일 쓰다 보니 어느새 힘든 일이 있었던 날의 일기에는 마지막에 ‘이 일 역시 꼭 극복할 수 있다.’라고 쓰는 게 습관이 되었다.
일기와 함께 ‘상환 실적표’도 직접 만들었다. 이제까지 내가 걸어온 길, 조금씩이라도 이루어온 일들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괴로울 때면 그것을 보면서 다음 달에도 힘내자며 기운을 북돋우곤 했다. 400억 원을 또박또박 갚아온 그간의 발자취가 담긴 실적표였다.
빚이 줄어드는 속도가 빨라지자 월말마다 상환 실적표에 직접 입력하는 작업이 즐거워졌다. 앞서 말한 일일 달력과 마찬가지로 입력하는 일 자체가 낙이 되었다. 이렇게 극복해온 120억 원만큼의 나날을 마침내 보상받은 것이었다.
대형은행의 대출금 상환이라는 최대 현안이 사라지고, 이자카야 부문이 절정에 달해 있었다. 이제 대망의 규동 판매만 재개되면 앞으로는 2, 3할 정도 이익이 더 증가할 것이다.
이로써 단숨에 채무 완제를 향한 상승기류를 탈 수 있다는 생각은 지극히 당연했다. 이제 드디어 본격적으로 반전 공세에 나설 타이밍이다. 진정한 의미의 경영에 매진할 기반이 갖춰졌고, 모든 것은 지금부터라고 생각했다. 2006년 12월, 이번에야말로 밑바닥에서 탈출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악몽은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오히려 이제부터 악몽의 제2막이 열렸다고 할 수 있을 만큼 엄청난 사태가 기다리고 있었다. 밝은 미래가 시작될 예정이었던 2007년이었지만, 1월부터 3월까지 석 달 동안 회사를 뒤흔드는 대사건이 세 건이나 연달아 발생하였다.
어느날 400억원의 빚을 진 남자
유자와 쓰요시 지음 |정세영 옮김 |한비비즈|244쪽|1만3000원
“빚을 다 갚으려면 80년은 걸릴 것. 하지만 아침이 오지 않는 밤은 없다!”
이 책은 끔찍한 절망에 빠진 한 남자, 주식회사 유사와의 대표이사 유자와 쓰요시의 성공 스토리다. 개인의 파산이 쉽지 않았던 시기, 모든 것을 책임져야만 했던 그는 세상이 주는 ‘공포’ 속에서 해결책을 모색하기 시작한다. 여러 개의 음식점 지점 가운데 단 한 곳을 성공 매장으로 만들자는 목표를 잡고 가게를 리뉴얼한다. 결과는 실패. 실패 후 고객들의 뒤를 밟으며 전략을 수정하고, 하나씩 성취해나간다. 꾸준히 밀어붙인 끝에, 그는 지난해 5월 400억 원의 빚 대부분을 갚고 20억원만을 남긴다. 성공을 위한 경영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경영을 해 나가는 그의 사연은 어떤 경영서보다 감동적이고 현실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