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준 국무총리 내정자가 3일 "국정이 붕괴되는 상황을 그대로 보고 있기 힘들었다"며 "총리가 되면 헌법이 규정한 총리 권한을 100% 행사하겠다"고 했다. 잠깐 울먹이기도 했다. 그가 자리 욕심이 아니라 국가적 난국(難局)을 걱정하는 마음에서 어려운 선택을 했다는 것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다. 이 시점에서 택할 수 있는 최선의 총리 후보 중 한 명이라는 점도 부인하기 어렵다. 야 3당이 인사 청문회 보이콧 방침을 결정한 것도 김 내정자 개인에 대한 반대는 아니었다고 본다.
지금 국회 구도상 야당이 반대하면 총리 인준을 위해 필요한 표결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박 대통령은 야당과 상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발표했다. 실수인 측면이 있다고 하지만 엎질러진 물이다. 설사 상의를 했다 해도 통보하는 형식으로 될 일이 아니다. 야 3당은 총리 인사 청문회를 거부하겠다는 전날 입장을 재차 확인했다. 식물 대통령에 이어 총리마저 식물이 되는 상황이 닥쳤다 할 수 있다.
지금 야당들은 박 대통령의 2선 후퇴, 국회가 추천하고 동의하는 거국내각 구성을 요구하고 있다. 야당들만이 아니라 김무성 전 대표, 유승민 전 원내대표 같은 새누리당 내 상당수 의원도 같은 생각이다. 박관용·김형오·김원기·임채정 등 전 국회의장을 포함한 정계 원로들은 더 강한 내용의 시국선언을 했다.
이런데도 박 대통령이 끝까지 국회에 총리 청문 요청서를 보내면 여야가 다툴 수밖에 없다. 대통령이 야당과 민심에 맞서는 결과가 된다. 나라의 어지러움이 어디까지 빠져들지 알 수 없다. 박 대통령이 가급적 빠른 시간 내에 김 내정자 지명을 철회하고 국회에 새 총리 추천을 요청하는 것 외에는 이 난국을 타개할 방법이 없다.
박 대통령은 이날 새 비서실장에 한광옥 국민대통합위원회 위원장을 임명했다. 그 역시 원만한 성품의 정계 원로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김대중 정권 출신인 한 실장, 노무현 정권 출신인 김 내정자를 통해 어려움을 피해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민심을 모르는 것이다.
대통령이 시급히 해야 할 일은 하루라도 빨리 국민 앞에 서서 최순실 일가와의 관계를 고백하고 사죄하는 것이다. 이어서 여야 대표들을 초청해 후임 총리 추천을 부탁해야 한다. 대통령은 조그만 미련이라도 다 버렸으면 한다. 여당 탈당을 미루는 것이 바로 미련으로 비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