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에서 한 속기사가 회의 내용을 기록하고 있다.

수도권 4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3년째 일반행정직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인 이모(여·28)씨는 지난달 서울 종로구의 한 속기학원에 등록했다. “속기사 자격증만 있으면 필기 없이 면접만으로 공무원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진로를 바꾸기로 결심한 것이다. 이씨는 “부모님은 ‘요즘 같은 세상에 누가 속기사를 하느냐’며 반대하지만, 1년 안에 한글속기 1급 자격증을 따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경기 불황에 청년 취업난이 갈수록 심해지면서 ‘속기공무원’을 준비하는 취업준비생들이 늘고 있다. 속기공무원은 국회·의회·법원·검찰청 등에서 각종 회의와 위원회, 재판 등을 상세히 기록하는 일을 맡는다. 음성인식 기술과 인공지능의 발달로 말을 글로 옮기는 속기사의 입지가 점점 좁아지는 추세지만, 틈새시장을 노려 공무원이 되려는 취업 준비생들은 오히려 많아졌다.

법원과 검찰청에서 근무하는 속기사는 필기시험 없이 실기시험만으로 선발한다. 국회나 의회 속기사의 경우 필기시험을 치르지만, 다른 직렬보다 합격점이 낮다. 신촌속기학원 이연경 원장은 “속기공무원 선발 경쟁률이 다른 공무원 직렬보다 상대적으로 낮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수강생이 몰리고 있다”면서 “속기학원 수강생의 90%는 공무원 지망생”이라고 말했다.

국회사무처 공무원 속기 직렬 응시 인원은 2013년 102명에서 2014년 161명, 2015년 195명까지 늘었고 올해는 271명으로 3년 만에 166% 늘었다. 속기공무원 응시 자격조건인 ‘한글 속기 자격시험’에 응시하는 인원은 2014년 7638명에서 올해는 1만 273명으로 늘었다. 한국스마트속기협회 소속 학원 23곳 중 부산·청주·전주·서울 마포 등 4곳이 작년에 문을 열었고 올해엔 서울 신촌에 속기학원이 새로 생겼다.

한국스마트속기협회 정상덕 총무이사는 “많은 사람이 속기사가 곧 사라질 직업이라고 예상하고 있지만, 장애학생을 돕는 교육속기사나 범죄 진술을 기록하는 경찰·검찰청 속기사 등 속기사가 필요한 분야는 점점 늘고 있다”며 “음성인식 기술이 더 발전하더라도 직업으로서 속기사의 역할을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